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노부미치
Yamada Nobumichi야마다노부미치 山田 信道 | |
---|---|
![]() 야마다노부미치 | |
태어난 | |
죽은 | 1900년 3월 11일 | (66)
국적 | 일본인입니다 |
직업 | 정치인, 내각 장관 |
야마다 노부미치(山野信, 1833년 12월 13일 ~ 1900년 3월 11일)는 일본 메이지 초기의 정치가였다.
전기
야마다 씨는 히고 성 구마모토 번(현 구마모토 현)에서 태어났다.손노죠이 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바쿠마쓰 시대에 사쓰마 번으로 이전하였다.1863년 도쿠가와 막부의 보안군에 붙잡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메이지 유신 후, 야마다 군은 메이지 신정부에 포섭되어 단명 에사시 현(현재의 아키타 현 일부와 이와테 현)의 총독으로 1871년 부임했다.
야마다씨는 전 사무라이계급의 고충에 공감하고, 모국인 구마모토에서 신푸렌 반란의 지도자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알고 있었지만, 봉기 내내 메이지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다.시마네 현(1881–1888), 후쿠시마 현(1888–1891), 오사카 현(1891–1895), 교토 현(1895–1897)의 주지사상을 받았다.1896년 6월 5일, 카조쿠 페어리지 제도에서 남작(단사쿠)으로 격상되었다.
야마다씨는 1897년부터 1898년까지 제2차 마쓰카타 마사요시 내각에서 농림부 장관에 발탁되었다.이후 그는 1900년 사망할 때까지 감사원장을 지냈다.그의 묘소는 도쿄 아오야마 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