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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정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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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emocracy monument.jpg|thumb|right|200px|방콕 민주주의 기념비]]
{{태국의 정치}}
타이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현 국왕은 [[푸미폰 야둔야뎃]] 국왕이다. 타이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타이 국민들이 무조건 그들의 국왕이나 왕족들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형태로는 [[내각 책임제]]를 취한다. 다만, 2006년 9월 19일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 개혁 평의회'를 구성해 유지되고 있다. [[수도]]는 [[방콕]](타이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나 [[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누어진다([[타이의 주]] 참조). 중부에는 앙텅 등 19개, 동부에는 차층사오 등 7개, 북부에는 치앙마이 등 17개, 동북부에는 암낫짜른 등 19개, 남부에는 춤폰 등 14개으 짱왓이 있다. 외교는 반공을 기본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공산진영과도 돈독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여 왔고, 동남아시아 지역 내의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태국]]은 2014년 5월 22일까지 [[입헌군주제|입헌군주정]] 국가였다. [[태국의 총리]]가 국가 수반이었으며, [[태국의 군주|태국의 국왕]]이 상징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명예를 가졌다. 사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와 독립되었었다.


2014년 5월 22일에 [[2014년 태국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2007년 제정된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군인들로 이루어진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행정권을 차지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입법부를 해산시켰으며, 입법권을 자신들의 권한으로 넘겼다. 계엄령이 태국 전역에 발효된 가운데, 정상적인 경우에는 민사 법원에서 처리될 사안들도 군사 법원들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태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자체가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2019년 7월 16일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며 공식적으로 해산하였다.
== 국왕==


태국은 역사적으로 엄격한 전제군주정이었다. 그러나 서구화된 귀족층과 구시대적 군인들이 이끈 1932년의 개혁 이후 태국은 총리가 국가의 실무를 지휘하고 국왕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있는 입헌군주정으로 변모했다. 첫 헌법이 공포되었고, 태국의 정치판세는 구 귀족층, 장군들, 군벌들의 싸움터로 변했다. 쿠데타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군부 세력들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 세력들은 그때마다 헌법을 개정하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법들을 뜯어고쳤다. 현재까지 태국은 17번 헌법을 개정했으며, 이는 얼마나 태국이 불안정한 정치사를 겪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쿠데타 이후에는 장군들, 정치인들, 사회 유력자들, 의원들이 모여 정치적 안정을 일시적으로나마 재건하곤 한다.
타이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타이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국왕의 모습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지폐, 달력, 도로 광고판에 사진기를 들고 있거나 아이를 목말 태운 국왕의 인자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타이의 왕정제도나 국왕에 대해 비판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태국을 2019년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판정하며 민주주의 지수를 1.69점 올렸다. 전년도에는 이보다 낮은 '혼합된 체제'였다.
타이 국민들이 무조건 그들의 국왕이나 왕족들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국왕과 [[시리낏 왕비]]의 사이에 1남 3녀가 있는데 그중에 둘째이자 독자인 왕위계승자 [[마하 와찌랄롱꼰]] 황태자는 타이인들의 드러내지 않는 불신을 받고 있다. 국왕은 정치적인 힘은 갖고 있지 않다고 헌법에 씌여 있으나 국민의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다.
[[파일:Thai Parliament House.JPG|thumb|200px|타이 의회]]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국왕은 쿠데타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국왕의 승인을 얻지 못한 쿠데타는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왕과 관련하여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이색적으로 비추어지는 광경은 국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거의 기는 자세로 인사를 하는 관리나 국민들의 모습이다. 타이에서는 왕실모독죄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입헌군주제라고 할 수는 없다. 언론에서 국왕이나 왕족 또는 군주제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이다.


== 정치사 ==
국왕의 강력한 왕권과 타이의 신비스러움 때문에 19세기 당시 [[몽꿋 왕]]의 이야기는 'Anna And The King'([[왕과 나 (1956년 영화)|왕과 나]])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태국은 1932년 이전까지 엄격한 전제군주정이었다. 그러나 점점 제국주의의 물결이 아시아 지역을 휩쓸자, 위기의식을 느낀 왕들이 일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때까지 왕은 여전히 국정의 최고 결정권자였고,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된 조언자들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운영했다. 태국의 급진적인 변화는 [[쭐랄롱꼰|라마 5세]]의 통치 기간부터 일어났다. 1932년에 처음으로 헌법이 제정되었고, 전제군주정이었던 태국도 점차 헌법에 기반한 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헌법은 이때 이래로 수없이 많은 변화와 압박을 받으며 고난을 겪었으나, 그때부터 태국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허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엘리트층들 내부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1933년에 첫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쿠데타는 성공하여 첫 헌법은 폐기처분되었고, 새로운 헌법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파일:BKK24090618.jpg|thumb|right|200px|2006년 쿠데타 당시의 왕국군]]
현 국왕은 [[푸미폰 야둔야뎃]] 국왕으로 [[짜끄리 왕조]] 제 9대왕 (1946. 즉위)이다.


