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2025)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기사입력 2009-03-31

[쿠키 경제] 경제 위기 이후 밀레니엄 세대가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디지털 코쿠닝’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밀레니엄 세대는 1970년대 말 이후 태어나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에 친숙한 세대이며, 디지털 코쿠닝은 누에고치(Cocoon)처럼 집 안에 틀어박혀 디지털 기기를 즐기는 것을 뜻한다.

정재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31일 ‘경제 위기 이후 소비자 트렌드의 향방’ 보고서에서 “과거 대공황이나 석유 파동, 9·11 테러 등을 거치면서 주도 산업과 소비자들의 가치가 변한 것처럼 최근의 경제위기도 소비 추세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밀레니엄 소비와 디지털 코쿠닝을 새로 부상할 트렌드로 꼽았다.

주식과 주택 등 자산가격의 폭락으로 은퇴자나 주택 보유자의 소비가 급감하는 대신 위기 극복 이후 고용이 늘어나면서 밀레니엄 세대가 주요 소비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전반적인 소득 감소로 여행과 같은 대외 활동을 줄이는 대신 집 안에서 디지털 기기로 여가를 즐기는 추세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게임 콘셉트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닌텐도 위(Wii)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불황기 신조어’ 등장…‘bossnapping’은 상사 납치

기사입력 2009-03-30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

[쿠키 지구촌] ‘언어는 역사의 보고’라던 19세기 미국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의 믿음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경제위기 여파는 진앙지 언어인 영어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잡학사전으로 유명한 작가 벤 쇼트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불황기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을 뽑아 소개했다.

요즘 영·미 언론의 단골 제목 중 하나는 상사(boss)와 납치(kidnapping)를 묶은 보스내핑(bossnapping·상사납치)이다. 세금 받아 보너스 잔치를 벌인 대기업 임원에 대한 분노가 물리적 납치로 비화한 사회현상을 짚은 것. 프랑스에서는 지난 두 달여간 3M과 소니, 미쉐린의 사장·매니저가 억류당하며 보스내핑이 횡행했다.

유사어로는 반달라이제이션(vandalization)이 있다. 문화 파괴 행위를 가리키는 이 단어는 최근 부유층에 대한 보복성 공격의 뜻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지난 25일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행장의 저택이 괴한의 습격을 받자 영국 언론들은 이 단어를 일제히 헤드라인으로 올렸다.

경제(economy)와 자살(suicide)의 합성어인 이코노사이드(econocide·불황으로 인한 자살)는 1929년 거액을 잃은 금융가들이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유래한 단어. 유사한 경제위기 속에서 80년 만에 컴백했다. 페시미즘 포르노(pessimism porn·선정적 비관주의)는 지나치게 우울한 경제 관련 보도를 뜻하는 말로, 실패를 상품화하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이를 보며 은밀한 만족감을 느끼는 뉴스 소비자들의 심리를 동시에 꼬집었다.

경기침체는 ‘2009 뉴욕 수염 챔피언십’에서 리세션 비어드(recession beard)라는 새 카테고리를 탄생시켰다. 불황에 얽힌 ‘사연이 있는 턱수염’이 여기에 속한다는 게 조직위원장의 설명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제안한 세계 단일통화 아크메탈(acmetal)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논란 속에 화제어로 떠올랐다. 그리스어로 절정을 뜻하는 아크메(acme)와 자본(capital)이 결합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삼팔선' '삼초땡'..30대 실업 비상

기사입력 2009-03-22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박용주 기자 = 우리 사회의 중추인 30대 연령층의 실업자가 급격히 느는 것은 경기 침체에 따라 중소 제조업과 영세 서비스업이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30대 실업자가 20대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늘어 자칫하면 큰 사회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장에서 단순 조립일을 하거나 식당에서 일을 하던 30대 주부들이 중소기업의 도산과 자영업의 폐업으로 대거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어쩔수 없이' 가사를 돌보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30대 남성의 경우 대기업 직원들은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겨우 자리보전을 하고 있지만 불안하기 그지없고,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매일 수백 명씩 짐을 싸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 30대 실업 '벼랑 끝 몰렸다'

30대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대상), '삼팔선'(38세까지 직장에서 버텼으면 선방)이라는 말이 이제 현실이 돼버렸다.

대학 졸업생의 경우 90년대 학번이 대부분인 이들은 97년 외환위기 시절 또는 그 이후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입사했지만 이제 또다시 길거리로 몰릴 상황에 처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20대여서 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실업이 곧바로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다른 연령층보다 타격이 크다.

20대는 사회 초년생인데다 아직 부모의 물적 지원에 기댈 여지가 있으며, 40~50대는 이미 어느 정도 축적해놓은 재산이 있다. 하지만 30대는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된 가정까지 꾸린 경우가 대부분이라 '쓸 돈은 많아지는데 기댈 데는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소비가 많은 30대가 일자리를 잃으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 10일에는 한 30대 실업자가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30대 가장의 중압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 비정규직.자영업 붕괴→실업.육아

'할 일 없으면 집에서 애나 보라'는 우스갯소리가 극심한 불황을 타고 30대에게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육아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일자리가 사라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가사만 돌보는 주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30~39세 취업자는 581만1천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6만7천 명(-2.8%)이나 줄었다. 40~49세, 50~59세가 각각 2만5천 명(0.4%), 18만3천 명(4.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30대가 어느 정도 타격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업자 또한 30대가 지난 2월 22만9천 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무려 3만7천 명(19.3%) 늘었다. 이는 20대 실업자 증가율 12.4%를 넘어서는 수치다.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 상황은 심각하다. 30대 남성의 경우 지난 2월 취업자가 전년 동월보다 9천 명 줄어드는데 그쳤지만 여성은 무려 15만7천 명이 감소했다.

2월 고용률은 30대가 70.7%로 전년 동월 대비 1.7% 포인트 감소한 가운데 30대 여성은 고용률이 51.3%로 전년 동월보다 3.4% 포인트나 줄었다.

이는 봉제나 섬유, 가공공장 등이 무너지고 식당, 상점 등 자영업이 문을 닫음에 따라 이곳에서 임시로 일하던 30대 주부들이 대거 실직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여성의 월급이 많지 않은 수준이지만 남편의 실업으로 혼자 벌어 가정을 책임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 가정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직업을 잃은 30대 여성들은 경기 불황으로 재취업 자체가 불가능해 구직을 단념하고 가정에서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 공공근로.사회적 일자리 창출 총력

정부가 실직 또는 생계 위협을 받는 30대를 위해 내놓은 대책은 희망근로 프로젝트라 불리는 공공근로와 아이 돌보미 등 사회적 일자리다.

우선 정부는 최저생계비 120% 이하 소득이면서 근로 능력이 있는 40만 명을 공공시설 개량 및 확충 등 공공근로 사업에 투입해 6개월간 월 83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추가 일자리 제공을 위해 숲 가꾸기에 8천 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주로 30대 가장의 실업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30대 여성을 위해선 여성 특화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아이 돌보미 800 명, 여성 새로일하기센터의 취업설계사 3천 명, 아동인지발달 지도사 지원 3천 명, 사회적 기업 채용 8천 명, 자활 근로사업 4천 명 등이다.

또한 30대 직장인의 대량 실업을 막기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3천70억 원 추가하고 무급휴업 근로자에 휴업수당 차액을 지급하는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이는 올해 말까지만 제공되는 일자리와 지원책이라는 점에서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30대 연령층의 고용 붕괴는 제조업과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이 무너짐에 따라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눈에 잘 띠는 부분은 아직 고용 상황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30대가 많이 포진한 영세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불황이라 빛나는 '골드미스터+그루밍족=다이아 미스터'

기사입력 2009-03-18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김재준 씨(36)의 수첩에는 소개팅 약속이 빼곡히 적혀있다. 유례 없는 불황에 '취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결혼을 서둘러 준비하는 젊은 여성이 많아진 상황에서 명문대 출신에 고액연봉을 받는 김씨는 '일등 신랑감'이기 때문이다." 김재준 씨는 이른바 '다이아 미스터'다.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다이아 미스터는 명문대 출신, 연봉 6,000만 원 이상, 전문직, 키 1m70 이상, 35~40세 독신남을 일컫는 '골드 미스터'에 외모 가꾸기에 거침없이 투자하는 '그루밍(grooming) 족'의 특성이 더해진 신조어다. 미용, 화장품, IT, 보석업계 등에서 구매력을 가진 이들을 겨낭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2)
◇▶골드 미스터?

 명문대 출신-연봉 6,000만 원 이상-전문직-키 1m70 이상-35~40세 독신남

◇▶그루밍족?

 외모 가꾸기에 투자하는 남성들

서울 강남지역에선 불황속에서도 고급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최신 의료기를 도입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큰 고객인 다이아 미스터족이 간편한 시술로 자연스러운 젊음을 유지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 웃고 있는 게 의료기 업체다.

 ㈜루트로닉의 김원길 마케팅 부장은 "예전엔 아름다움과 젊음을 원하는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했지만, 요즘엔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사이의 미혼 남성들의 피부과 방문이 느는 것을 감안해 최근 지방성형용 레이저 기기인 '아큐스컬프'를 출시했는데 예상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 기기로 시술을 한 청담타임 성형외과 백성종 원장은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다이아 미스터족은 번거로움을 싫어한다. 회복기간이 빠른 것을 찾기에 최신 기기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온라인종합쇼핑몰도 마찬가지다. 롯데닷컴 남성패션 담당 양성은MD는 "남성 패션의류를 구매하는 전체 남성 고객 중 다이아미스터의 비중이 약 40%를 넘어섰다"며 "이는 올해 2월 기준으로 작년 동기 대비 6배 가량 급증한 수치"라고 전했다.

 브랜드 패션몰 아이스타일24도 다이아미스터들이 유입되면서 명품 브랜드 남성용 패션잡화의 2008년 매출이 2007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자신만의 스타일 연출에 관심이 높은 다이아미스터들은 옷뿐만 아니라 넥타이, 벨트, 버클, 시계, 지갑, 구두, 향수 같은 소품까지 완벽하게 갖추려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브랜드의 인지도와 패션성을 강조하기에 명품 시계는 50%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젊음과 상큼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도 다이아 미스타들이 주고객이다. 이들이 즐겨찾는 것은 세안과 면도를 한번에 해결하는 남성 전용 클렌징폼이나 저자극성으로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피부진정 및 보습스킨 등이다. 피부를 위한 피부 진정과 피지 컨트롤 기능의 로션도 다이아 미스터를 겨냥한 상품이다. 다이아 미스터족은 승용차의 내부를 더욱 세련되게 빛나게 하면서 고급기능을 갖춘 프리미엄급 내비게이션에 관심이 많다.

