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발켄버그
Jan Valckenburgh얀 발켄버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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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골드코스트의 국장 | |
재직중 1662년 12월 23일 – 1667년 6월 2일 | |
선행자 | 더크 윌레 |
성공자 | 휴베르트 판 옹게르돈크 |
재직중 1656년 1월 24일 – 1659년 4월 27일 | |
선행자 | 제이콥 루이스하버 |
성공자 | 캐스퍼 판 후센 |
개인내역 | |
태어난 | 162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죽은 | 1667년 7월 8일 엘미나, 네덜란드 골드코스트 |
배우자 | 디나 렘스 |
얀 발켄버그(Jan Valckenburg, 1623년 – 1667년 7월 8일)는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의 공무원이다. 발켄부르크는 단순한 조수로 시작했지만, 네덜란드 골드 코스트의 국장급 중 한 명인 최고위직까지 두 번이나 경력을 쌓았다.
전기
수수한 재산가 집안에서 태어난 발켄부르크는 1623년 4월 2일 암스테르담의 우데 케르크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인 폴루스 폴루스 발켄버그는 그의 어머니 게르트제 램버츠가 가정주부였던 젤린에게서 온 바구니 위버였다.
발켄부르크는 1643년 루안다에서 식량담당청장이 되었고, 포르투갈인에 의한 루안다 탈환 후인 1649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 네덜란드 전 주지사의 딸인 플러싱(Flusing) 출신 디나 렘스(Dina Lems)와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발켄부르크는 1652년 골드코스트에 재정으로 설치되었을 때 웨스트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엘미나에서는 뮬라토 헬레나 코레아(Mulatto Helena Corea)와 관계를 맺었는데, 그는 전임 국장의 정부이기도 했다. 이 관계의 아들이 1653년에 태어났다. 3년 후 발켄부르그 자신도 국장이 되었다.
첫 임기가 끝난 후 발켄부르크는 1659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키이저그라크트 113번을 사들여 골드코스트 동료 헨드릭 카를로프의 이웃이 된다. 1660년에는 아들 야코부스가 태어나고, 1662년에는 딸 코넬리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1662년 9월 5일, 그는 골드코스트의 국장직을 두 번째 임기를 위해 다시 암스테르담을 떠난다. 신장 문제로 1667년 6월 2일 직위해제되고 한 달 후인 7월 8일 발켄부르크가 사망한다.
초상화
1659년과 1662년 사이 암스테르담으로 휴가를 떠나는 동안 발켄버그는 화가 다니엘 베르탕겐과 함께 자신과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2002년에는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골드고스트의 국장 중 유일하게 그려진 그림으로 여겨졌으나,[1] 이후 얀 프랑거 국장의 초상화도 확인되었다. 그는 흑인 집 노예와 조지 요새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2]
두 초상화는 모두 2002년 암스테르담의 Rijksmuseum에 의해 구입되었다.[1]
참조
- ^ a b "Rijksmuseum koopt Vertangens visie op WIC-directeur". Trouw. 2002-04-30. Retrieved 15 April 2012.
- ^ "Jan Valckenburgh". Rijksmuseum. Retrieved 19 April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