제헌 헌법 이래 현재까지 제정된 모든 헌법과 법령에는 태국을 입헌군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 기관들 사이에서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이 크게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태국을 의회 제도에 의하여 운영되는 민주정으로 규정했으나, 일부 극단적인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독재 체제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의회 제도를 채택한 경우에도 그 제도를 실행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서, 단원제를 실시할 때도 있었고 양원제를 실시할 때도 있었다. 또한 국왕에게 부여된 실질적인 권력도 당시 집권한 군부의 입맛에 맞추어 상당히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의회==


태국의 '국민의 헌법(People's Constitution)'은 1992년 [[검은 5월 사건]]이 방콕에서 터진 후 1997년에 제정되었다. 1997년에 제정된 이 헌법은 이전의 헌법과는 달리, 국민들이 직접 제정과 구성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훨씬 민주적인 가치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태국 민주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국민의 헌법에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뽑힌 의원들로 구성된 양원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인권과 시민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들도 명백히 밝혀놓았다. 또한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정부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일부러 관련 법들을 만들어 함부로 쿠데타가 정부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헌법재판소, [[옴부즈만]], [[행정법원]] 등이 이때 처음으로 태국에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 기관들은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하였는데, 특히 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었던 [[탁신 친나왓|탁신 시나와트라]]가 이 기관들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경제적인 실책에 대하여 해명을 하는데에 진땀을 뺐다.
그리고 정치적인 형태로는 [[내각 책임제]]를 취한다. 1996년 11월 선거에서는 신희망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당수인 차크리트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다만 2006년 9월 19일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 개혁 평의회'를 구성해 유지되고 있다. 이는 2006년 9월 20일 국왕이 '모든 군과 공무원은 손티의 지시에 따르라'고 지시한 것에 의한 것으로 군의 발표에 의하면 2주내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예정이다. 현 의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과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 임기 6년, 2년마다 하원은 임기 4년. 총리는 의회의 추천을 통해 국왕이 임명한다.<ref name="글로벌 정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타 이#타이의 정치|타이의 정치]]〉</ref>

2006년 9월 19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국민의 헌법이 폐기되었다.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몇 주간 태국을 통치했으며, 이후 10월 1일에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헌법에는 지역적인 선거는 이전처럼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진행되지만 의회 핵심 인사나 총리와 같은 핵심적인 요직들은 모두 군부가 임명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군부 독재' 헌법이라고 비난했기도 하였다. 2007년에 제정된 헌법은 2014년 5월에 또다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며 폐기되었다. 2017년 헌법에는 태국의 정치 체제 자체를 아예 군대의 통치 하에 두었으며, 의회도 군대가 장악하여 현대의 태국은 여전히 군부 독재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태국의 국왕은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적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워낙 그 상징성이 크고 전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존재이기에 그 영향력은 심지어 군부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전임 왕이었던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는 1946년 이래 태국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종종 이를 성공적으로 잠재우는 데에 성공했기에 특히 존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현임 왕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는 방탕한 생활과 방종한 성격으로 인하여 점차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의회==
의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과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 임기 6년, 2년마다 하원은 임기 4년. 총리는 의회의 추천을 통해 국왕이 임명한다.<ref name="글로벌 정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타 이#타이의 정치|타이의 정치]]〉</ref>


[[2004년]] [[1월]] 회교도 거주지역인 남부의 3개주([[빠따니 주]], [[나라티왓 주]], [[야라 주]])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부지역에서 간헐적인 소요 및 지속적인 사상자가 발생 중에 있다.<ref name="외교통상"> [http://www.0404.go.kr/safety/natsafe/country/a260.php?cty=AS&emp=297.877477947623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사이트] </ref>
[[2004년]] [[1월]] 회교도 거주 지역인 남부의 3개 주([[빠따니 주]], [[나라티왓 주]], [[얄라 주]])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부 지역에서 간헐적인 소요 및 지속적인 사상자가 발생 중에 있다.<ref name="외교통상"> [http://www.0404.go.kr/safety/natsafe/country/a260.php?cty=AS&emp=297.877477947623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사이트]</ref>