 한 기업은 50개 이상의 위성 DMB 방송 채널 수신에, 540만 개의 단어를 음성으로 인식하는 기능이 있는 제품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겁다.

 IT 주변기기(액세서리) 역시 이들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취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한 업체는 아이팟을 팔에 차고 다닐 수 있는 아이팟 전용 밴드형 케이스로 젊은 30대를 유혹하고 있다. 야외활동이나 운동과 동시에 아이팟을 보다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석업계도 다이아 미스터족을 손짓하고 있다. 기존의 3부 다이아 반지, 사파이어 반지 등을 새로운 모델로 내놓는 외에 젊은 감각을 돋보이게 하는 악세서리용 제품인 다이아 넥타이핀, 다이아 와이셔츠 단추 등으로 승부를 펼치고 있다. 넥타이핀이나 와이셔츠 단추에 작은 다이아몬드나 천연원석을 박은 게 포인트다.

 보석생산유통업체인 비첸지오의 백민제 전무는 "고소득 젊은 미혼남성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원석을 박은 넥타이핀과 와이셔츠 단추를 선호하고 있다. 가격도 1만~2만원으로 저렴해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 이상주 기자 sjlee@sportschosun.com>

나는 ‘오팔족’…노년의 삶이 무척 즐겁다

기사입력 2009-03-16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3)
조계현씨가 16일 서초구 새순교회 컴퓨터교실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장원수기자>

#1. 서울 서초구 새순교회 유치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시는 오팔(OPAL) 선생님 조계현씨(71). 매일 아침 9시 30분이면 유치원에서 컴퓨터 교실 문을 연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사용의 올바른 자세, 기초적인 사용법, 인터넷 학습, 게임 등을 가르친다. 11시까지의 수업에 유치원 개구쟁이들의 청개구리 대답에 힘들만도 하려는데 조씨는 항상 활기에 차 있다. 내 손자, 손녀라는 생각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그래서인지 조씨의 수업은 할아버지의 따스한 애정이 넘친다.

아이들은 호랑이선생님처럼 무섭게 혼내다가도 살살 달래는 선생님 모습에 풀이 죽었다가도 금방 저희들끼리 헤헤거리며 웃는다. 선생님 눈치를 살피면서도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는 것이 영락없는 할아버지와 손주 모양새다. 아이들의 당돌한 질문과 웃음소리에 조씨도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조씨는 1990년 육군대령으로 퇴역해 매달 국가에서 받는 군인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들과 두 딸은 모두 결혼해 지금은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편안한 노후를 마다하고 한달에 20만원정도 받는 오팔 선생님이 된 이유를 묻자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고, 교회에서 장로 일을 하다보면 (하루)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유지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인 중에서 오팔선생님이든지, 실버환경지킴이이든지 간에 일하고 있는 노인은 실제로 채 10%가 안 된다”며 “사회가 노인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노인세대들이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노후준비를 하나도 안 했다”며 “이들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2. 서초구청과 노인종합복지관의 도움으로 방과후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시는 허문영씨(78). 그는 82년 군대에서 예비역 대령으로 퇴역한 후 신학교 총무처장 등을 역임한 뒤에 2000년부터 구청에서 인가받은 방과후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허씨의 수업방식은 남다르다. 아이들은 허씨의 구호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면서 한자의 재미에 푹 빠진다.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끔 직접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한자노래, 게임 등을 가르친다. 다른 방과후학교 한자수업이 종이로 설명하는 식인데 반해 그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컴퓨터 게임을 통해 한자를 숙달하게 하고 있다.

허문영씨가 16일 서초구 새순교회 방과후학교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재밌는 한자 교육’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장원수기자>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4)

허씨는 오팔족 선생님으로서의 보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이 논다고 하는 것만큼 무료하고 괴로운 것은 없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갖고 뭔가 성취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어야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노인이 일을 하지 않고 편하면 편할수록 게으르게 된다”며 “남의 도움을 받기만을 원하는 복지정책에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일을 개척해 찾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충고했다.

그는 현재 방과후학교 선생님 외에도 ‘해피메이커’ 일도 하고 있다. 편안하게 마지막 생을 정리하려는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는 일종의 ‘호스피스’로서 현재 네 명과 고민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마지막 삶을 행복하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핵가족과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실버세대들 중에 안정된 경제력으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노인들이 각광받고 있다. 보통 OPAL족(Old People with Active Life)이 불리는 이들은 남은 인생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데 적극적이다. 노인, 황혼, 은퇴자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경로당이나 공원 벤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삶을 거부한다.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젊은 시절보다 더 즐겁고 활기찬 삶을 살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모험과 도전을 기꺼이 하려고 하며 성공하면 스스로 축하하고 실패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한 셈 친다.

위 두 분의 예에서도 ‘오팔’ 선생님은 주로 자신의 삶의 긍정적으로 개척하는 것 외에도 경험과 노하우를 후손들에게 전수하는데도 적극적이다. 보통 교사나 전문직 종사자 출신으로 동화구연, 한자, 예절 외 다문화교육, 성악, NIE, 바둑, 수학 등 특기적성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배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조계현씨는 오는 4월 6일부터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한자지도자 교육’ 수업을 받는다. 체계적으로 한문을 배워 초등학생들을 가르쳐볼 생각이다.

오팔족은 스스로가 인생의 후반전을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고 보람되게 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년에 삶의 성취도도 높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사회에 무엇인가 보탬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노년의 삶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서초구 관계자는 “최근 노인들의 경제활동인구가 크게 증가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노인들은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오팔족’ 선생님처럼 노인들의 경륜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인일자리 사업을 꾸준히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팔족’이란?

일본의 방송 경제캐스터인 니시무라 아키라(西村昇)와 하타 마미코(友田麻美子)가 2002년 공동으로 저술한 책 <여자의 지갑을 열게 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오팔은 영어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경제적인 풍요와 의학의 발달로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의 노인층으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며 사는 노인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젊어서부터 쌓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시간적 여유를 즐기면서 건강한 삶을 누리는 한편, 뚜렷한 개성과 활력을 바탕으로 봉사활동이나 각자에 맞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낸다.

<경향닷컴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대중문화] 실버코믹스를 아시나요?

기사입력 2009-02-25

[신동아]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5)

퇴근시간 일본 전철 안, 세 명 건너 한 명은 만화책을 본다. 신문 연재만화, 만화잡지, 만화 단행본, 문고판 만화책, 어떤 사람은 닌텐도DS로 만화를 본다. 일본인의 연간 독서량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가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중 상당 부분이 만화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만화왕국인 일본은 그러한 만화 열풍을 기반으로 수많은 명작만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연간 발행되는 만화잡지만 300여 종, 국내 만화잡지가 10여 종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천문학적인 규모다. 평균 1만여 편의 만화가 실시간으로 시중에 연재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독자들에게 평가받은 베스트셀러는 TV시리즈 애니메이션 및 게임 원작으로 계약이 진행되고, 최근에는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고 있다. 중국영화 ‘적벽대전’이 1·2부 두 편으로 제작됐듯이 이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 영화가 많다. 원작료 상승이 시리즈 영화의 기획으로 연결된 것이다. ‘데쓰노트’는 1·2부로,‘20세기 소년’은 1·2·3부로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풍요로운 만화 원작시장의 활성화는 일본을 만화왕국을 넘어 게임왕국과 애니메이션왕국, 그리고 영화왕국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또한 일본 만화에 주목한다.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SF영화 ‘AI ’는 데스카 오사무의 ‘철완아톰 : 우주소년 아톰’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2008년 개봉한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레이서’도 196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고 : 달려라 번개호’에서 원작을 가져왔다. 할리우드 최고 흥행작인 ‘트랜스포머’ 또한 미·일 합작 제작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며, 2009년 개봉 예정인 ‘드래곤 볼’은 1980년대 말을 풍미했던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는 콘텐츠시장의 핵심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DC코믹스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수퍼맨’ ‘배트맨’과 마블코믹스가 저작권을 소유한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등 수많은 수퍼히어로 만화 원작 영화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바야흐로 만화 원작이 콘텐츠시장의 핵심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의 뒤편에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접해온 만화세대(Comic Generation)의 성장이 있다. 만화에 중독됐던 세대의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추억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보고로 각광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의 연계선상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만화세대의 콘텐츠 부메랑효과 면에서 일본과 미국은 차이가 난다. 미국은 여전히 지나간 콘텐츠 원작의 부활에 애쓰고 있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 원작들은 1930~40년대에 등장한 수퍼히어로들이다. 차용하는 일본 작품도 대부분 1960년대 것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은 여전히 최신작을 원작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가 제작된다.

일본 만화의 수요가 여전하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만화세대의 스펙트럼이 두껍고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화세대는 10대와 20대 초반에 국한된다. 물론 최근 30대와 40대까지 만화 마니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60~70대도 만화를 즐겨 보는 일본처럼 독자층의 광역화가 결국 만화 원작의 충실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다른 산업 발전까지 이끌어내는 사회적 인프라로 연결되는 것에 주목해야 된다.

중장년층 만화세대의 등장과 실버코믹스의 인기

일본의 만화세대 광역화는 30, 40대 중장년층이 좋아할 소재와 스타일의 만화가 다양하게 출간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장년층도 만화를 적극 구매하도록 만드는 작품, 이를 두고 ‘실버코믹스(Silver Comics)’라고 한다. 일본의 실버코믹스는 중장년층 샐러리맨들의 출퇴근시간 기호상품이다. 자신의 상황을 대변하는 소재와 이야기, 바쁜 생활에서도 능력계발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들을 도와주는 전문정보,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래주는 스토리텔링에 중장년층이 빠져드는 것이다.

반면 국내 만화시장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만화전문 출판사들은 만화세대의 축소와 한계로 인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실버코믹스의 가능성을 점칠 만한 흥미로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만화전문 출판사들이 발간 종수를 축소하고 전략 작품에 집중하는 등 부분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온라인 만화쇼핑몰과 온라인 서점에서 특정 만화의 주문이 폭주했다. 특기할 점은 만화를 구입하는 이들이 30대와 40대, 심지어 50대 이상이며 주로 10여 권이 넘는 시리즈 전권을 패키지로 주문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맛보며 경쟁하는 소믈리에 이야기 ‘신의 물방울’이 바로 그 작품이다.

