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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토론:Straya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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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20년 4월 24일 (금) 12:05 (KST)답변

Hanfu — Traditional Clothing of the Chinese Han Maj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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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fu, literally 'Han clothes', is one of the traditional types of Chinese clothing.

It served as the characteristic clothing for the Han ethnic group for more than three millennia and was outlawed at the beginning of the Qing Dynasty (1644–1912).

What Hanfu Is hanfu The term "Hanfu" was created in recent years by Internet users to describe the Han people's clothing during the Han Dynasty (206 BC – 220 AD).

However, it refers to the historical dress of the Han people for all of history before the Qing Dynasty, when the Manchus reigned.

When people talk about Hanfu, they usually mean a long flowing robe with loose sleeves and a belt at the waist.

However, Hanfu is a diverse term including different styles of clothing from different dynasties.

Features of Hanfu Hanfu features a loose yi (/ee/) 衣 'upper garment') with sleeves, and a skirt-like shang (/shung/ 裳 'lower garment' ). The belt sash was often decorated with jade.

It is considered a symbol of authentic Chinese culture, reflecting Confucian scholars' aspirations towards rituals, music, and moralistic ideals.

The Legendary Origin of Hanfu It is said that Hanfu can be traced back more than 4,000 years, when the legendary Yellow Emperor's (2698–2598 BC) consort, Leizu, made clothes with silk.

However, no archaeological evidence has been unearthed to support this.

Hanfu in the Xia and Shang Periods (2070–1046 BC) In the Xia Dynasty (2070–1600 BC), top-bottom clothes prevailed. The basic form of the Hanfu was established in the Shang Dynasty (1600–1046 BC)…

The yi was a narrow-cuffed, knee-length tunic tied with a sash. The shang was a narrow, ankle-length skirt. Outside a knee-length apron or bixi (/bee-hsee/ 蔽膝 'cover the knees') was worn.

Due to limited technology, there were only two primary colors: red and green.

Hanfu in the Zhou Dynasty (1045 – 221 BC) In the Western Zhou era (1045 – 771 BC), Kings of the Western Zhou Dynasty set up a strict hierarchical system linked by blood lineage and ethical norms based on families.

Clothes were used as a status symbol to accentuate their privileges, which had a substantial impact on clothes and ornaments, owing to great differences between the nobility and the common people.

Shenyi (one-piece clothing) and Mianfu (a religious court dress of ancient emperors and officials) emerged in the Eastern Zhou period (770 – 221 BC).

Hanfu sleeves were made wider, and the outer tunic was closed with jade decorations or a sash. The cross-over collar appeared.

Other ethnic groups' clothing, such as hufu (clothes of northern ethnic groups such as the Huns), was established and blended with Hanfu.

Hanfu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221 BC – 220 AD) During the Qin and Han dynasties, few changes were made to the details of the Hanfu. The shenyi was still the favored style of dress for the Han people and the Huns alike.

A new kind of formal dress, the pao (袍), a robe made of linen, prevailed.

It was stipulated that the third-rank officials and above wore green silk pao and shenyi, and the common people wore white linen pao during the Qin Dynasty.

Hanfu in the Sui, Tang, and Song Dynasties (581 – 1279) The Sui and Tang dynasties were "China's golden age", when the Han culture broadened. Based on their predecessors, a clothing style combining elements of the Hanfu and the hufu became common.

Women's clothes became more relaxed and revealing than their previous counterparts, owing to women being less restricted by the Confucian ethical codes.

The clothes of the Song Dynasty largely continued the style of the Tang Dynasty. More decorations and embroidery were applied. Women in the Song Dynasty wore beizi (褙子,similar to capes).

Hanfu in the Yuan Dynasty (1279 – 1368) The Yuan Dynasty was the first foreign-ruled era in China. The Hanfu in this period adopted features from the Mongolian rulers' national dress.

Men not only wore the traditional Han-style round-collar pao, but also wore the Mongolian zhisunfu (jisum in Mongolian).

This featured an yi (upper garment) that reached the knees with narrow sleeves and a short shang (lower garment).