== 행정 구역 ==
== 행정 구역 ==
{{본문|타이의 행정 구역}}
{{본문|태국의 행정 구역}}
[[수도]]는 [[방콕]](태국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나 [[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 태국은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뉜다([[태국의 주]] 참조). 짱왓은 한국의 도 개념과 비슷하다. 짱왓보다 하위 개념으로 [[암프]](amphoe)가 있다. 다시 암프는 [[암프 므앙]]과 [[땀본]] 등으로 나뉜다. 짱왓의 도청소재지는 암프므앙이라고 불린다. 많은 암프므앙의 이름은 짱왓의 이름과 같다.
[[수도]]는 [[방콕]](타이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나 [[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2개의 특별자치구가 있으며, 수도인 [[방콕]](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과 [[파타야]](Pattaya)가 바로 그것이다.
각 지방은 다시 877개의 암프와 50개의 방콕지구로 나뉜다. 대한민국의 경기도에 해당되는 방콕과 경계를 이루는 지방은 Greater Bangkok(pari monthon)라고도 한다. 각 지방의 주도의 이름은 그 지방의 이름과 동일하다. 예를 들면, [[치앙마이]] 지방의 주도는 암프므앙 치앙마이라고 부른다. 75개의 지방은 다음과 같다.
[[파일:Thailand map CIA.png|프레임|태국의 지도]]
[[파일:Thailand provinces.png|프레임|태국의 76개 주]]


행정구역으로는 타이는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누어진다([[타이의 주]] 참조). 짱왓은 한국의 도 개념과 비슷하다. 짱왓보다 하위 개념으로 [[암프]](amphoe)가 있다. 다시 암프는 [[암프 므앙]]과 [[땀본]] 등으로 나뉜다. 짱왓의 도청소재지는 암프므앙이라고 불린다. 많은 암프므앙의 이름은 짱왓의 이름과 같다.
2개의 특별자치구가 있으며, 수도인 [[방콕]](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과 [[파타야]](Pattaya)가 바로 그것이다.
각 지방은 다시 877개의 암프와 50개의 방콕지구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되는 방콕과 경계를 이루는 지방은 Greater Bangkok(pari monthon)라고도 한다. 각 지방의 주도의 이름은 그 지방의 이름과 동일하다. 예를 들면, [[치앙마이]] 지방의 주도는 암프므앙 치앙마이라고 부른다. 75개의 지방은 다음과 같다.
[[파일:Thailand map CIA.png|frame|타이의 지도]]
[[파일:Thailand provinces.png|frame|타이의 76개 주]]
=== 중부 ===
=== 중부 ===
# 앙텅 Ang Thong
# 앙텅 Ang Thong
# [[방콕|방콕, 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 특별자치구
# [[방콕|방콕, 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 특별 자치구
# 차이낫, Chai Nat
# 차이낫, Chai Nat
# [[깐짜나부리 주|깐짜나부리]], Kanchanaburi
# [[깐짜나부리 주|깐짜나부리]], Kanchanab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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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펫차부리 주|펫차부리]](펫부리), Phetchaburi
# [[펫차부리 주|펫차부리]](펫부리), Phetchaburi
# [[프라 나콘 시 아유타야]], Phra Nakhon Si Ayutthaya
# [[프라 나콘 시 아유타야]], Phra Nakhon Si Ayutthaya
# [[쁘라추압 키리칸 주|쁘라추압 키리칸]], Prachuap Khiri Khan
# [[쁘라쭈압키리칸 주|쁘라쭈압 키리칸]], Prachuap Khiri Khan
# [[랏차부리 주|랏차부리]](랏부리), Ratchaburi
# [[랏차부리 주|랏차부리]](랏부리), Ratchaburi
# [[사뭇쁘라깐 주|사뭇쁘라깐]], Samut Prakan
# [[사뭇쁘라깐 주|사뭇쁘라깐]], Samut Pra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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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 ===
=== 동부 ===
# 차층사오, Chachoengsao
# 차층사오, Chachoengsao
# [[찬타부리 주|찬타부리]], Chanthaburi
# [[짠타부리 주|짠타부리]], Chanthaburi
# [[촌부리 주|촌부리]], Chonburi
# [[촌부리 주|촌부리]], Chonburi
# 쁘라찬부리, Prachinburi
# 쁘라찬부리, Prachinburi
# [[라용 주|라용]], Rayong
# [[라용 주|라용]], Rayong
# 사깨우, Sa Kaeo
# 사깨우, Sa Kaeo
# [[뜨랏 주|뜨랏]], Trat
# [[뜨랏 주|뜨랏]], Trat


