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조약 (1229년)
Treaty of Paris (1229)메우 조약이라고도 알려진 파리 조약은 1229년 4월 12일 파리 근교 메우에서 툴루즈의 레이몬드 7세와 프랑스의 루이 9세 사이에 체결되었다. 루이스는 아직 미성년자였고, 조약을 맺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섭정으로서 카스티야의 어머니 블랑쉬였다.[1] 이 협정으로 알비겐스 십자군은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조약의 조건에 따르면 레이먼드의 딸 조안은 루이 형 알폰스와 결혼하게 되어 있었다.[2] 더구나 레이먼드는 자기 땅의 동쪽 지방을 루이에게, 마르키우스 드 프로방스는 가톨릭 교회에 양도했다.[3] 이 조약은 또한 종교재판소에 이단자를 찾고, 이단자를 포섭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부여된 조약은 또한 종교재판소에 절대적인 힘을 주었다.[4]
레이먼드는 자신의 땅의 절반 이상을 프랑스 왕관에 양도하고 남은 것은 평생 동안만 유지했으며, 그 후 사위 알퐁스, 루이 왕 동생, 혹은 알퐁스가 상속자가 없다면 프랑스 왕관에 의해 상속될 것이다. 레이먼드는 봉건적 권리를 되찾았지만 루이 9세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툴루즈의 요새와 같은 요새가 해체되었다.[5] 카타르는 이제 프랑스 왕관의 신하인 레이먼드와 그의 부하들에게 그들을 사냥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다.[5]
참고 항목
참조
- ^ 잭슨 1999, 페이지 64.
- ^ 요르단 1999 페이지 298.
- ^ Sumption 1999, 페이지 223-224.
- ^ Ekelund, Tallison & Anderson 1996, 페이지 76.
- ^ a b Sumption 1999, 페이지 225.
원천
- Ekelund, Robert B.; Tollison, Robert D.; Anderson, Gary M. (1996). "Attempts to Maintain Market Dominance". Sacred Trust: The Medieval Church as an Economic Firm.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79.
- Jackson, Guida M. (1999). Women Rulers throughout the Ages: An Illustrated guide. ABC-CLIO.
- Jordan, William Chester (1999). "The Capetians from the death of Philip II to Philip IV". In Abulafia, David (ed.). The New Cambridge Medieval History. 5, c.1198–c.1300. Cambridge University Press.
- Sumption, Jonathan (1999). The Albigensian Crusade. Faber and Fa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