국내 와인 붐과 와인바 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와인에 대한 학습의욕이 관련 작품의 구매로 연결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실존하는 와인의 유래와 생산 공정, 배경, 맛의 평가방식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야기 서술방식 또한 배틀 방식, 즉 끊임없는 경쟁과 도전을 통해 긴박감을 더한다. 와인 전문지식을 역동적인 배틀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진지함에 중장년층은 기존 소설과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재미를 발견했다.

“제일 먼저 아로마로서 엄습해오는 것은 카시스 등의 검은 과실의 폭발, 그리고 혀에 실었을 때 비강까지 뚫고 가는 몇 종류 허브의 상쾌한 뉘앙스, 이러한 맛과 향으로 볼 때 포도의 품종은 특상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죠. 카베르네의 블랜딩 비율이 높은 5대 샤토, 포이약 지구의 와인이라고 생각됩니다. 글라스에 따라지며 공기에 닿아 향이 더욱 짙게 감돈 뒤의 것을 한 입 머금고, 이 와인의 깊은 곳으로 한층 더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희미한 육두구와 잘 익은 무화과, 후추 등의 숙성된 향이 감돌면서, 하늘의 은혜를 한껏 받은 대지의 강인함이 영원한 잠에서 눈을 뜹니다. 이 와인을 비유한다면 한 장의 명화, 마치 대지를 찬양하듯 땅을 경작하는 것과 같은 육중한 필치로 캔버스에 물감을 몇 겹에 겹쳐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대표작, ‘만종’입니다. 해질녘 하늘에 끝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느끼고는, 조용히 머리를 숙이는 농부 부부를 그린 그림은 대지의 은혜, 즉 테루아루에 축복받은 한 폭의 명작과 겹쳐집니다. 그래요 이 와인을 머금고 눈을 감을 때 나는 마치 그 명화 앞에 멈춰 서는 것 같아요.”

‘신의 물방울’ 1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경쟁상대인 와인평론가 토미네 잇세의 대사다. ‘1982년산 샤토 무통 로쉴드’ 한잔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서 이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한다. 독자는 실제로 이 와인을 찾게 되고, 실제로 그러한 맛을 지니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실버코믹스는 실제적인 이야기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만화이기 때문에 지니는 허구성과 등장인물의 과장 및 왜곡은 있다. 하지만 소재로 등장하는 다양한 상황과 설명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도 교재로 인정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읽고 기억할 만하다. ‘신의 물방울’을 수입해 판매한 출판사는 이 작품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일본 실버코믹스를 수입하고 있다.

실버코믹스의 주요 장르 : 아저씨가 봐야 재미있는 만화

실버코믹스의 장르는 무척 다양하다. 멜로물, 기업 비즈니스물, 드라마 에세이물, 전쟁 스펙터클물, 전문직업물, 역사추리물, 공상SF물 등이 있는데 이는 더욱 세분된 장르로 핵분열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들, 아저씨들이 지갑을 열 만한 가치가 있는 흥미롭고 독특한 실버코믹스를 소개한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6)

· 멜로물

실버코믹스의 대표적인 장르는 역시 멜로물이다. 여기엔 성적 담론과 에로티시즘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적절하게 절제해 성인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히로카네 겐시의 ‘황혼유성군’. 국내에 수입돼 30여 권 이상 시리즈로 판매되고 있다. ‘황혼유성군’은 40대 이상 성인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그리면서 로맨스를 입힌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순수하지 못한 속물근성에 공감하고, 실제로는 경험하기 힘든 불륜이나 로맨스그레이의 판타지, 세대를 극복한 사랑 등으로 대리만족하게 해준다. 시한부 인생으로 고통 받는 80대 할머니가 40대 노총각 의사를 사랑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20대 도서관 여성 사서가 70대 노교수의 지적 카리스마에 매혹된다. 자신을 현금인출기 정도로 여기는 무심한 아내와 딸을 둔 중년 남성은 회사 구내식당 아르바이트 여성을 통해 삶에 새로운 희망을 채우게 된다.

스토리는 권마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는데 우리 주위에 있음직한 사례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어 마치 TV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과 같은 느낌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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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네 겐시 ‘시마과장’

· 기업 비지니스물

또 다른 실버코믹스의 대표 장르는 기업비즈니스물이다. 이 장르의 대표 작품이 히로카네 겐시의 ‘시마사장’이다. 본래 이 작품은 1983년부터 ‘시마주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 일본 샐러리맨을 대표하는 대기업 직원 시마 코사루는 히쓰시바 그룹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 이로부터 시마는 과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2008년 5월 사장에 취임한다. 물론 제목도 ‘시마사장’으로 바뀐다. 실존인물이나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도 아니건만, 25년 만의 사장 취임은 일본에서도 ‘요미우리’와 ‘니혼게이자이’에 취임기사가 실릴 정도로 이슈가 됐다.

만화에서 주인공 시마는 철저한 기업인으로 그려진다. 이익을 좇아 아부하거나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부하 직원을 위해 고민하는 중간간부로서 제 역할을 잘 해낸다. 회사 일을 위해 크리스마스 때도 가족과의 시간을 스스로 포기한다. 아내와 딸보다 회사를 우선하는 차가운 가장, 회사에서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신념대로 밀고 나가는 그는 일에 치인 중년남성의 전형이다. 그러나 퇴근 후엔 대학시절 친구의 어려운 삶을 함께 고민하는 벗으로서 한잔 술로 추억을 되살릴 줄 아는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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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화 ‘빨간자전거’

· 드라마 에세이물

이밖에 실버코믹스의 명작을 남긴 작가에는 다니구치 지로가 있다. 드라마 에세이물로 분류되는 다니구치 지로의 대표작은 ‘느티나무의 선물’ ‘열네 살’ 등.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에는 삶과 인간이 있다. 지나간 삶에 대한 성찰과 함께 휴머니즘이 녹아 있다.

‘느티나무의 선물’에는 은퇴한 노부부가 동네 인근 빗물받이를 막히게 하는 느티나무를 놓고 고민하는 장면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동네주민들은 가을마다 낙엽으로 빗물받이를 막히게 하는 느티나무를 베어낼 것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다른 사람의 불편을 바라지 않는 주인공 노부부는 느티나무를 베기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한 날부터 봄이 오고, 어느 해보다도 눈부신 새싹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느티나무의 성장을 바라보며 노부부는 느티나무를 자식처럼 생각하게 된다. 결국 노부부가 동네 빗물받이 청소를 도맡을 결심을 하면서 느티나무는 정원 한가운데에 남게 된다. 하찮은 나무라도 자신의 삶이 다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더 열심히 살려고 하고 더 예쁜 잎을 틔우려고 한다는 것, 이 작품은 따스함을 전해준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9)

‘열네 살’은 중학교 2학년, 열네 살 때에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안고 살아가는 40대 후반 가장이 우연한 기회에 다시 열네 살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 40대 후반의 지식과 기억을 갖고 있는데 몸은 열네 살로 돌아간 주인공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집을 떠나는 아버지를 그 시간, 같은 기차역에서 기다리게 된다. 아버지의 가출을 눈앞에서 말리면서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40대 후반의 고민과 고독,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번민을 이해하게 된다. 다시 가장의 시간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가족에 대한 관심과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이와 비슷한 국내판 드라마 에세이로 ‘빨간자전거’가 있다. 일간지에 연재됐던 김동화 작가의 작품으로 시골살이의 정경을 따뜻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평생 시골에서 살아가는 옛골마을 노인들과 도시에서 은퇴해 전원주택마을로 이사 온 새골마을 노인들이 어울리는 삶을 5일 장터를 중심으로 포근하게 그려낸다. 시인의 집에 편지배달을 할 때마다 우편함에 담겨 있는 시 한 구절은 우편배달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만, 고지서말고는 배달할 게 없어진 시골마을의 실상을 안타깝게 표현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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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버디’

· 전쟁 스펙터클물에서 공상SF물까지

실버코믹스 중 가장 치열하게 읽히는 작품은 일본 우익의 대변자로 일컬어지는 작가 가와쿠지 가이지의 전쟁 스펙터클물이다. 대표작 ‘침묵의 함대’는 일본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해군장교가 미국 자본으로 개발된 핵잠수함을 점령하고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며 전세계 바닷 속을 휩쓸며 핵무기를 폐기하는 이야기다.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의 초현대식 잠수함이 파괴되고 핵이 폐기되는 장면은 장관이지만, 그런 평화의 논리가 여전히 일본 중심적이란 점에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최첨단 해군함정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바다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지팡구’도 우익적 상상력으로 점철된 작품. 일본의 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교재이기도 하다.

전문직업물로는 이미 소개했던 소믈리에 이야기 ‘신의 물방울’과 미술관 큐레이터를 모델로 한 ‘갤러리페이크’, 역사추리물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마스터키튼’ 등이 있다.

국내 스포츠물로는 최근 연재되고 있는 이현세 작가의 골프만화 ‘버디버디’가 있다. 이 작품은 여성 골퍼들의 LPGA 성공기를 그린 시즌1에 이어 남성 골퍼들의 PGA 도전기를 그리는 시즌2가 인기를 얻고 있다. 공상SF물로는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차기 작품으로 각색작업을 하고 있는 프랑스만화 ‘설국열차’도 챙겨 볼만하다.

아저씨가 만화를 봐야 할 이유

실버코믹스는 킬링타임을 넘어서 자기계발과 투자로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만화다. 정보와 깊이 있는 성찰, 어른으로서 삶의 방향까지 실버코믹스가 보여주는 세계는 남은 시간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아저씨가 만화를 고르게 될 때 국내에도 실버코믹스는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실버코믹스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가 풍요로워질 때 한국 만화 원작도 영화로, 드라마로, 게임으로 다양하게 변신해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선진 문화강국이 되어가는 것이다.