=== 북부 ===
=== 북부 ===
# [[치앙마이 주|치앙마이]], Chiang Mai
# [[치앙마이 주|치앙마이]], Chiang Mai
# [[치앙라이 주|치앙라이]], Chiang Rai
# [[치앙라이 주|치앙라이]], Chiang Rai
# 깜팽펫 Kamphaeng Phet
# 깜팽펫 Kamphaeng Phet
# 람빵, Lampang
# 람빵, Lampang
# 람푼, Lamphun
# 람푼, Lamphun
# [[매홍손 주|매홍손]], Mae Hong Son
# [[매홍손 주|매홍손]], Mae Hong Son
# [[나콘사완 주|나콘사완]], Nakhon Sawan
# [[나콘사완 주|나콘사완]], Nakhon Sawan
# 난, Nan
# 난, Nan
# 파야오, Phayao
# 파야오, Phayao
# 펫차분, Phetchabun
# 펫차분, Phetchabun
# 피찟, Phichit
# 피찟, Phichit
# 핏사눌록, Phitsanulok
# 핏사눌록, Phitsanulok
# 프래, Phrae
# 프래, Phrae
# [[수코타이 주|수코타이]], Sukhothai
# [[수코타이 주|수코타이]], Sukhothai
# [[딱 주|딱]], Tak
# [[딱 주|딱]], Tak
# 우타이타니, Uthai Thani
# 우타이타니, Uthai Thani
# 우따라딧, Uttaradit
# 우따라딧, Uttaradit


=== 북동부 ===
=== 북동부 ===
# 암낫짜른, Amnat Charoen
# 암낫짜른, Amnat Charoen
# 부리람, Buri Ram
# 부리람, Buri Ram
# 차이야품, Chaiyaphum
# 차이야품, Chaiyaphum
# 깔라신, Kalasin
# 깔라신, Kalasin
# 컨깬, Khon Kaen
# 컨깬, Khon Kaen
# 러이, Loei
# 러이, Loei
# 마하사라캄,Maha Sarakham
# 마하사라캄,Maha Sarakham
# 묵다한, Mukdahan
# 묵다한, Mukdahan
# 나컨파놈, Nakhon Phanom
# 나컨파놈, Nakhon Phanom
# [[나콘랏차시마 주|나콘 랏차시마]](코랏), Nakhon Ratchasima
# [[나콘랏차시마 주|나콘 랏차시마]](코랏), Nakhon Ratchasima
# 넝부아람푸, Nong Bua Lamphu
# 넝부아람푸, Nong Bua Lamphu
# 넝카이, Nong Khai
# 넝카이, Nong Khai
# 러이엣, Roi Et
# 러이엣, Roi Et
# 사껀나콘, Sakon Nakhon
# 사껀나콘, Sakon Nakhon
# 시사껫, Si Sa Ket
# 시사껫, Si Sa Ket
# 수린, Surin
# 수린, Surin
# 우본랏차타니, Ubon Ratchathani
# 우본랏차타니, Ubon Ratchathani
# [[우돈타니 주|우돈타니]], Udon Thani
# [[우돈타니 주|우돈타니]], Udon Thani
# 야소톤, Yasothon
# 야소톤, Yasothon


