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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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말,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한국의 액체로켓인 [[과학로켓 3호]] 개발이 [[한미 미사일 지침]] 위반이라며, 대덕의 항공우주연구원에 사찰단을 보냈다.<ref>[과학]韓-러 우주개발 新동반자로, 동아일보, 2002-12-15</ref> |
2001년 말,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한국의 액체로켓인 [[과학로켓 3호]] 개발이 [[한미 미사일 지침]] 위반이라며, 대덕의 항공우주연구원에 사찰단을 보냈다.<ref>[과학]韓-러 우주개발 新동반자로, 동아일보, 2002-12-15</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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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나로호]] 개발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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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8일,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과학로켓 3호]]의 시험 발사를 성공했다. |
2002년 11월 28일,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과학로켓 3호]]의 시험 발사를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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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1일 (금) 12:03 판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항공우주연구원의 중장기 우주개발 계획이다. 1996년 최초로 수립된 국가계획이며, 2005년 우주개발진흥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이라고 부른다.
역사
제1차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
1996년 4월 30일, 과기처 종합과학기술심의회가 한국기계연구원의 부설기관인 항공우주연구소를 독립법인으로 만든다는 내용의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확정했다.[1]
항공우주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을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이라는 국가계획을 수립했다. 1996년 부터 2015년까지 4조 8천억원을 투입, 한국의 우주산업 수준을 세계 10위권내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이다.
제2차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했다.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여, 한국은 1996년 4월 30일 수립한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개정하기로 했다. 당초 2015년에서 5년 앞당겨, 2010년까지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기로 1차 개정했다.
2001년 말,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한국의 액체로켓인 과학로켓 3호 개발이 한미 미사일 지침 위반이라며, 대덕의 항공우주연구원에 사찰단을 보냈다.[4] 2002년 8월, 나로호 개발을 시작했다. 2002년 11월 28일,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과학로켓 3호의 시험 발사를 성공했다.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2005년 우주개발진흥법을 제정했다.
2007년 6월, 노무현 정부는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제정했다. 대한민국을 2020년까지 세계 7위의 항공우주산업 국가로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2009년 8월 25일, 무게 100 kg 과학기술위성 2A호를 나로호로 독자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2010년 6월 10일, 무게 100 kg 과학기술위성 2B호를 나로호로 독자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제2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2011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제2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으로 개정했다.
2013년 1월 30일, 무게 100 kg 나로과학위성(과학기술위성 2C호)을 나로호로 독자 발사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11번째로 자국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국가가 되었다. 나로호의 원모델인 러시아 앙가라 1.1은 무게 2톤의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 1996년 제1차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의 당초목표는 2015년까지 세계 10위였는데, 2013년에 세계 11위를 달성했다.
2013년 8월 22일, 무게 1,315 kg 아리랑 5호를 러시아에서 발사했다. 1996년 제1차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의 당초목표는 2010년 무게 500 kg 아리랑 5호의 독자발사였는데, 변경되었다.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으로 개정할 계획이다. 2018년 부터 2022년까지 5년간의 국가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