한창완│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및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 교수

"나이는 숫자에 불과"…‘쿠거족’의 세계화

기사입력 2009-03-04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1)

최근 또 한 쌍의 스타 커플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얼마 전 종영된 SBS 드라마 ‘스타의 연인’에 출연한 배우 최지우(34)와 역시 SBS 드라마 ‘유리의 성’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이진욱(28)의 열애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연예가의 또 다른 연상녀·연하남 커플들에게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배우 김민희(28)는 6살 연하의 모델 이수혁(22)과 열애중이라는 사실이 지난해 드러났으며 MC 현영(33)과 가수 김종민(30)은 연예계의 닭살 커플로 공인된 바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예외가 아니다. 배우 데미 무어(46)는 무려 15살 어린 배우 애시튼 커처(31)와 결혼에 골인했고, 덧붙여 영국의 해리(24) 왕자가 최근 10살 연상의 호주 미녀가수 나탈리 임브룰리아(34)와 교제 후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소식이 바다 건너까지 들려온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연예계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지난 1월말 SBS 예능 프로그램 ‘연애시대’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100% 몰래 카메라를 통해 각각 5살, 12살 띠동갑 연하남에게서 대시를 받는 여성들의 반응을 보여 줬다. 이 경우 여성들이 모두 연하남의 구애를 선뜻 받아들이는 결과를 보였다.

실제로 지난해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20~30대 남녀 1247명을 대상으로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설문한 결과 77.9%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이유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므로’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 ‘쿠거족’이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또한 미국 여성 온라인 잡지 ‘women24.com’은 일반 여성들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의 향상으로 연애 상대의 경제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연하의 남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어린 남성 또한 직업적 능력을 갖춘 연상의 당당한 여성에게 끌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더 이상 유명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문화임을 또 하나의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대학생 김진우(23·남·가명)씨와 손미나(25·여·가명)씨는 올해로 교제 4년을 맞는 커플이다. 교제 기간 중 이 커플에게도 여느 커플과 같이 위기는 찾아왔지만 나이 차이에 따른 문제는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김진우씨는 오랜 시간 만남을 갖는 자신들이 주변의 부러움을 사 “편안하게 감싸주고 이해할 수 있는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남녀의 성별적인 차이보다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한 인간으로 보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연상연하 커플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라며 “이는 일시적 트렌드에서 나아가 성과 나이를 넘어서 수평적인 관계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가능케 한다”라고 설명했다.

백가혜 / 여성신문 인턴기자 lks2041@naver.com

‘4050 루비족·노무족’을 모셔라

기사입력 2009-02-06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2)

[한겨레] 패션·화장품업계 시니어 공략 강화

중장년층 위한 ‘와인폰’ 대박 나기도

‘루비(RUBY)족과 노무족(No More Uncle)을 모셔라!’

루비족은 상쾌함(refresh)과 특별함(uncommon), 아름다움(beauty)과 젊음(young)의 영어 앞글자를 딴 신조어로, 자신의 삶을 가꾸는 데 열성적인 중장년 여성층을 일컫는다. 노무족은 외모에 큰 관심을 갖고 더이상 아저씨로 불리길 원치 않는 중장년 남성층을 말한다. 패션, 전자, 화장품, 유통업계가 경쟁적으로 루비족과 노무족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중장년층에는 탄탄한 경제력을 지닌 사람이 많아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도 상대적으로 소비여력이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패션업계다. 패션업체들이 대부분 매출 감소로 고전을 하고 있지만,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의 출시는 잇따르고 있다. 제일모직은 올봄 중장년층 여성 전용 브랜드인 ‘르베이지’를 선보인다. 형지어패럴도 이달 초 중장년 남성을 겨냥한 캐주얼 ‘아날도 바시니’를 출시했다. 앞서 알에프케이엔(RFKN)은 지난해 8월 시니어 남성 소비자들을 겨냥한 ‘엘파파’를 내놓았다.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 매달 10% 안팎의 매출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형지어패럴 김영만 마케팅본부 이사는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파레토의 법칙’이 중장년층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크로커다일’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며 “70%가 넘는 매출을 일으키는 30%의 고객층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기기업계 역시 ‘액티브 시니어’(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중장년층)의 마음을 뺏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엘지전자가 중장년층을 겨냥한 ‘와인폰’으로 성공을 거두자, 삼성전자도 최근 이 계층을 겨냥한 ‘오리진폰’을 내놓았다. 와인폰은 2007년 첫선을 보인 뒤 현재까지 130만대가 팔렸다. 업계에서 보통 30만~40만대가 팔리면 ‘히트작’으로 여긴다.

게임기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도 지났다. 한국닌텐도는 두뇌 트레이닝 게임기인 디에스(DS)와 위핏(Wii Fit)을 내놓으면서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광고를 제작했다. 아예 중장년 모델을 등장시켜 ‘중장년층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이다.

화장품업계에서는 포화상태인 시장의 탈출구를 중장년층이 주로 사는 한방 화장품에서 찾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1, 2위인 아모레퍼시픽과 엘지(LG)생활건강은 올해 초 한방 화장품의 성분과 용기 디자인 등을 강화한 상품을 내놓았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전체 화장품 시장 성장은 6% 아래에 머물고 있는 반면, 한방 화장품 매출은 10~20%대의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비(KB)투자증권의 김나연 선임연구원은 “중장년층 인구가 더욱 두터워지면서 시니어 전용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기업들한테 중장년층 공략 강화를 강조한다. 중장년층 관련 산업을 소개하는 누리집인 ‘시니어 통’의 조연미 대표는 “우리보다 중장년층 시장이 한발 앞선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의 70%가 관련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라며 “시니어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추세인 만큼 이들의 욕구를 세심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장년층은 일자리나 집 마련으로 인한 부채 같은 경제적 불확실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기업들은 이처럼 구매력을 갖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틈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집계로는, 국내 ‘시니어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2년 12조8천억원에서 2010년 43조9천억원, 2020년에는 148조5천억원으로 급팽창이 예상된다. 직장에선 ‘은퇴 세대’로 취급되는 중장년층이 소비시장에선 어느덧 ‘뜨는 세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정연 윤영미 기자 xingxing@hani.co.kr

불황 속 신소비족 ‘리세셔니스타’ 눈에 띄네

기사입력 2009-03-17

‘잇걸’(매력적인 여성)로 손꼽히는 자유기고가 A(32)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말 특가와 쟁여놓은 회원 쿠폰제를 이용해 백화점에 입점 중인 C 브랜드의 카디건을 구입했다. 오프라인에 비해 반 이상 저렴한 가격도 구매를 이끈 중요한 요인이 됐지만, C 브랜드 고유의 ‘히피스타일’이 A씨의 자유분방함을 대변하고 그녀의 완소 아이템인 구제 청치마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고민 끝에 클릭을 하고야 말았다.

A씨처럼 착한 가격으로 패션 자존심을 지키는 ‘불황 간지족’들이 뜨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지난해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경기침체를 뜻하는 ‘리세션’(recession)과 최신 스타일을 선호하는 소비자 ‘패셔니스타’(fashionista)의 합성어인 ‘리세셔니스타’가 불황 속 신소비 풍속을 주도하고 있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제 아무리 경제가 불황이라 해도 자기과시 욕구나 아름다움 추구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무조건 없애고 살 수 없다”며 “불황기에 발맞춰 저렴한 가격에 한해 기존 아이템들을 새롭게 재배치하는 등 또 다른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리세셔니스타들은 오히려 경기 불황기를 고품질·고가 아이템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현명한 소비의 호기’로 활용하며, 이를 추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유통하는 데 능하다.

또 이들은 조끼, 구두, 립스틱, 스카프 등 싼 비용으로 정장과 캐주얼을 넘나들며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품목을 즐겨 찾는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맞서 이 같은 소비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프랑스의 부르주아 메이크업의 경우에도 가격이 저렴한 리세셔니스타 컬렉션 마스카라와 립글로스를 출시하는 등 세계 각국의 기업들도 리세셔니스타를 겨냥한 마케팅을 앞 다퉈 선보이고 있다.

한국도 장기 불황으로 인해 백화점 매출은 줄어들고, 브랜드 아웃렛 상품을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가계의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올 1월에는 롯데, 현대 등의 백화점 의류 매출이 0.3% 줄어든 반면, 리세셔니스타들이 즐겨 찾는 금천구의 마리오아울렛의 의류 매출은 14.3%가 늘었다.

특히, 리세셔니스타를 주 소비층으로 공략해 브랜드의 이월 및 기획 상품을 싸게 파는 패션몰 아이스타일24는 1~2월 누적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0%나 폭주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이스타일24 이린희 마케팅팀장은 “불황기인지라 작은 쿠폰 하나로도 매출이 금세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싸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며 “한정된 금액 안에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 같은 유통업자도 놀랄 만큼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획득하는 등 소비가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아가씨 같은 남자’ 초식남을 아시나요?

기사입력 2009-03-01

[JES 홍연정] "오랜 솔로기간으로 인해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지고, 휴일을 외롭게 보내지 않기 위해 취미생활을 열심히 즐겼다. 혼자서 길거리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는 것이 초라해 보일 것 같아서 커피 전문점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혹시나 스타일이 나쁘면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자주 옷을 사 입고 나를 꾸몄다.

오랜 솔로기간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여성의 애매모호한 태도엔 반응하지 않았고, 점차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나를 친구들은 '초식남'이라 부른다." (대학생 박성호(26)씨)

■초식남자 있다

초식(草食)남자를 아시나요? 일본의 칼럼니스트 후카자와 마키가 지난 2006년 처음 용어로 사용한 초식남자는 '남자다움에 구애받지 않는 온후한 남성'을 대변한다. 일본은 이미 젊은 남성 가운데 초식남자가 급증,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일간스포츠(IS)가 결혼정보업체 '가연'과 공동으로 2월 19일에서 22일까지 25세 이상 39세 이하의 성인 남녀 297명(남자 150명, 여자 147명)을 대상으로 '초식남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여성의 34%, 남성의 16%(본인 포함)가 '주변에 초식남자가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이들의 특징은 ▲여성과 친구로의 친분관계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어도 쉽게 선을 넘지 않고 ▲가족, 특히 어머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술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고 ▲취미생활이 다양하며 인생을 즐기며 산다 등으로 요약된다.

■여자는 여자일 뿐이고, 친구는 친구일 뿐이고~

여성에게 들이대는 '육식남자(?)'와 대조적으로 초식남자는 '연인과 여자 친구 사이에 명확한 선 긋기'의 달인이다. 직장인 김은주(31·여)씨는 초식남을 만나 혼자 착각을 한 경험이 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A씨를 만났다.