=== 남부 ===
=== 남부 ===
[[파일:Borom That Chaiya.jpg|thumb|upright|right|수랏타니 주의 건축물]]
[[파일:Borom That Chaiya.jpg|섬네일|수랏타니 주의 건축물]]
# 춤폰, Chumphon
# 춤폰, Chumphon
# [[끄라비 주|끄라비]], Krabi
# [[끄라비 주|끄라비]], Krabi
# 나콘시탐마랏, Nakhon Si Thammarat
# 나콘시탐마랏, Nakhon Si Thammarat
# 나라티왓, Narathiwat
# 나라티왓, Narathiwat
# 빳따니, Pattani
# 빳따니, Pattani
# 팡응아, Phang Nga
# 팡응아, Phang Nga
# 팟탈룽, Phatthalung
# 팟탈룽, Phatthalung
# [[푸껫 주|푸껫]], , Phuket
# [[푸껫 주|푸껫]], , Phuket
# 라농, Ranong
# 라농, Ranong
# 사뚠, Satun
# 사뚠, Satun
# [[송클라 주|송클라]], Songkhla
# [[송클라 주|송클라]], Songkhla
# [[수랏타니 주|수랏타니]], Surat Thani
# [[수랏타니 주|수랏타니]], Surat Thani
# [[뜨랑 주|뜨랑]], Trang
# [[뜨랑 주|뜨랑]], Trang
# 얄라, Yala
# 얄라, Y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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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8" style="padding:0.3em 0; line-height:1.2em; | 타이의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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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야이]]<br />
[[핫야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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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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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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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야]]-[[촌부리]]
| {{개행 금지|[[파타야]]-[[촌부리]]}}
| 1,003,839
| 1,00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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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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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마이]]
|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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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야이 송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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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랏콘랏차시마|나콘 랏차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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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9,546
|}
|}<noinclude>

== 대외 관계 ==
== 대외 관계 ==
외교는 반공을 기본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다. 미국의 동남아시아정책에 협력하여 1954년 설립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본부를 방콕에 두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와 미국공군기지도 두게 되었다. 한편 공산진영과의 관계유지도 게을리하지 않아 옛 [[소련]]과 1947년부터 국교를 맺었으며 [[중국]]과는 1975년, [[베트남]]과는 1976년에 국교를 맺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외교를 수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1967년 결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가입해 베트남전쟁 후의 캄보디아문제·지역내 경제협력 등 많은 공통문제로 여러 나라 수뇌의 상호방문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 6월 [[도쿄]] 캄보디아평화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ref name="글로벌 정치"/>
외교는 반공을 기본 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 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 원조를 받았다. 미국의 동남아시아 정책에 협력하여 1954년 설립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본부를 방콕에 두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와 미국공군기지도 두게 되었다. 한편 공산 진영과의 관계유지도 게을리하지 않아 옛 [[소련]]과 1947년부터 국교를 맺었으며 [[중국]]과는 1975년, [[베트남]]과는 1976년에 국교를 맺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외교를 수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1967년 결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가입해 베트남전쟁 후의 캄보디아문제·지역내 경제협력 등 많은 공통문제로 여러 나라 수뇌의 상호 방문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 6월 [[도쿄]] 캄보디아평화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ref name="글로벌 정치"/>


=== 대한민국 ===
=== 대한민국 ===
타이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이의 옛 이름인 [[시암 왕조]]는 [[1391년]],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당시 [[고려]] ,[[조선]])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1394년에는 [[조선]]의 사절단이 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태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의 옛 이름인 [[시암 왕조]]는 [[1391년]],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당시 [[고려]], [[조선]])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1394년에는 [[조선]]의 사절단이 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단절된 양국관계는 [[1950년]] 태국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6.25전쟁|한국전쟁]]에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원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타이 육군은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한민국]]에 [[1972년]]까지 주둔하였다.
단절된 양국 관계는 [[1950년]] 태국 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 전쟁]]에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원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태국 육군은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한민국]]에 [[1972년]]까지 주둔하였다.


타이를 방문하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70만 명을 넘어서면서 양국 간에 교류와 이해가 증진되고 있다. 타이는 대한민국-타이 비자면제협정에 의거, 관광 및 방문, 행사참여 등 영리 목적으로의 입국이 아닌 경우는 90일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태국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70만 명을 넘어서면서 양국 간에 교류와 이해가 증진되고 있다. 태국은 대한민국-태국 비자 면제 협정에 의거, 관광 및 방문, 행사 참여 등 영리 목적으로의 입국이 아닌 경우는 90일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ref name="외교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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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타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중이다. 1975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태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중이다. 1975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 캄보디아 ===
=== 캄보디아 ===
[[캄보디아]]와는 국경 사이에 위치한 힌두교 사원을 두고 분쟁중이며, 결국 캄보디아와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38&aid=0001976468 '힌두사원 분쟁' 태국-캄보디아 무력충돌]</ref> 그리고 [[2008년]] [[10월 15일]]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서도 총격전을 벌였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3&aid=0002330425 캄보디아·태국,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인근서 총격전]</ref> 하지만 태국과 캄보디아는 [[2009년]] [[1월 26일]]에 국경대치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1&aid=0002471561 泰-캄보디아 국경대치 해소 합의]</ref>
[[캄보디아]]와는 국경사이에 위치한 힌두사원을 두고 분쟁중이며, 결국 캄보디아와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38&aid=0001976468 '힌두사원 분쟁' 태국-캄보디아 무력충돌]</ref> 그리고 [[2008년]] [[10월 15일]]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서도 총격전을 벌였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3&aid=0002330425 캄보디아·태국,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인근서 총격전]</ref> 하지만 타이와 캄보디아는 [[2009년]] [[1월 26일]]에 국경대치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1&aid=0002471561 泰-캄보디아 국경대치 해소 합의]</ref>


