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부교
Machi-bugyō마치부교는 일본 에도 시대의 도쿠가와 막부의 사무라이 관리로, 다이묘가 아닌 사람들에게 개방된 고위 행정직 중 하나이다.[1] 종래의 해석은 이러한 일본식 명칭을 "위임자" 또는 "오버시어" 또는 "도지사"로 해석해 왔다.
이 바쿠후 호칭은 치안판사 또는 시 행정관이 중요한 도시로 인식된 곳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통치할 책임이 있음을 나타낸다.[2]
마치부교는 이 시기의 일본 도시 중심부의 중심 공권력이었다. 이들 바쿠푸가 임명한 장교들은 경찰 서장, 판사, 시장이 합쳐진 독특한 역할을 했다. 마치부교는 행정적, 사법적 책임을 두루 관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3]
마치부교는 세금 징수, 치안 유지, 소방 등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동시에 마치부교는 일반 민사 사건과 형사 사건 모두를 심리하고 결정하는 등 여러 가지 사법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3]
하타모토 고위만이 마치부교 자리에 임명되었을 뿐인데, 이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는가 하는 비판적인 중요성 때문이었다. 마치부교는 소묘와 대등하다고 여겨졌다. 일본 전역에는 무려 16개의 마치부교가 위치해 있었다.[3]
쇼군 시
이 시기 에도, 교토, 나가사키, 나라, 닛코, 오사카 등 여러 도시 도시들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일부는 "쇼구날 도시"로 지정되었다. 이런 '쇼구날 도시'는 도쿠가와 정권 때 3개에서 11개로 늘었다.[4]
마치부교 목록
- 오오카 다다스케, 1782년 ~ ? [5]
- 요조우 토리이, 1841-1844년(미나미마치부교)
- 토야마카게모토, 1840–1843년(기타마치부교), 1845–1852년(미나마치부교)
- 이도 사토히로, 1849–1856.[6]
- 1858년 [7]이자와 마사요시
- 오구리 다다마사, 1862–1863.[8]
- 아베 마사토, 1863–1864.[9]
- 이노우에 기요나오, 1863년, 1866년–1868년.[10]
메모들
- ^ 비즐리, 윌리엄 G. (1955) 일본 외교 정책에 관한 문서, 1853–1868, 페이지 325를 선택하십시오.
- ^ 홀, 존 웨슬리 (1955) 타누마 오키츠구: 근대 일본의 포러너, 페이지 201
- ^ a b c 커닝햄, 돈(2004년). 타이호-주쓰: 사무라이 시대의 법과 질서, 42페이지.
- ^ 컬런, 윌리엄 (2003). 일본의 역사, 1582–1941: 내외세상, 페이지 159.
- ^ 머독, 페이지 334.
- ^ 비즐리, 페이지 332.
- ^ 비즐리, 페이지 334.
- ^ 비즐리, 페이지 338.
- ^ 비즐리, 페이지 331.
- ^ 비즐리, 333페이지.
참조
- 비즐리, 윌리엄 G. (1955) 일본 외교 정책에 관한 문서 선택, 1853–1868. 런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2001년 런던 루트리지커존에서 전재함. ISBN978-0-19-713508-2(보)]
- 머독, 제임스 (1996). 일본의 역사, 페이지 334.
- 컬렌, 루이 M. (2003) 일본의 역사, 1582–1941: 내외세상 케임브리지: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ISBN 0-521-82155-X(보) -- ISBN 0-521-52918-2(종이)
- 커닝햄, 돈(2004년). 타이호주쓰: 사무라이 시대의 법과 질서. 도쿄: 터틀 출판사. ISBN 978-0-8048-3536-7(보)
- 홀, 존 웨슬리(1955) 타누마 오키츠구: 근대 일본의 선구자.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 출판부.
- 얀센, 마리우스 B. (1995년) 일본의 전사 규칙. 케임브리지: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ISBN 0-521-484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