취미생활, 좋아하는 영화 장르 등 취향이 너무 비슷해 연락을 주고 받았고, 둘이 자주 만나며 같이 영화도 보고 연인처럼 즐겁게 지냈다. A씨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용기 내어 고백했지만 그는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 여자에겐 관심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A씨가 초식남의 전형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초식남자에게 여자도 '친구는 친구일 뿐'이라는 것.

■ 초식남자 애인으로는 '글쎄…'

설문 결과 여성들은 초식남이 '외로워보인다(41%)'고 답했다. 이어 '여자한테 쓰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24%나 됐다. 남성의 경우 이와 달리 초식남자의 최대 단점으로 '개인주의적·이기적으로 보인다(32%)'는 것을 지적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초식남자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이성으로서는 초식남자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식남자가 남녀평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37%), 여성의 생각에 공감한다(29%)'는 장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조적으로 '친구로는 좋으나 애인으로는 싫다'는 의견이 47%를 차지했다.

■아가씨 같은 남자 증가

가연 김영주 대표이사는 "아직까지 사회적인 인식이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답기'를 당연시하지만 초식계 남성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점차 늘고있는 추세"라며 "자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누리며 살려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곧 초식남이 증가하게 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의 보편적 남성상과 다소 다른 초식남자의 등장이 대중에게 아직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또 지나친 자기애와 여성에 대한 무관심으로 지나친 이기주의 혹은 독신의 증가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가씨 같은 남자, 초식계 남자가 일본을 바꾼다'의 저자 우시쿠보 메구미는 "초식남자가 남자다움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평등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며 "새 시대에 어울리는 성숙한 소비 스타일을 선도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홍연정 기자 [lucky7@joongang.co.kr]

오늘 점심도 싼 집을 찾아 실속을 먹는 '런치 노마드'

기사입력 2009-02-26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3)
불황이 깊어가는 가운데 값싼 맛집을 찾아다니며 점심을 해결하는‘런치 노마드’가 늘고 있다. 24일 서울 종로구청 구내식당에서 인근 회사에서 온 직장인들이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3500원짜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값싼 맛집 다니며 2천~4천원에 한끼 해결

아낀 돈은 취미 생활·자기 계발 등에 사용

인터넷으로 정보 교환… 관련 책자도 인기

회색 양복을 입은 30대 회사원이 앞사람 등에 떠밀려 뒤에 있는 20대 여자 회사원의 하이힐 콧등을 꽉 밟았다. "아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24일 오전 11시50분, 서울 서초동 서초구청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에 20~30대 남녀 회사원 100여명이 두 줄로 20m 가까이 늘어서 있었다. 구청 직원들이 아니라 '3000원짜리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온 인근 회사원들이다.

정오에 배식이 시작되자, 264㎡(약 80평) 규모의 식당 안으로 밀물처럼 회사원들이 밀려들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200개 좌석이 꽉 찼다. 20분이 지나자 배식대에 놓인 밥·무국·냉이고추장무침·취나물두부무침이 동났다.

이덕행(48) 서초구청 후생복지팀장은 "작년 상반기만 해도 구청 직원과 민원인들이 하루 500~600명씩 점심을 먹었는데, 외부인이 자꾸 늘어 요즘은 하루 평균 1100여명이 북적댄다"고 했다. 회사원 김은경(여·26)씨는 "점심은 무조건 2000~4000원으로 해결한다"며 "1000원짜리 주먹밥집, 3000원짜리 구청식당 등 회사 근처의 값싼 맛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김씨는 점심값을 절약한 돈으로 영어회화 새벽반에 다니고 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값싼 맛집을 찾아 헤매는 '런치 노마드(Lunch Nomad)' 족이 늘고 있다. '런치 노마드'는 점심(lunch)과 유목민(nomad)을 합친 신조어다. 점심값을 아끼려고 인터넷으로 값싼 맛집을 검색하며 필사적으로 발품을 파는 20~30대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시각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구내식당도 3500원짜리 점심을 먹으러 온 20~30대 남녀로 빈자리가 없었다. 이곳 주방에서 20년 넘게 일한 김양순(여·69)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부쩍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서울역 근처 병원에 다니는 간호사 조진주(여·27)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며 "한 푼이라도 아껴서 결혼 자금에 보태려 한다"고 했다.

여의도의 한 대형 맥줏집도 4000원짜리 한식 뷔페를 먹으러 온 직장인들로 180석짜리 홀이 꽉 찼다. 맥줏집을 점심에만 빌려서 영업한다는 박태진(55) 사장은 "이 동네에서 젊은이들을 붙잡으려면 기업 구내식당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건물 짓고 장비 사서 식당 차리면 도저히 이 값에 음식을 댈 수 없다"고 했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이모(29)씨는 동료 7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는 "어젯밤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집을 찾았다"며 "점심값을 아껴서 한 달에 10만원씩 모아 마케팅 관련 학원비에 보탠다"고 했다. 이씨의 동료 정모(28)씨는 점심값을 절약한 돈으로 다음 달에 30만원짜리 중고 산악자전거를 살 계획이다.

주요 포털 사이트마다 '런치 노마드'들이 즐겨 찾는 맛집 관련 카페와 블로그가 번성하고 있다. 회원 수가 9만3000명인 네이버의 '짠순이' 카페에는 서울·부산·대구 등 지역별로 값싼 맛집 수백 곳의 점심값과 맛에 대한 평가가 정리돼 있다.

'런치 노마드'들은 까다롭다. 무조건 싼 집만 찾는 게 아니라 '조미료를 넣지 않는 곳' '주방이 깨끗한 곳' 등을 따진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만난 여성 '런치 노마드' 중에는 "영양사가 배치된 식당에 가야 '칼로리 계산'이 정확하기 때문에 관공서와 기업체 구내식당을 찾아다닌다"는 사람이 많았다.

연세대 사회학과 한준(43) 교수는 "비슷한 현상이 IMF 위기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인터넷도 미비하고, 정보도 부족해서 '싼 걸로 때우고 만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지금은 정보도, 기호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족을 얻으려 한다"고 했다. '런치 노마드'는 그 와중에 생겨난 풍속도라는 분석이다.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 직원 진영균(29)씨는 "'런치 노마드'들을 겨냥해 값싼 맛집, 값싼 요리법을 안내한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어디 싸고 맛있는 집 없을까(김영주 지음·넥서스북스)', '3000원으로 원조 맛집 표절하기(지은미 지음·그리고책)', '5000원으로 맛집 순례하기(파찌아빠 지음·그리고책)' 등이다.

'런치 노마드'가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청은 이달 초 구내식당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했다. 2800원짜리 점심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런치 노마드'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석윤 서울시청 청사운영 1팀장은 "외부인이 하루 400명씩 몰려 감당할 수가 없었다"며 "아직도 하루 50명 넘게 외부인이 찾아왔다가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블링족’ 가고 `쿠폰족’ 온다

기사입력 2009-02-26

경기불황으로 고가품으로 치장한 ‘블링족’은 지고 할인쿠폰이나 타임세일을 이용하는 ‘알뜰 소비족’이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뚜렷하다. 아이스타일24은 올 1,2월 두 달간 전체 매출액에서 쿠폰사용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115% 증가했다.

특히 평소 쿠폰혜택에 큰 관심이 없던 남성고객의 이용률도 늘었다. 동기간 지난 남성고객의 쿠폰 이용률은 14% 이상 증가했다. 이에 아이스타일24는 금주의 수다퀸왕짱’ 이벤트를 열고 ‘해피라운지’의 패션매거진 기사에 댓글을 달면 매주 3명을 추첨해 1만원 권 쿠폰을 지급한다. 또 시간대별로 하루 4번 할인 쿠폰을 발급하는 ‘선착순 쿠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앤샵은 ‘주말 샷데이(shot day)’ 기획전을 열고 금요일 오후 5시부터 일요일 자정까지 패션카테고리의 세트상품을 최대 6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알뜰 쿠폰족을 위해 ‘디앤포인트월드’ 코너를 만들어 즐겨찾기에 디앤샵 주소를 추가 후 사이트에 접속하면 1000~6000원짜리 할인쿠폰을 발급한다.

엔조이뉴욕도 적립금과 쿠폰으로 결제하는 고객이 크게 증가했다. 1~22일까지 결제 조건을 조사한 결과, 작년 동기 대비 적립금 이용 횟수는 225% 증가했으며, 쿠폰 사용건수도 144% 증가했다. 특히 상품을 구매할 때와 상품평 작성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적립금을 바로 증정하기 때문에 이용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G마켓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3일간 타임세일 코너인 ‘주말할인마트’를 운영중인데 지난해 연말보다 현재 이용자수가 10%가량 늘었다. 주로 생필품 구매가 많으며 최근에는 금요일에 구입해 주말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나 외식,서비스 등 e쿠폰 상품도 인기다 애경의 ‘2080치약’은 치약 8개(160g)와 치약짜개를 포함해 1만1200원에 판매중이고 대한펄프의 ‘깨끗한나라 두루마리 화장지(30m*30개입)는 1만700원에 판매한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m.com)

[공연]뮤지컬 多覽族을 아십니까

기사입력 2009-02-26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4)

[동아일보]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1. 울산에 사는 이하루 씨(28·학원 강사)는 두 권의 스크랩북을 갖고 있다. 한 권당 공연 표 80장이 들어가는 책에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표 160장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다. 이 씨는 2004년 친구 손에 이끌려 우연히 보게 된 후 매달 일정액을 ‘지킬용 적금’으로 할애한다. 요즘도 그는 이 작품의 서울 공연을 보러 토요일 오전 서울에 올라와 일요일 오후 늦게 내려가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2. 손성희 씨(32·회사원)는 2006년 4월부터 뮤지컬 ‘헤드윅’을 190번 본 ‘헤드윅 마니아’. 이제는 무대 뒤편에서 연주하는 밴드의 실수까지 꼼꼼하게 모니터한다. 그는 빠듯한 월급에 10만 원 안팎의 공연 티켓을 사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남들이 한 달 유럽여행을 갔다 올 비용으로 3년 동안 더 오래 행복했으면 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배우-객석위치따라 새 느낌”

마니아층 갈수록 급증

공연애착 바탕 제작 관여하기도

○ ‘헤드윅’만 190번 관람… 질리지 않는 ‘현장성’ 장점

영화 드라마 콘서트와 달리 뮤지컬에는 최소 30번부터 최대 200번까지 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는’ 마니아 관객이 많다.