=== 기타 ===
=== 일본 ===
[[일본]]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차크리 왕조]]와는 동맹국으로 일본의 항복 이후에도 우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일본]]: [[차크리 왕조|태국 왕실]]과 [[일본 천황|일본 황실]] 간의 관계가 좋다.


== 주석 ==
== 같이 보기 ==
* [[태국]]
* [[태국의 역사]]
== 각주 ==
<references/>
<references/>
[[분류:타이의 정치]]


{{아시아 주제|의 정치}}
[[bg:Държавно устройство на Тайланд]]

[[bn:থাইল্যান্ডের রাজনীতি]]
{{전거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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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Politique de la Thaïl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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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일 (월) 23:05 기준 최신판

태국은 2014년 5월 22일까지 입헌군주정 국가였다. 태국의 총리가 국가 수반이었으며, 태국의 국왕이 상징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명예를 가졌다. 사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와 독립되었었다.

2014년 5월 22일에 2014년 태국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2007년 제정된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군인들로 이루어진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행정권을 차지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입법부를 해산시켰으며, 입법권을 자신들의 권한으로 넘겼다. 계엄령이 태국 전역에 발효된 가운데, 정상적인 경우에는 민사 법원에서 처리될 사안들도 군사 법원들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태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자체가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2019년 7월 16일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며 공식적으로 해산하였다.

태국은 역사적으로 엄격한 전제군주정이었다. 그러나 서구화된 귀족층과 구시대적 군인들이 이끈 1932년의 개혁 이후 태국은 총리가 국가의 실무를 지휘하고 국왕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있는 입헌군주정으로 변모했다. 첫 헌법이 공포되었고, 태국의 정치판세는 구 귀족층, 장군들, 군벌들의 싸움터로 변했다. 쿠데타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군부 세력들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 세력들은 그때마다 헌법을 개정하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법들을 뜯어고쳤다. 현재까지 태국은 17번 헌법을 개정했으며, 이는 얼마나 태국이 불안정한 정치사를 겪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쿠데타 이후에는 장군들, 정치인들, 사회 유력자들, 의원들이 모여 정치적 안정을 일시적으로나마 재건하곤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태국을 2019년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판정하며 민주주의 지수를 1.69점 올렸다. 전년도에는 이보다 낮은 '혼합된 체제'였다.

정치사

[편집]

태국은 1932년 이전까지 엄격한 전제군주정이었다. 그러나 점점 제국주의의 물결이 아시아 지역을 휩쓸자, 위기의식을 느낀 왕들이 일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때까지 왕은 여전히 국정의 최고 결정권자였고,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된 조언자들의 도움을 받아 국정을 운영했다. 태국의 급진적인 변화는 라마 5세의 통치 기간부터 일어났다. 1932년에 처음으로 헌법이 제정되었고, 전제군주정이었던 태국도 점차 헌법에 기반한 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헌법은 이때 이래로 수없이 많은 변화와 압박을 받으며 고난을 겪었으나, 그때부터 태국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허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엘리트층들 내부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1933년에 첫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쿠데타는 성공하여 첫 헌법은 폐기처분되었고, 새로운 헌법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제헌 헌법 이래 현재까지 제정된 모든 헌법과 법령에는 태국을 입헌군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 기관들 사이에서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이 크게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태국을 의회 제도에 의하여 운영되는 민주정으로 규정했으나, 일부 극단적인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독재 체제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의회 제도를 채택한 경우에도 그 제도를 실행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서, 단원제를 실시할 때도 있었고 양원제를 실시할 때도 있었다. 또한 국왕에게 부여된 실질적인 권력도 당시 집권한 군부의 입맛에 맞추어 상당히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태국의 '국민의 헌법(People's Constitution)'은 1992년 검은 5월 사건이 방콕에서 터진 후 1997년에 제정되었다. 1997년에 제정된 이 헌법은 이전의 헌법과는 달리, 국민들이 직접 제정과 구성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훨씬 민주적인 가치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태국 민주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국민의 헌법에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뽑힌 의원들로 구성된 양원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인권과 시민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들도 명백히 밝혀놓았다. 또한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정부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일부러 관련 법들을 만들어 함부로 쿠데타가 정부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헌법재판소, 옴부즈만, 행정법원 등이 이때 처음으로 태국에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 기관들은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하였는데, 특히 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었던 탁신 시나와트라가 이 기관들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경제적인 실책에 대하여 해명을 하는데에 진땀을 뺐다.