Hanfu in the Ming Dynasty (1368 – 1644) The Ming Dynasty was the last Han-led dynasty. The emperor wanted to restore the whole Han culture and tradition, including restoring all the clothing fashions of the Tang Dynasty.

However, lots of Mongolian-style attire and hats still prevailed, as did clothing changes from the Song era.

Confucian codes were re-popularized and women's clothes were prone to being more conservative.

The upper outer garment was shorter and the lower garment was longer, and the outer coat became longer to shorten the exposed skirt's length.

Hanfu in the Qing Dynasty (1644 – 1912) In 1644, the Manchus started ruling China, and a dramatic shift in hairstyling and clothing occurred.

At the very beginning, the Manchu leader required all the Han people to wear the Manchus' long gown, or cheongsam, but this restriction loosened soon afterward.

Three types of clothes coexisted together in the Qing Dynasty: Han traditional clothes (i.e. Hanfu), Manchu clothes, and part Western-style clothes in the late Qing Dynasty.

Hanfu's Influence in East Asia Hanfu was a symbol of traditional Chinese culture.

It also had a far-reaching influence on the clothing in other neighboring Asian countries, such as the Japanese kimono, the Korean hanbok, and the Vietnamese Áo giao lĩnh.

Chinese clothing started to be adopted by the Japanese in the 5th century.

Traditional Japanese clothing is the kimono. The other term for it is gofuku, which means "clothing of Wu". Wu was one of China's Three Kingdoms (220–280).

Hanfu in Modern Times hanfu After falling out of fashion for more than 400 years, a renaissance of Hanfu was called for by many Han ethnic groups as part of a trend that the public should be proud of their Chinese culture.

Many supporters believe that wearing Hanfu brings them a strong sense of national identity.

Many universities in China have a Hanfu Society whose members wear Hanfu to celebrate traditional Chinese festivals, and they use that opportunity to introduce their Hanfu garments to others.

출처: Hanfu — Traditional Clothing of the Chinese Han Majority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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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푸는 중국 전통의상 중 하나이다.

3천년 이상 한족의 복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청나라(1644~1912) 초기에는 금지되었다.

한푸는 무엇인가 "한푸"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 사용자들이 한나라 (기원전 206년 – 서기 220년)의 한족의 의복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주족이 통치하던 청나라 이전까지 한족들이 입었던 역사적 복장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한푸를 말할 때, 그들은 보통 소매가 느슨하고 허리띠가 있는 길게 흘러내리는 옷차림을 말한다.

그러나 한푸는 왕조마다 다른 스타일의 옷을 포함한 다양한 용어이다.

한푸한푸의 특징은 소매가 달린 헐렁한 이(/)와 치마처럼 생긴 상(上)이 특징이다. 허리띠는 종종 옥으로 장식되었다.

그것은 의례, 음악, 도덕적인 이상에 대한 유림들의 열망을 반영하여 진정한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푸의 전설적 기원 한푸는 4,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전설적인 황태자 (기원전 2698년–2598년)의 왕비 레이즈가 비단으로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한푸는 하나라에서 상나라에서 유행했다. 한푸의 기본 형태는 상나라 (기원전 1600년–1046년)에 확립되었다.

이이는 폭이 좁고 무릎까지 오는 튜닉으로 띠로 묶었다. 샹은 좁고 발목까지 오는 치마였다. 무릎까지 오는 앞치마나 빅시(/bee-hsee// ' 'cover the knee')를 착용했다.

제한된 기술 때문에, 빨간색과 녹색 두 가지 주요 색상만 있었다.

주나라 한푸(기원전 1045년~기원전 221년) 서주시대의 왕들은 혈통과 가족에 따른 윤리적 규범으로 엄격한 위계 체계를 세웠다.

의복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큰 차이 때문에 의복과 장신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특권을 강조하기 위한 신분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쉐니(원피스)와 미안푸(고대 황제와 관리들의 종교적 복장)는 동주시대(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에 등장하였다.

한푸 소매는 넓게 만들어졌고, 겉옷은 옥 장식이나 띠로 장식하였다. 크로스오버 칼라가 나타났습니다.

