방호산
방호산 方虎山 | |
별명 | 이천부(李天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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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복무 | 팔로군 조선의용군 조선인민군 육군 |
최종계급 | 조선인민군 육군 상장 |
지휘 | 조선인민군 제6사단 조선인민군 제5군단 |
주요 참전 | 국공 내전 한국 전쟁 |
서훈 | 공화국2중영웅 |
방호산(方虎山, 1916년 ~ 몰년미상)은 공산주의 항일운동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이다.[1] 연안파로 분류된다.
생애
[편집]191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2] 이명은 이천부(李天夫)이다. 만주사변 직후에 중국에서 동북항일연군 제4군의 전신인 중국 공산당 헤이룽장성 미산현(密山縣) 유격대에 합류하여 항일 운동을 벌이다 1937년 모스크바 식민지반식민지이익연구학원(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다녔다.
1939년 연안으로 온 뒤 1940년 항일군정대학동북간부훈련반에서 수료하고 중국공산당 팔로군 일선부대에 파견되어 조선반에서 조선해방문제를 연구하고 1945년 2월 연안에서 정식으로 개교한 조선혁명군정학교의 제1구대 협리원이 되었다.
1945년 11월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동북지방으로 이동하여 동북조선의용군 제1지대 정치위원으로 남만주 일대에서 군대 증강과 조선인 보호 등에 활동하였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중국공산당의 반국민당 전투에 참전하였다.
1949년 7월 조선인들이 절대 다수인 중국인민해방군 제166사단 사단장으로로서 부대를 이끌고 입북하였다. 동 부대를 제6사단으로 개편하고, 초대 사단장이 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제6사단을 이끌고 김포반도를 통해 제일 먼저 한강을 도하하였으며 충남과 호남 일대를 점령하여 휘하의 6사단과 빨치산 등을 통해 점령지역들에서 양민을 학살하였고[3][4], 이후 진주, 마산까지 진출하는 등 전공으로 제6사단은 근위사단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당시 워커 장군이 “북한군 제6사단의 기동은 이제까지의 한국전쟁을 통해 가장 훌륭한 기동이었다”고 극찬하였으며[5] 1950년 10월에는 제5군단장에 임명되어 동부전선 전투를 지휘하였다. 1956년 6월 영웅칭호를 받았다.
1958년 8월 인민군 제5군단장,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1959년 연안계가 기도한 반당·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8월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
각주
[편집]- ↑ 끝나지 않은 6·25 ⑬공산군의 패주(1) Archived 2016년 3월 5일 - 웨이백 머신 2010.06.25 매일경제
- ↑ 〈김포 6.25 전쟁 비사:증언으로 본 김포현대사 명암〉《김포문화원》(2008년 10월 16일). "북한군 제6사단장에 임명된 방호산(方虎山 :본명 李天富) 소장은 1913년 함경도에서 출생하였다."
- ↑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남도현 저, 플래닛미디어, 2010년
- ↑ 〈<백선엽의 6·25 징비록>-43 '김일성의 평양 집무실 가보니, 김일성은 달아나고 서류만 어지러이…' Archived 2023년 10월 3일 - 웨이백 머신〉《프리미엄조선》(2014년 4월 24일). "김일성의 무너진 군대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병력은 방호산(方虎山)이 이끌었던 6사단이었다. 방호산의 6사단은 개전 초기에 내가 임진강에서 이끌었던 국군 1사단의 전면을 치고 들어온 부대였다. ... 그들은 이후 충청도를 거쳐 전라남북도를 휩쓸었다. 이어 진주와 마산을 향해 공격을 펼치면서 결국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다. 방호산은 중국 공산당 계통인 팔로군(八路軍)에서 10여년 간 있으면서 전쟁의 경험을 쌓았던 인물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양해에 따라 팔로군에 있던 한인(韓人) 병력의 166사단을 이끌고 북한에 들어가 6사단장을 맡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전남북 일대를 휩쓸면서 가혹한 학살을 자행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쟁의 측면에서 보면 방호산은 그나마 싸움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잘 이해했던 사람이다. 그는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에 밀려 후퇴할 때 거의 유일하게 제 병력을 건사해 산맥의 줄기를 타고 북상했다. 그런 공로로 그는 그 직후 군단장으로 승진했다."
- ↑ Howard, Michael; Appleman, Roy E. (1962). “The United States Army in the Korean War. South to Naktong, North to the Yalu (June to November 1950).”. 《Pacific Affairs》 35 (1): 67. doi:10.2307/2752715. ISSN 0030-851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