2006년 9월 19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국민의 헌법이 폐기되었다.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몇 주간 태국을 통치했으며, 이후 10월 1일에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헌법에는 지역적인 선거는 이전처럼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진행되지만 의회 핵심 인사나 총리와 같은 핵심적인 요직들은 모두 군부가 임명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군부 독재' 헌법이라고 비난했기도 하였다. 2007년에 제정된 헌법은 2014년 5월에 또다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며 폐기되었다. 2017년 헌법에는 태국의 정치 체제 자체를 아예 군대의 통치 하에 두었으며, 의회도 군대가 장악하여 현대의 태국은 여전히 군부 독재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태국의 국왕은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적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워낙 그 상징성이 크고 전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존재이기에 그 영향력은 심지어 군부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전임 왕이었던 라마 9세는 1946년 이래 태국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종종 이를 성공적으로 잠재우는 데에 성공했기에 특히 존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현임 왕인 라마 10세는 방탕한 생활과 방종한 성격으로 인하여 점차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의회

[편집]

의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과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 임기 6년, 2년마다 하원은 임기 4년. 총리는 의회의 추천을 통해 국왕이 임명한다.[1]

2004년 1월 회교도 거주 지역인 남부의 3개 주(빠따니 주, 나라티왓 주, 얄라 주)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부 지역에서 간헐적인 소요 및 지속적인 사상자가 발생 중에 있다.[2]

행정 구역

[편집]

수도방콕(태국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 태국은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뉜다(태국의 주 참조). 짱왓은 한국의 도 개념과 비슷하다. 짱왓보다 하위 개념으로 암프(amphoe)가 있다. 다시 암프는 암프 므앙땀본 등으로 나뉜다. 짱왓의 도청소재지는 암프므앙이라고 불린다. 많은 암프므앙의 이름은 짱왓의 이름과 같다. 2개의 특별자치구가 있으며, 수도인 방콕(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과 파타야(Pattaya)가 바로 그것이다. 각 지방은 다시 877개의 암프와 50개의 방콕지구로 나뉜다. 대한민국의 경기도에 해당되는 방콕과 경계를 이루는 지방은 Greater Bangkok(pari monthon)라고도 한다. 각 지방의 주도의 이름은 그 지방의 이름과 동일하다. 예를 들면, 치앙마이 지방의 주도는 암프므앙 치앙마이라고 부른다. 75개의 지방은 다음과 같다.

태국의 지도
태국의 76개 주

중부

[편집]
  1. 앙텅 Ang Thong
  2. 방콕, 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 특별 자치구
  3. 차이낫, Chai Nat
  4. 깐짜나부리, Kanchanaburi
  5. 롭부리, Lop Buri
  6. 나콘나욕, Nakhon Nayok
  7. 나콘빠톰, Nakhon Pathom
  8. 논타부리, Nonthaburi
  9. 빠툼타니, Pathum Thani
  10. 펫차부리(펫부리), Phetchaburi
  11. 프라 나콘 시 아유타야, Phra Nakhon Si Ayutthaya
  12. 쁘라쭈압 키리칸, Prachuap Khiri Khan
  13. 랏차부리(랏부리), Ratchaburi
  14. 사뭇쁘라깐, Samut Prakan
  15. 사뭇사콘, Samut Sakhon
  16. 사뭇 송크람, Samut Songkhram
  17. 사라부리, Saraburi
  18. 싱부리, Sing Buri
  19. 수판부리, Suphan Buri