후푸(Hufu, 훈족과 같은 북부 민족들의 옷)와 같은 다른 민족들의 옷들이 설립되어 한푸와 혼합되었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한푸 (기원전 221년 – 서기 220년) 진나라와 한나라 동안, 한푸의 세부 사항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셰니는 여전히 한족과 흉노족 모두에게 인기 있는 복식이었다.

린넨으로 만든 의복인 파오(o)가 유행했다.

진나라 때는 3등 이상의 신하들이 녹색 비단 파오와 셰니를 입도록 규정되어 있었고, 평민들은 흰색 아마포 파오를 입도록 되어 있었다.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의 한푸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의 황금기였고, 한나라의 문화가 확장되었다. 그들의 전신을 바탕으로, 한푸와 후푸의 요소들을 결합한 옷 스타일이 보편화되었다.

여성의 복장은 유교적 윤리규범에 덜 얽매여 이전의 복장들보다 더 여유롭고 드러나게 되었다.

송나라의 복장은 대체로 당나라의 양식을 계승했다. 더 많은 장식과 자수가 적용되었습니다. 송나라의 여성들은 베이지(eses)를 착용했다.

원나라(1279–1368)의 한푸는 중국 최초의 외국 통치 시대였다. 이 시기의 한푸는 몽골 통치자들의 국가적인 복장을 채택했다.

남자들은 전통적인 한방식 라운드칼라 파오를 입을 뿐만 아니라 몽골 지순푸(몽골어로 지섬)도 입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소매가 좁은 이(상의)와 짧은 상(하의)이 특징이다.

명나라 한푸 (1368–1644) 명나라는 한족이 이끈 마지막 왕조였다. 황제는 당나라의 모든 의복 패션을 복원하는 것을 포함하여, 한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복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몽골식 복장과 모자가 여전히 많이 유행하였고, 송나라 때의 옷차림도 그러하였다.

유교 율법은 다시 대중화되었고 여성의 복장은 더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다.

겉옷은 윗옷이 짧고 아랫옷은 길며, 겉옷은 노출된 치마의 길이를 짧게 하기 위해 길어졌다.

청나라의 한푸(1644-1612)는 1644년 만주족이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머리 모양과 의복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초기에는 한족에게 모두 청삼을 입도록 요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제한이 완화되었다.

Yoyoma88 (토론) 2021년 12월 16일 (목) 15:42 (KST)답변

해당 소스는
1. 역사 사료가 아니며, 중국인으로 판단되는 Fercility Jiang이라는 작자가 쓴 사설 기사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해당 기사에는 어떠한 역사적 사료가 근거로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사료나 문헌에 관한 링크나 레퍼런스 또한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2. 위키백과 한푸 문서에서 삭제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최근에는 만주족의 전통복장인 "치파오"와 조선족의 전통복장인 "한복" 등 중국 소수민족의 복장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로써 해당 사설기사에는 이러한 관련내용이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기때문에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Strayacj (토론) 2021년 12월 16일 (목) 15:54 (KST)답변
3. 해당 사설기사를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 오시지 마시고, 정확히 이 사설기사에서 어느 문구가 삭제하고자하는 "최근에는 만주족의 전통복장인 "치파오"와 조선족의 전통복장인 "한복" 등 중국 소수민족의 복장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라는 문장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사설기사를 복사해서 그대로 가져 오신다면, 원활한 토론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Strayacj (토론) 2021년 12월 16일 (목) 16:00 (KST)답변

한푸 문서에 대한 해당 기사와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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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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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의 어원은 신조어로 구체적인 뿌리는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서의 기록을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삼황오제시기에, 선인들은 새나 짐승의 털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나아가 마(麻)를 이용해 베옷(布)을 만들어 입었다. 나중에 황제의 정비(正妃)인 누조(嫘祖)가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치는 것을 시작해 백성들에게 베를 짜고 옷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때문에 복식(服飾) 제도는 황제 시대부터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나라와 상나라를 거친 후 관복 제도가 점차 수립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은 서주 시대에 주례 제도가 형성되어 의관예제(衣冠禮制)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생겼고 관복 제도가 점차 예치(禮治)의 범위 속으로 들어가 예의문화(禮儀文化)를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한푸는 이때에 이르러 더욱 완벽해졌다.