이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본다는 뜻에서 ‘다람(多覽)족’으로 불린다. 공연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뮤지컬 공연 가운데 ‘맘마미아’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 ‘김종욱 찾기’ 등의 재관람률이 다른 공연의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람족’이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같은 공연이라고 해도 프로덕션과 연출, 배우와 컨디션, 객석 위치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공연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뮤지컬 평론가인 이유리 교수(청강문화산업대)는 “뮤지컬은 중독적인 ‘경험재’라는 특성이 있어 특히 다른 장르에 비해 반복적으로 작품을 보는 마니아가 많은 분야”라고 말했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50번 관람했다는 최효선 씨(23·대학생)는 “무대 공연은 생방송으로 제작된 드라마와 같다. 볼 때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새롭고, 보면 볼수록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한 장면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그는 2007년 10월 김해에서 라이선스 개막 공연을 본 후 서울, 대전, 대구, 경기 성남시 등 전국 투어와 갈라 콘서트까지 관람했다.

장기 공연되는 뮤지컬이 많아지며 △캐스팅과 연출 등에 변화를 준 시즌제 도입 △주인공이 세 명인 ‘트리플 캐스팅’의 보편화 등 달라진 공연 환경도 다람족이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김종욱 찾기’를 50번, ‘아이 러브 유’를 38번 봤다는 직장인 정성엽 씨(35)는 “아무리 좋은 공연도 다섯 번 정도 보면 질린다. 하지만 요즘 공연은 배우들이 몇 개월 단위로 바뀌고 같은 배우들로도 다양한 조합을 구성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스’를 80번, ‘김종욱 찾기’를 54번 본 이선규 씨(35·보건복지가족부 사무관)는 다람족의 등장을 ‘2030세대’들이 콘서트장에서 공연장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1990년대 아이돌 스타를 쫓아다닌 팬덤 문화를 경험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세대들이 경제력에 걸맞은 취미생활로 공연장을 택했다.”

○ 전문식견 내세워 ‘생산적 소비자’로

공연 예술은 객석의 힘이 다른 문화 상품에 비해 큰 편이다. 이러한 까닭에 ‘다람족’은 전문가 못지않은 정보와 애착을 바탕으로 캐스팅부터 대사 연출 등 공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효선 씨는 “조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에서 조명 핀이 맞지 않거나 스테인드글라스 문양이 조명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작은 실수들을 발견하고 이를 제작진에 건의해 대화를 나누면서 작품과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며 “배우의 립스틱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 제작진에 직접 건의했고 반영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55번 정도 봤다는 직장인 차용홍 씨(35)는 2007년부터 배우, 연출가와 관객이 만나는 ‘클럽 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를 통해 연출가에게 흐름에 맞지 않는 대사나 캐스팅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 기획자는 “연출가보다 공연을 더 많이 본 ‘다람족’들은 공연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깐깐한 ‘시어머니’ 같은 존재”라며 “연출의 고유 권한을 크게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커피전문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우린 Coffice족(族)<코피스 : coffee+office>"

기사입력 2009-02-24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5)
23일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캐나다 출신 영어강사 케이티(24·왼쪽 사진)씨가 강의자료를 만들고 있다. 김대훈(AIG생명 근무·오른쪽 사 진)씨는 광화문의 커피전문점에서 컴퓨터로 고객관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윗사람 눈치 안보고 나만의 '공간'으로

"노트북·휴대폰 있으면 사무실보다 편해"

23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P커피전문점에서 장모(41·여행사 대표)씨가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을 장착한 노트북으로 고객들의 예약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직원 3명이 일하는 사무실이 바로 앞 오피스텔이지만 그는 매일 이곳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낸다고 했다. "사무실에 있으면 전화가 시시때때로 걸려와서 시끄럽고 산만하거든요. 건물 전체가 금연이라 담배 피울 곳도 없고요." 그는 "여기 있으면 일에 매달려 있다는 느낌도 덜 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쯤 광화문 인근 C커피전문점에서는 S은행 내부컨설턴트인 고모(여·28)씨가 두터운 영문서류를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다 현재의 직장으로 옮긴 고씨는 "상사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두 시간 정도 일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쉬는 날에도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집 근처 커피전문점을 찾는다"고 했다.

커피전문점에서 반나절 이상 일하거나 공부를 하는 '코피스(Coffice)' 족이 늘고 있다. 코피스는 커피(coffee)와 사무실(office)을 합친 말이다. 코피스 족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이곳을 '일터'로 삼는다. 사무실이 따로 있어도, 윗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잡무와 회의에 불려다닐 필요도 없는 커피전문점에서 2~3시간 동안 자기만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휴대전화와 노트북만 있으면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용무를 볼 수 있는 도심의 커피전문점은 이들에게 최적의 '은신처'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광화문 세종로 부근 등 사무실 밀집 지역의 커피전문점에 가면 몇 시간씩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코피스 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해 무선 인터넷 공유기와 전원 콘센트를 구비하는 커피전문점들도 늘고 있다.

대학 캠퍼스 주변 커피전문점에는 아예 아침에 '등교'해 저녁에 '하교'하는 학생들까지 등장했다. '캠퍼스 코피스 족'이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부근 C커피전문점에서 만난 윤경수(20·연세대 법학과)씨와 최민영(20·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씨는 2인용 탁자에 종이컵과 '민법총론'을 비롯한 두터운 법학 서적을 펼쳐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윤씨는 사법고시, 최씨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윤씨와 최씨는 "학교 도서관은 빡빡하고 집안에 있으면 퍼진다"고 했다. "독서나 가벼운 공부 하기에는 커피전문점이 딱이죠. 같이 공부할 수도 있고요." 두 사람은 "세 시간 정도 공부를 한 뒤 밥을 먹고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서울대 인근 신림동 녹두거리의 H커피전문점도 이 같은 대학가 코피스 족의 아지트다. 박정수 점장은 "길게는 8시간 동안 꼼짝 않는 경우도 있다"며 "매일 우리 가게를 찾는 코피스 족은 대략 20명 안팎"이라고 했다.

커피전문점 업체들은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을 상대로 코피스 족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C커피전문점은 젊은 직장인 손님들이 많은 압구정 로데오점 3층에 해외 디자인 관련 전문서적과 열람실, 노트북 작업 공간 등을 들인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회원에 가입하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인근 A커피전문점은 "현재 전국 152개 매장에서 노트북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무선랜을 설치하고, 객장 내 콘센트들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문화비평가 이명석씨는 "젊은 층에 있어 커피전문점은 집과 직장 사이의 '제3의 장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섹스 앤 더 시티'같은 미국 드라마의 세련된 영상이 젊은 층에 어필한 데다, 무선랜의 활성화 추세에 힘입어 일반적인 패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미국 드라마의 영향과 함께 대학 시절 커피전문점에 익숙했던 세대가 직장인이 되어서도 사무실보다는 편한 곳을 찾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박국희 기자 freshmen@chosun.com]

당신도 ‘초식계 남자’?

기사입력 2009-02-18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6)

[동아일보]

日불황여파 양 같은 온순男증가

이성에 관심 없고 독신생활 즐겨

일본에서 ‘잃어버린 10년’의 여파로 젊은 남성 가운데 ‘초식계(草食系) 남자’가 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초식계 남자란 육식동물처럼 공격적이지 않고 양처럼 온순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성실한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 이성교제에 관심이 없는 대신 독신생활을 즐기면서 개인적 취미나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이 신문은 지난해 한 결혼정보회사 조사에서 ‘여자친구가 없다’고 답한 성인남성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연애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실에 주목하며 초식계 남자들이 연애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겨도 쉽사리 ‘선’을 넘지 않는다. 이 신문은 이성친구와 밤늦게 술을 마시다 막차를 놓쳐 러브호텔에 함께 투숙한 뒤 “그냥 잠만 잤다”는 30세 회사원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초식계 남자는 일본 경제와 소비형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외양은 멋지지만 유지비가 많이 드는 스포츠카 대신 실용성이 뛰어나고 승차감도 좋은 콤팩트카가 각광받는 것이 대표적 사례. 젊은 층을 겨냥한 소형 콤팩트카를 2002년 처음 출시한 이후 인기를 끌고 있는 닛산자동차 관계자는 “젊은 남성들이 속도감이나 힘보다 편안한 공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에 소개된 생활 칼럼니스트 후카자와 마키(深澤眞紀) 씨는 일본 사회에 초식계 남자가 등장한 배경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뭔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었던 점 △‘잃어버린 10년’ 동안 성장하며 미래에 대한 큰 기대 대신 성실함만을 지향한 점 등을 꼽았다.

일부에선 초식계 남자가 “(여자를) 이끌 줄 모른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아가씨 같은 남자, 초식계 남자가 일본을 바꾼다’의 저자 우시쿠보 메구미(牛窪惠) 씨는 이들이 “남자다움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평등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며 “새 시대에 어울리는 성숙한 소비 스타일을 선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대학 졸업반 졸업유예‘NG족’ 는다

기사입력 2008-02-11

[쿠키 사회]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졸업을 반기지 않거나 취업 준비를 위해 아예 졸업을 미루는 유예자들이 늘고 있다.

오는 22일 졸업식을 앞둔 박정균(여·24·춘천시)씨는 “한 과정을 마무리한다기보다 새로운 고생문이 열린다는 느낌”이라며 “요즘엔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도 어려워 졸업이 축하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예 졸업을 미루는 졸업유예자도 늘고 있다.

이들은 졸업학점이 되지 않게 하거나 졸업논문, 졸업인증자격 획득 등을 미뤄 졸업이 아닌 수료증만 받아 졸업예정자 신분을 유지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졸업을 미루기 위해 지난 학기에 학점을 모자라게 신청한 곽호림(26·춘천시)씨는 “일반기업은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며 “한 학기 등록금이 더 들지만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좀더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최수인(여·23·경기도안산시)씨는 “바로 졸업하는 것보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더 좋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07년 졸업자 취업률 조사 결과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도내 전문대학은 81.2%로 12위, 4년제 대학은 67.4%로 10위, 일반대학원은 79.7%로 14위에 머물렀다.

