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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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당경(藏唐京)은 고조선의 도읍지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당장경(唐臧京)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개요
[편집]《삼국유사》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이 조선을 세우고 평양성에 도읍을 하였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 5백년을 다스렸으며, 주나라 초기에 기자(箕子)를 피해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했다.[1] 허목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장당경을 당장경(唐臧京)이라고 표시하였으며, "유주(幽州)에 당장경(唐臧京)이 있었으니 《고려사》(高麗史)에서는 그곳을 단군조선의 도읍지라고 하였다."[2]라고 되어 있다.
명칭
[편집]《신증동국여지승람》과 허목의 《미수기언》 및 권상로가 편찬한 《한국지명연혁고》 등에는 모두 당장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장당경(藏唐京)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편집]장당경의 현재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시대 후기의 유학자 허목은 유주(허베이성 북부 및 랴오닝성 일대)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윤내현 교수는 중국의 다링허 인근이라 주장하였다.[3]
각주
[편집]- ↑ 일연 (1281). 〈기이 고조선條〉. 《삼국유사》.
고기에 이르기를... [그는] 당고(唐高)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년-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 그는 여기서 1천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古記云 ...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御國一千五百年...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
- ↑ 허목, 《미수기언(眉叟記言)》,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 ↑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0년, 355~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