일찍이 한 성인께서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신하, 한 왕조의 천인(天人)에 한 왕조의 백성, 한 왕조의 문화, 한 왕조의 복식.”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므로 중국 고대의 복식은 단순히 왕조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 것만은 아니며 조대(朝代)간의 복식특징에도 아주 큰 구별이 있다. 또한 각자 서로 다른 조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시기의 인류가 부여받은 지혜를 체현하고 있다.

상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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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때는 직기자수가 발달했는데 최초의 의복은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으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 허리에 넓은 요대(腰帶)를 둘렀으며 옷깃(領襟), 소맷부리(袖口)에 모두 정교하고 치밀한 자수 장식을 했다.

주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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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때는 봉건 제도가 확립되었고 의관제도도 점차 완비되었다. 당시에는 신분의 구별이 심했기 때문에 복식 중에서도 관복등급의 엄격한 구별이 있었다. 제왕과 귀족은 모두 장소와 신분에 따라 적당한 복식을 입어야 했다. 춘추전국 시대에 들어와 ‘심의(深衣)’가 나타났다. 심의는 위아래를 나누어 재단한 후 중간 부분을 이어서 만드는데 재단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연결되어 있다. 심의는 용도는 광범위하여 남녀노소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입을 수 있었으며 당시에 크게 유행했다.

진·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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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때 중국이 통일된 후 각종 제도가 새로 창립되었으며 그중에는 자연히 관복제도를 포함한다. 한나라는 진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았는데 무제 때 서역과 문화교류가 강화되면서 복식의 색채가 더욱 다양해졌다. 한나라 때 성행한 복식은 온몸을 감싸는 포(袍) 위주였고 양식은 소매가 큰 것이 많다. 어깨부터 직통으로 발까지 내려가는 긴 장포(長袍)는 당시 가장 전형적인 복장이었다. 한나라는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함에 따라 생활도 부유해졌고 의관(衣冠)과 복제(服制)도 날로 화려해졌다. 한나라 때 귀족의 예복은 치마(裙襬), 옷깃(領口), 소매(袖口)에 모두 정교하고 아름다운 테두리로장식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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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전란이 빈번하게 발생해 남방과 북방의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타향을 떠도는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섞여 거주하는 상태가 나타났고 또 호한(胡漢)문화도 서로 영향을 끼쳤다. 포의박대(褒衣博帶 크고 헐렁한 옷에 넓은 띠)는 이 시기에 유행하던 복식으로 자연스럽게 본성을 따르면서 느슨한 복장을 추구했다.

수·당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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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나타난 화려하면서도 귀족적인 복식은 당시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이 공전의 번영을 누린 전성시기임을 잘 반영한다. 염색 및 실크 직조(織造) 기술이 크게 진보하고 실크로드의 개통 및 대외개방으로 쿠처, 남조, 토번, 아라비아 및 페르시아 사자들이 각 지역의 문화를 가져왔고 이 시기 당나라 복식이 다양한 민족의 특색을 융합해 크게 이채를 띨 수 있게 했다. 당나라의 염색기술은 아주 뛰어났으며 실크 제품의 염색문양은 전대미문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당나라 복식의 재료를 연구해보면 색채가 곱고 선명하며 양식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액세서리도 정교하고 아름답다. 대당(大唐)의 복식은 호탕하면서도 대범하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해 유구한 중국 복식의 역사 중에서도 휘황찬란한 최고봉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때 남자들의 가장 전형적인 복장은 원령(圓領 둥근 깃)에 포삼(袍衫)을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사모(紗帽)를 쓴 것이다. 복두란 사견(紗絹)으로 만든 사각형 두건(頭巾)을 말하는데 위는 네모지고 좌우에 각(角)을 부착한 모양으로 당나라 때 아주 유행했다. 당나라 여인들은 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성행해 화장, 눈썹그리기, 입술 단장을 중시했으며 연지 찍기를 좋아했다. 복식의 특징은 옷깃이 낮게 내려가고 소매가 크며 치마허리를 높이 묶었다. 주요한 양식은 위에는 짧은 저고리(襦)나 적삼(衫)을 입고 아래는 긴 치마(裙)를 입었으며 반비(半臂 소매가 없거나 짧은 겉옷)를 입고 어깨에는 피백(披帛)을 둘렀다. 긴 치마는 땅에 끌릴 정도였으며 몸 자태는 마치 천선(天仙)처럼 유연하고 세속을 초월한 듯한 고아(高雅)함이 있었다.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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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의관복식은 당나라의 전통복제를 답습하긴 했으면서도 독특한 점이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성리학을 숭상해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存天理,去人欲)’한다는 관념을 제창하면서 전통의 보수적인 도덕관을 이끌었다. 이런 영향 때문에 복식도 더 이상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고 간단하며 소박한 것이 위주가 되었다.