강원대 취업정보센터 관계자는 “취업을 위해 휴학이나 연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졸업연령이 높아지고 취업 준비 기간도 장기화되고 있다”며 “채용에 나이 제한을 두는 곳도 있기 때문에 무작정 졸업을 늦추는 것은 오히려 취업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강원일보 전원식기자 wsjeon@kwnews.co.kr

이퇴백·삼초땡·부친남… 고용불안에 더 독해진 유행어

기사입력 2009-02-05

[서울신문]취업난과 고용 불안 세태를 빗댄 유행어들이 불황을 타고 거듭나고 있다. 새로운 조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감원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시기에 탄생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 정년퇴직)’ 등의 신조어보다 한층 독해졌다는 평가다. 신조어들은 취업포털 커리어가 4일 정리했다.

이태백은 이제 ‘이퇴백’으로 변했다.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고 보자는 마음에 취업을 했다가 적성이나 근무조건이 맞지 않아 조기 퇴사하는 경우가 많음을 빗댄 말이다. ‘88만원 세대’, ‘인턴세대’, ‘청년실업 100만 세대’ 등 이 세대 고용문제와 관련된 조어들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삼초땡’은 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존 은어인 ‘오륙도(50~60대에 계속 회사를 다니면 도둑놈)’나 ‘삼팔선(38세가 넘으면 구조조정 대상)’에 비해 외풍을 맞게 되는 연령대가 급격히 낮아진 셈이다.

경기침체가 파고든 생활속 변화도 조어로 탄생했다. 연봉 많고 아내에게 자상하며 얼굴도 잘생긴 ‘부친남(부인 친구 남편)’과 실직한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신체적·정신적 이상을 겪는 ‘은퇴 남편 증후군’이 각박해진 가계를 상징하는 용어로 떠올랐다고 한다.

호황기에 화두였던 ‘웰빙족’은 폼나게 빌붙는 ‘웰빈족’으로 받침을 바꿔 회자되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대학가 ‘알부자’를 아십니까?

기사입력 2009-02-11

[주간동아]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7)

긴겨울밤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대학생 이모(21·부산) 씨는 24시간 편의점에서 담배 한두 갑 사러 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급 5000원에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각박한 겨울방학을 보낸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일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편의점 일을 마치는 저녁시간이면 터덜터덜 두 번째 아르바이트 직장인 호스트바로 향한다. 호스트바를 찾는 손님은 두 부류다. 돈 많은 사모님, 혹은 스트레스 풀러 온 주점 도우미. 이씨는 이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말동무를 해준다.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에는 순순히 응하지만 ‘그 이상’의 요구는 요령껏 피한다.

“작년 3월에 친구 소개로 가끔 (호스트바에) 나왔어요. 등록금 걱정 때문에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일했고요. 운 좋은 날은 하룻밤에 50만원도 벌지요.”

영어학원, 스키장? 꿈도 못 꿔

이씨는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형편이 어려워졌다. 어머니가 구한 일은 분식집 주방 보조. 친가에서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기당 440만원의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충당했다. 이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12시간 일해도 고작 6만원밖에 못 벌기 때문에 호스트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스스로 떳떳하고 싶기에 편의점을 그만두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이씨의 전공은 영상학. 고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과 공부에 매진할 수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호스트바에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엔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게 돼요. 그래도 호스트바 대기실에서 틈틈이 전공서적 읽고 영어단어장을 들여다봐요. MT는 가지 않아요. 술 마시고 놀기 바쁜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화도 좀 나거든요.”

대학가에 ‘알부자’ 대학생이 늘고 있다. 알부자란 ‘알바(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을 대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최근 ‘대학내일’과 한국리서치가 서울 소재 남녀 대학생 1014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1%(21명)가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도 11.2%(114명)나 됐다. 용돈을 ‘스스로 번다’고 응답한 비율도 23.3%에 달했다.

대학가 ‘알부자’들은 수업시간 외 시간을 대부분 아르바이트에 할애한다. 자연히 학업에 매진할 수도, 대학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다. 지금과 같은 겨울방학은 이들에게 이른바 ‘대목’. 학기 중보다 두 배는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다. 방학 동안 영어학원에 다닌다거나 자격증 공부를 할 시간은 없다. 스키장 여행은 ‘알부자’ 대학생들에겐 언감생심이다.

대학 진학이 흔치 않던 1960, 70년대 고학생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재’라는 사회적 존경을 얻었다. 그러나 2000년대판 고학생이라 할 ‘알부자’들은 사회적 대우는커녕 하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으면 다행이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아르바이트 중개사이트 알바몬이 지난해 12월 2주간 게재된 아르바이트 건수를 조사한 결과 전년 동기보다 8% 적은 6만여 건이었다. 반면 신규 등록된 이력서 수는 전년 대비 38%나 늘었다. 일자리는 주는데 일자리 구하려는 대학생들이 자꾸만 늘고 있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에 재학 중인 김모(25) 씨는 보습학원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호주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그는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12월 “학원 사정이 어려우니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경기침체 여파로 수강생이 줄자 강사 줄이기가 불가피했던 것. 김씨는 “원장이 ‘내 아내가 직접 강의에 나서야 할 만큼 학원 사정이 나빠졌으니 이해해달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대신 과외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지만 워낙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대학생이 많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8)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 ‘알바몬’의 구직 게시판.

친구 만나기도 어려운 팍팍한 현실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방모(21·여) 씨는 방학이 되자마자 사무실 밀집 지역 레스토랑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불황 탓에 손님이 줄었는데 방학 때는 사정이 더 좋지 않아 ‘고용 유지’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급 5000원에 하루 5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한 기쁨도 잠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도 불황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손님보다 종업원이 많은 날이 잦았다. 방씨는 “결국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잘렸다”며 답답해했다.

‘알부자’ 대학생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불황만이 아니다. ‘저렴한’ 인건비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잠식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 경희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인 유학생 탕모(23) 씨는 “나처럼 생활비도 벌고 한국어를 익히려고 아르바이트하는 중국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경희대 근처 한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그는 시급 4500원을 받는다고 했다. 탕씨는 “외국인 유학생 시급이 한국 학생보다 500원 정도 적어 식당 주인들도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서울 소재 전문대에 다니는 양모(24) 씨는 인터넷 메신저 대화명이 ‘한량’이다. 한량처럼 살기 때문이 아니라 한량처럼 살아봤으면 해서다. 그는 “돈 걱정도, 앞날에 대한 걱정도 없이 며칠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역시 ‘알부자’인 양씨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면 선약이 있다고 둘러대거나 “돈이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용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담배도 줄였다. 그러나 정작 경호원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음 학기 등록금 356만원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졸업 전까지 무이자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요. 취직한 뒤 갚아나갈 생각입니다.”

편의점과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이씨와의 인터뷰는 인터넷 메신저 대화로 이뤄졌다. 자정부터 시작한 대화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3시간 뒤엔 편의점으로 출근해야 한다”며 “그 전에 밥을 좀 먹어야겠다”고 했다. ‘알부자’ 대학생은 팍팍한 현실을 향해 그렇게 로그아웃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정(서강대 중국문화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모닝커피] 이퇴백, 삼초땡, 웰빈(貧)족… 슬픈 신조어

기사입력 2009-02-05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19)

이퇴백: 이십대에 퇴직한 백수

삼초땡: 삼십대 초반이면 인생 땡

웰貧족: 돈없어도 폼나게 빌붙자

'인턴세대', '삼초땡', '에스컬레이터족(族)'….

글로벌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이와 관련된 신조어(新造語)들이 쏟아지고 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 사이에는 '졸업 예정자'란 표현보다 '실업 예정자'가 유행이다. 졸업과 동시에 할 일이 없다며 스스로를 '졸업 백수'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규취업이 줄고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고용이 위축되는 현상을 '고용 빙하기'로 부른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20)

인턴을 해도 정규직으로 되기 어렵고 한때의 공공근로자나 단기 비정규직에 머무르는 청년 구직자들은 '인턴 세대'로 자신들을 표현한다. '에스컬레이터족'은 취업 조건을 높이기 위해 편입학을 거듭하며 몸값을 올리는 대학생들을 뜻한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증가와 관련된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20대에 스스로 퇴직을 선택한 '이퇴백(이십대에 퇴직한 백수)'이 대표적. 급하게 취업했다가 적성이나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아 일찍 회사를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삼초땡(삼십대 초반이면 인생 땡)'은 명예퇴직 연령이 30대 초로 낮아졌다는 의미이다.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30~40대들의 실직이 늘자 '100만 백수가장'이라는 말도 생겼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풍토를 반영한 신조어들도 있다. 직장에서 업무용 메신저를 사용하다가 메시지를 잘못 보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뜻하는 '챗화(chat+禍)',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못하니까 얻어먹어도 된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사달라고 하는 '웰빈(well-貧)족'이란 표현도 생겼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김기태 대표는 "최근의 신조어들은 급속하게 냉각된 취업시장과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진 기자 mozartin@chosun.com]

[사회] 외계어 같은 인터넷 신조어들

기사입력 2009-02-10

직장인 임승배(52)씨는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아들이 대화창에 적은 “솔까말 수능보기 전까지만 해도 듣보잡 대학은 아오안이었는데”란 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씨는 “나름대로 아들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알고 있는 정도로는 아들과 또래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며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인터넷 용어들 때문에 부모와 아이들 간의 언어 세대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제 인터넷은 책이나 신문, 텔레비전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전세계인이 함께 살고 있는 ‘또 하나의 행성’ 인터넷 안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덧글’ ‘몸짱’ ‘폐인’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들도 불과 몇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나의 단어로 정착되어 국민 대다수가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속에는 표준어에 익숙한 사람을 순식간에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외계어 같은 신조어들이 우글우글하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인터넷 신조어들은 세대 간의 언어 문화를 단절시키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도 많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지금 시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며, 그 문화의 충돌이 표면화되고 있는 시기”라며 “자생적인 디지털 문화는 막을 수 없는 변화”라고 말했다. 정씨는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보다 긍정적 방향으로 디지털 문화를 이끌 수 있는 규범이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과 친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을 위해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를 알아보자.

어려운 경제·취업난을 반영한 말들●이구백20대 90%가 백수라는 뜻.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서 발전한 말.

삼일절31세까지 취업 못하면 취업길 막힌다.

●토폐인토익이 만병통치약인 줄 알고 토익만 공부했다가 취업 못하고 폐인 된 족속.

●A매치 데이 금감원·한국은행 등 높은 급여와 복지, 정년을 보장하는 국책은행들의 입사시험이 겹친 날.