동부

[편집]
  1. 차층사오, Chachoengsao
  2. 짠타부리, Chanthaburi
  3. 촌부리, Chonburi
  4. 쁘라찬부리, Prachinburi
  5. 라용, Rayong
  6. 사깨우, Sa Kaeo
  7. 뜨랏, Trat

북부

[편집]
  1. 치앙마이, Chiang Mai
  2. 치앙라이, Chiang Rai
  3. 깜팽펫 Kamphaeng Phet
  4. 람빵, Lampang
  5. 람푼, Lamphun
  6. 매홍손, Mae Hong Son
  7. 나콘사완, Nakhon Sawan
  8. 난, Nan
  9. 파야오, Phayao
  10. 펫차분, Phetchabun
  11. 피찟, Phichit
  12. 핏사눌록, Phitsanulok
  13. 프래, Phrae
  14. 수코타이, Sukhothai
  15. , Tak
  16. 우타이타니, Uthai Thani
  17. 우따라딧, Uttaradit

북동부

[편집]
  1. 암낫짜른, Amnat Charoen
  2. 부리람, Buri Ram
  3. 차이야품, Chaiyaphum
  4. 깔라신, Kalasin
  5. 컨깬, Khon Kaen
  6. 러이, Loei
  7. 마하사라캄,Maha Sarakham
  8. 묵다한, Mukdahan
  9. 나컨파놈, Nakhon Phanom
  10. 나콘 랏차시마(코랏), Nakhon Ratchasima
  11. 넝부아람푸, Nong Bua Lamphu
  12. 넝카이, Nong Khai
  13. 러이엣, Roi Et
  14. 사껀나콘, Sakon Nakhon
  15. 시사껫, Si Sa Ket
  16. 수린, Surin
  17. 우본랏차타니, Ubon Ratchathani
  18. 우돈타니, Udon Thani
  19. 야소톤, Yasothon

남부

[편집]
수랏타니 주의 건축물
  1. 춤폰, Chumphon
  2. 끄라비, Krabi
  3. 나콘시탐마랏, Nakhon Si Thammarat
  4. 나라티왓, Narathiwat
  5. 빳따니, Pattani
  6. 팡응아, Phang Nga
  7. 팟탈룽, Phatthalung
  8. 푸껫, , Phuket
  9. 라농, Ranong
  10. 사뚠, Satun
  11. 송클라, Songkhla
  12. 수랏타니, Surat Thani
  13. 뜨랑, Trang
  14. 얄라, Yala
태국의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지역

방콕
방콕
파타야
파타야 해변

순위 도시명 인구

치앙마이
치앙마이 핫야이

1 방콕 11,971,000
2 파타야-촌부리 1,003,839
3 치앙마이 960,906
4 핫야이 송클라 801,747
5 나콘 랏차시마 439,546

대외 관계

[편집]

외교는 반공을 기본 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 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 원조를 받았다. 미국의 동남아시아 정책에 협력하여 1954년 설립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본부를 방콕에 두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와 미국공군기지도 두게 되었다. 한편 공산 진영과의 관계유지도 게을리하지 않아 옛 소련과 1947년부터 국교를 맺었으며 중국과는 1975년, 베트남과는 1976년에 국교를 맺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외교를 수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1967년 결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가입해 베트남전쟁 후의 캄보디아문제·지역내 경제협력 등 많은 공통문제로 여러 나라 수뇌의 상호 방문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 6월 도쿄 캄보디아평화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1]

대한민국

[편집]

태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의 옛 이름인 시암 왕조1391년,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당시 고려, 조선)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1394년에는 조선의 사절단이 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단절된 양국 관계는 1950년 태국 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 전쟁에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원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태국 육군은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한민국1972년까지 주둔하였다.

태국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70만 명을 넘어서면서 양국 간에 교류와 이해가 증진되고 있다. 태국은 대한민국-태국 비자 면제 협정에 의거, 관광 및 방문, 행사 참여 등 영리 목적으로의 입국이 아닌 경우는 90일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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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중이다. 1975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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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와는 국경 사이에 위치한 힌두교 사원을 두고 분쟁중이며, 결국 캄보디아와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3] 그리고 2008년 10월 15일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서도 총격전을 벌였다.[4] 하지만 태국과 캄보디아는 2009년 1월 26일에 국경대치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5]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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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세계 2차 대전 당시, 차크리 왕조와는 동맹국으로 일본의 항복 이후에도 우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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