송나라 남자들은 귀천을 불문하고 각종 장소에서 모두 박두(幞頭)를 썼다. 단, 이때의 박두는 비교적 모자와 비슷한 모양의 직각 관모(冠帽)였다. 복식은 둥근 깃을 위주로 다양한 색상의 포삼(袍衫)으로 등급을 구분했다. 송나라 귀족 여인의 예복은 대수삼(大袖衫 소매가 큰 적삼)이었다. 송나라는 주(周)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제사 등 중요한 장소에서는 반드시 예복(禮服)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일반 평민 여인의 복식은 상의에 유(襦), 삼(衫), 오(襖), 대수(大袖), 반비(半臂), 배자(褙子 조끼) 등을 입어 양식이 다양했고 아래에는 치마(裙子)를 입었다. 이중 배자는 당시에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유행했던 복식으로 외투의 일종이며 직령(直領 곧은 깃)과 대금(對襟 웃옷의 두 섭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서 단추를 채우는 맞깃), 무릎까지 길게 내려오는 것이 특색이다.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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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에서 유행한 고려풍 복식의 영향이 명나라 때까지 이어졌다. 홍치제 시기에 들어서야 고려양(高麗樣)이 원래 중국 풍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명나라는 관복제도에 있어 주(周), 한(漢), 당(唐), 송(宋)의 복제를 참조해 전통적인 한족의 복식제도를 회복했다. 명나라의 복식은 재료가 다양하며 특히 자수 기술이 발달했다. 남자의 복식은 포삼(袍衫)을 위주로 했고 관리들의 조복(朝服)은 옛 제도를 답습해 오사모(烏紗帽)와 원령삼(圓領衫 둥근 깃의 삼)을 입었고 소매는 넓어 3척이나 되었다. 포삼의 색과 도안으로 관직의 품위를 구분했으며 포삼 관복의 앞에는 사각형 자수그림이 있었다. 문관(文官)은 날짐승을 도안으로 삼았고 무관(武官)은 길짐승을 도안으로 했다. 비색(緋色 붉은 색) 포삼은 1품부터 4품까지, 청색 포삼은 5품부터 7품까지, 녹색 포삼은 8품부터 9품까지 입었다. 여성복식은 주로 오(襖), 삼(衫), 배자(褙子), 비갑(比甲) 및 치마였고 당송(唐宋)의 양식을 답습했다. 포삼의 색은 진홍색이나 황색, 청색은 사용할 수 없었고 단지 연분홍색, 자색, 녹색만을 입을 수 있었다. 명나라 부녀자의 예복은 봉관하피(鳳冠霞帔)인데, 후비(后妃)가 제사나 대전(大典) 등 중요한 장소에 참가할 때 입던 옷으로 봉관(鳳冠)위에는 용과 봉황을 새겼으며 하피(霞帔 예복을 입을 때 목에 거는 띠 모양의 장식물)와 함께 사용했다.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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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멸망후 만주족의 습속인 변발과 의복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였지만, 한족 사대부들을 중용하고 한족의 문화 유산인 학술을 종합정리하는 한편 국가 재정과 제도를 충실히 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문화학술사업을 장려하자, 한족들의 저항도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 역대로 이민족과 한족의 부단한 융합이 결실을 맺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Yoyoma88 (토론) 2021년 12월 16일 (목) 15:3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