●3대 입시 클러스터고교 때는 대치동 학원가, 대학시절에는 신림동 고시촌, 졸업 뒤엔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

●취업 5종 세트어학연수, 공모전 수상, 인턴, 봉사활동, 자격증.

●38선사기업 체감 정년 38세.

●면창족명예퇴직 압력에 일없이 창문만 보는 임원.

조기조기 퇴직자.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짧게! 암호 같은 줄임말●부친남 ‘부인 친구의 남편’. 마누라가 남편을 비교하는 대상이 완벽하고 모자랄 것 없는 친구의 남편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능력·성격·외모가 완벽한 사람. 비슷한 용어로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 아친딸(아빠 친구의 딸) 등이 있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다한 것’.

●인개축‘인터넷 개통을 축하합니다’. 속뜻은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행동)를 한 것’을 비꼬는 말이다. 온라인에서 철 지난 유머를 구사하거나 뒷북을 치는 것을 빗댄 표현이기도 하다.

●아오안‘Out of 안중’. 관심이 전혀 없다, 안중에 없다는 뜻.

●열폭‘열등감 폭발’. 성공하거나 잘난 사람을 보거나, 어떤 일에 대해 열등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는 것. 악플에서 많이 사용한다.

●걸조 ‘걸어 다니는 조각’. 매우 잘생긴 사람. 유사어로 ‘걸바(걸어 다니는 바비 인형)’가 있다.

오타쿠? 오덕후? … 비유어들

완전체 여자 성격이 나쁘다거나 악의적으로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것은 아니지만 종잡을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남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여성. 주어진 상황이나 질문에 대해 상식 범위를 한참 벗어난 반응을 보이는 여성.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쓰인다.

●낚시 미끼에 물고기가 속아 넘어가는 것처럼 사기를 쳐 사람을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 제목을 단 글처럼 내용과 제목이 다르거나 내용이 너무 빈약한 경우 ‘낚시 글’ 또는 ‘낚시성 기사’라고 한다.

●오덕후 일본어 ‘오타쿠’의 변형. 어떤 장르나 대상에 심취한 사람.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 그룹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정도가 심한 이들은 ‘십(10)덕후’라고도 불린다.

●말갈족 원래는 6~7세기 만주 북동부에 살던 종족 이름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대략 얼굴이 크고 매우 긴 형상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

●욕설 대신 사용되는 게시판, 도라지, 18센티 등의 어감 강한 단어들

“10색 볼펜아” “이 게시판 도라지야” “18센티 광케이블아” “이 물방개 새우과자야” 등.

딩크족·여피족… 진화하는 신인류●그루밍(grooming)족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을 가리킨다. 그루밍은 여성의 뷰티(beauty)에 해당하는 남성의 미용용어로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데서 유래한 말. 이들은 피부와 모발관리는 물론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모가 제2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의 업무와 비즈니스 능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그루밍족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웹시(Websy)족 웹(web)과 미시(missy)의 합성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쇼핑을 즐기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주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아, 쇼핑, 여가 생활 등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이버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한다. 웹시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여성 전용 포털이나 쇼핑몰도 늘어나고 있다.

●루비(RUBY)족 나이는 40~50대면서 외모는 30대이고 경제력을 갖춰 자신을 가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여성들을 가리킨다. ‘아줌마 스타일’보다 젊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Refresh(상쾌한), Uncommon(평범하지 않은), Beautiful(아름다운), Young(젊은)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지난해 KBS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연기자 장미희의 배역이 대표적 표본이다.

●나이트쿠스(NIGHTCUS)족 밤을 뜻하는 나이트에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CUS)를 붙여 만든 신조어. 사람들이 단잠에 빠지는 오후 10시∼오전 2시에 더 활동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대학생들과 30대 초반의 신세대 직장인이 주류를 이룬다.

●쿠거족 쿠거는 북미에 서식하는 고양이과의 동물. 먹이를 찾을 때까지 어슬렁거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쿠거처럼 밤늦게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나이 든 여성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어린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결혼하는 여성이라는 의미로까지 발전했다.

●캥거루족 대학 졸업 후 취직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취직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얹혀 사는 사람을 말한다. 취직을 했는데도 임금이 적어 독립을 못하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부모에게 얹혀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캥거루족에 속한다.

●헝그리 어답터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신제품을 구입할 여유가 없는데도 신제품이라면 꼭 구입해 사용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사용하던 중고품을 팔아 신제품 살 돈을 마련한다. 새로운 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하는 ‘얼리 어답터’에서 파생된 말이다.

/ 김샛별 인턴기자 samangga@naver.com

양가온 인턴기자 gogaon@naver.com

블로그로 돈버는 넷테크 와이프로거

기사입력 2009-02-23

[머니투데이 이정흔 기자][[머니위크 커버스토리]똑소리 나는 주부 9단 와이프로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딸 둘을 둔 주부 연미주(37) 씨는 요즘 자신의 블로그를 꾸미는데 열심이다. 컴맹이나 다름없던 그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재테크’ 때문이다.

블로그와 재테크. 연씨가 별로 상관없을 듯 보이는 이 두단어의 ‘밀접한 관계’를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전이었다. 그는 몇푼 안 되는 활동비라도 벌어 볼까 싶어 한 제과회사의 제품 체험단에 지원했다. 그런데 모니터 활동을 하다 보니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혜택을 따로 주는 것이었다.

연씨는 “보통 블로그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페이가 2배”라며 “나도 같은 조건이라면 돈을 더 많이 받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블로그 잘하는 주부들이 재테크도 고수다?’ 최근 들어 기업들의 와이프로거 마케팅이 활발해지면서 주부들 역시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넷테크 와이프로거. 연씨와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21)

◆스타 와이프로거를 꿈꾼다. ‘넷테크 와이프로거’

'베비로즈' 현진희, '둥이맘' 문성실, '레몬 테라스' 황혜경 등 1세대 스타 와이프로거들의 성공은 이미 주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가 된 이들도 처음엔 평범한 주부였다. 바꿔 말하자면 누구라도 ‘제 2의 문성실’, ‘제 2의 황혜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온라인 소비문화 키워드5’라는 보고서에서 ‘넷테크 와이프로거’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HS애드 브랜드연구소의 백현정 책임연구원은 “바로 이 점이 평범한 주부들을 블로그 앞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특히 1세대 와이프로거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이들이 얻고 있는 경제적 이익이 주부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다”며 “스타 와이프로거를 닮고 싶어하며, 블로그 활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넷테크 와이프로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넷테크 와이프로거들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기업들의 블로그 마케팅이다. ‘주부 체험단’, ‘주부 서포터즈’ 등의 이름으로 주부들에게 직접 제품을 협찬, 사용해 보도록 한 뒤 그 후기를 블로그나 카페에 싣도록 하는 것이다.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등 주부를 타깃으로 한 제품군에서는 이미 2~3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와이프로거 마케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소형 오븐을 생산하고 있는 컨벡스코리아 홍보팀 박영경 사원은 “스타 와이프로거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이고서도 주부들 사이에서 엄청난 입소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입하는 데 인터넷에서 제품 후기를 참조하는 최근의 경향과 경기 불황으로 마케팅 비용을 줄여야 하는 기업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 같은 중소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방법 중 하나"라며 "최근에는 높은 효과가 입증되면서 대기업까지 활발하게 참여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기업 선호 1순위는 ‘블로그 성실성'

주부생활 5년 차인 김서정(37) 씨는 얼마 전 친구와 함께 한 가전제품회사의 김치 냉장고 ‘주부 서포터즈’에 응모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 하나만 지참한 김씨와 달리 그곳에 참여한 대부분의 주부들은 최신 카메라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미 그들끼리는 친분이 두터운 듯 삼삼오오 모여 ‘어디 체험단 시작한다는 데 참가했냐'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며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아 블로그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통 주부 체험단에 참여해 모니터 활동을 하게 되면 얻게 되는 수익은 건당 10만원에서 60만원 정도. 개인 마다 블로그 인지도나 활동 제품의 수에 따라 월 100만원을 넘어서는 고수익도 가능하다.

그러니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싶은 주부들의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인 셈이다. 굳이 따로 활동비를 지급받지 않더라도 제품을 보다 싸게 혹은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이니 빠듯한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와이프로거들은 체험단에 당첨되기 위해 친한 이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 ‘새로운 체험단 모집’ 소식을 공유하는가 하면, 당첨 잘 되는 노하우를 주고받기도 한다. 포토샵 등 블로그 꾸미는 법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2007년부터 한솔홈데코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있는 한솔 홍보팀 이승엽 대리는 “제품 체험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말’만 가득 써주면 뽑히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며 “와이프로거들이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가 1차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통해 우리 업체와 색깔이 맞는지, 활동 내용은 성실한지 등을 본 뒤 최종적으로 체험단을 선정하게 된다”며 “소비자로서 제품의 장단점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콘텐츠를 업데이트 해 온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경제적 혜택’ 보다 ‘블로그의 즐거움’ 먼저

와이프로거들이 지나치게 ‘경제적인 혜택’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와이프로거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같은 소비자로서’ 제품의 단점도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기업에서 일정한 대가를 지불 받고 쓰여진 글을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과연 예전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재활용 리폼 블로그 ‘인미즈’를 운영하고 있는 김인미(40) 씨는 “실제로 최근에는 기업의 모니터만을 중심으로 블로그를 꾸미는 와이프로거들이 늘긴 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단지 경제적 목적만을 위해서 활동한다면 중간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쉽다”며 “블로그에 올려진 글이 경제적인 목적만을 위해 쓰여진 글인지 진심을 다해 쓴 글인지는 누구보다 독자들이 먼저 안다”고 조언했다.

와이프로거가 기업에서 받는 활동비는 성실하게 제품을 모니터 한데 대한 대가이지 제품을 무조건 좋다고 해주는 ‘홍보비’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D.I.Y 인테리어 블로그 ‘맛, 밋, 멋’을 운영하는 최유리(32) 씨는 “기업들이 와이프로거를 찾는 이유는 다른 소비자에게 제품 정보를 전달할 광고 채널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 블로그가 생명력을 갖는 게 기본이고, 이 생명력을 조금 더 키우길 원한다면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솔직한 후기가 가장 먼저”라고 강조했다.

이정흔기자 vivajh@

밀레니엄 소비층 ‘디지털 코쿠닝’ 뜬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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