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루아의 캐서린
Catherine of Valois–Courtenay발루아의 캐서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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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토의 공주, 아차아의 공주, 알바니아의 여왕 | |
라틴 황후 | |
군림하다 | 1307년 10월 11일 – 1346년 10월 |
전임자 | 캐서린 1세 |
후계자 | 필립 3세 |
태어난 | 1303년 4월 15일 이전 |
죽은 | 1346년 10월 나폴리 |
배우자 | (m.1313; 1331년 사망) |
이슈 | 안드리아 공작부인 마거릿 로버트 루이 1세 필리포스 2세 |
집 | 발루아 |
아버지 | 발루아 백작 찰스 |
어머니 | 캐서린 1세 |
캐서린 2세는 또한 발루아의 캐서린이나 타란토의 캐서린(1303년 4월 15일 ~ 1346년 10월)도 1307–1346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라틴 황후로, 비록 망명 생활을 하고 그리스에서 십자군 국가들에 대한 권한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인정받았다.그녀는 아차아 공주와 타란토의 왕비였으며, 또한 1332–1341년부터 아차아 섭정, 1341–1346년부터 세팔로니아 총독이 되었다.
인생
그녀는 1303년, 4월 15일 전쯤, 찰스의 장녀 발루아 백작과 캐서린 1세를 낳았다.[1]
그녀의 어머니는 1261년 니케아 제국에 의해 도시가 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라틴 주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라틴 제국의 황후로 인정받았다.캐서린은 1307년 10월 11일 자신의 주장을 적정성 있는 황후로 계승했다.[2]그녀는 아직 어린 아이였고 1325년 그가 죽을 때까지 제국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관리했던 아버지의 보호하에 있었다.
1303년 4월 15일 그녀가 유아였을 때 만들어진 부르고뉴의 휴에 대한 초기 약혼자는 1312년에 포기되었다.[3]
나폴리
1313년 7월 캐서린은 알바니아의 왕이자 나폴리 왕 로버트의 동생이었던 타란토의 필립 1세와 결혼했다.[4]그녀는 남편을 명목상의 황제(필립 2세)로 추대했으며, 1332년 12월 23일 그가 죽은 후에도 제국에 대한 권리를 유지했다.살아남은 장남 로버트가 그의 뒤를 이어 1331년 타란토의 왕자가 되었다.캐서린은 나폴리 궁정에서 영향력이 커졌다.
그녀의 궁정은 로버트 왕과 그의 경건한 아내인 소르카의 산차보다 더 세속적이었다.조카인 나폴리의 조안나 1세가 통치하는 동안, 그녀는 조안의 여동생인 칼라브리아의 마리아와 듀라초 공작 찰스와의 결혼에 반대했다.마리아는 나폴리의 왕위를 계승하고 있었고, 두라조스는 자기 가문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었다.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국고로부터 현금결제를 받았다.
아차아
1333년, 그녀의 아들 로버트는 그의 삼촌인 그레이비나의 존과 협약을 통해 아케아 공국을 받았다.[5]그러나 열세 살 소년은 혼자 군림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여겨졌고, 어머니는 평생 그의 공동 군주가 되었다.처음에 임명된 바일리스를 통해 통치한 캐서린은 1338년 여름에 함대를 징집하여 그녀의 온 가족을 아차아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정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그녀는 에피루스의 나이키포로스 2세 오르시니에게 피난처를 주었고, 비잔틴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 팔라이올로고스에 맞서 자신의 땅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려는 그의 시도로 그를 지지했다.
Final Years
1341년 로버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차아에서의 존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세팔로니아의 주지사가 되었고 그녀의 인생의 마지막 5년을 이 책임으로 보냈다.조안의 남편인 헝가리의 앤드류를 살해한 후, 조안은 타란토 사촌들 사이에서 새로운 남편을 찾았다.캐서린은 큰아들 로버트를 상대로 작은 아들 타란토의 루이스(Louis of Taranto)를 부축했다.그녀는 로버트 더 와이즈의 사생아인 아르투아의 찰스와 그의 아들 베르트랑 둘 다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그를 보호했다.그들을 포기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거절했고 만약 그들이 유죄라면 스스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1346년 10월에 나폴리에서 죽었다.[6]조안 여왕은 산 도메니코 교회에서 장례식을 준비했다.
이슈
타란토의 필립 1세에 의해 캐서린 2세는 다음과 같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 마거릿(C. 1325–1380)은 안드리아 공작 보의 프란시스와 결혼했다.프란치스코에 의해 그녀는 보의 야고보와 아차아의 왕자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적정 황제인 야고보의 어머니였다.[7]
- 로버트(136–1364)는 타란토의 왕자, 콘스탄티노폴리스 황제(로버트 2세)이다.
- 루이 (1327/28–1362) 타란토 왕자와 나폴리 왕자의 부인 권리로.
- 필립 2세 (1329–1374) 타란토와 아차아의 왕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적정 황제 (필립 3세)
메모들
참조
- 구이다 마일 잭슨 라우퍼, 시대를 통틀어 여성 통치자: 1999년 ABC-CLIO의 삽화 가이드.
- Setton, Kenneth M.; Hazard, Harry W., eds. (1975). A History of the Crusades, Volume III: The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Madison and Lond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ISBN 0-299-066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