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년~1792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년~179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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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일부 | |||||||
1788년 오차코프 포위전, 야뉘에리 수초돌스키 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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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러시아 제국 | 크림 칸국 | ||||||
지휘관 | |||||||
예카테리나 2세 요이아스 공작 |
압뒬하미트 1세 |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년~1792년)은 러시아 제국과의 이전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기 위해 오스만 제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의 목표는 실패로 끝났다. 이 전쟁은 제8차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과 동시에 발생했다.
배경
[편집]1787년 5월과 6월, 예카테리나 2세는 노보로시야와 새로 병합한 크림반도에서 활발한 영토 확장 정책을 펼쳤다. 이는 오스트리아-러시아 동맹을 통해 연합국이 된 신성 로마 제국의 요제프 2세가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1] 일련의 사건들과 예카트리나 2세의 그리스화 계획[2] 그리고 이전 전쟁을 종결지은 퀴취크 카이나르카 조약의 위배로 인한 상호 간의 불평에서 비롯된 충돌은 이스탄불의 공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영국과 프랑스 대사관들은 오스만 주전론자들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전쟁
[편집]1787년 오스만 정부는 러시아인들에게 크림반도에서 철수하고 흑해 인근의 거점들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3] 이것은 러시아 제국이 곧바로 전쟁을 선포하는 원인으로써의 전쟁 명분이었다.[3] 1787년 8월 19일, 러시아 제국은 전쟁을 선포했고, 오스만 제국에 상주하던 러시아 제국 대사관 야코프 불가코프는 이어서 수감되었다.[4]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준비는 부적절했고,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이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이 선택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남부 우크라이나에 있는 킨부른 인근의 요새 2곳을 공격하면서 공세가 시작되었다.[5]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이 1787년 9월과 10월에 2개의 오스만 제국의 해상 공격을 연기시켰고, 이 덕분에 러시아 제국군은 크림반도를 지킬 수 있었다.[6][3] 몰다비아에서 러시아군은 이아시, 호틴을 점령했다.[5] 드네스트르강의 입구에 있는 오차키우는 수보로프 장군과 포템킨 장군의 6개월간 공세 끝에 1788년 12월 6일 함락되었다.[5][3] 점령된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들은 포템킨의 명령에 따라 집단살해되었다.[7] 러시아 제국에 연이은 패배를 겪었음에도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와 트란실바니아에서 요제프 2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7]
1789년,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몰도바에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8] 설상가상으로 8월 1일, 수보로프 장군의 러시아군이 포차니 전투에서 오스만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했다.[3] 9월 22일에는 림니크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다시 패배했고, 렘니쿠 세라 강에서 오스만 제국군이 축출되었다.[8] 이 전투 이후 러시아 제국 정부는 수보로프에게 림니크스키 백작이라는 작위를 내렸다.[3] 오스트리아의 장군인 에른스트 기데온 폰 라우돈 남작이 오스만의 보스니아 침공을 격퇴하고 베오그라드를 탈환하면서 오스만 제국군은 더 큰 손실을 보았다.[9]
오스만의 전쟁 수행능력을 고갈시킨 그리스인 반란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정전 협정을 체결했다.[10] 한편, 러시아군은 수보로프 장군이 다뉴브강 입구에 위치한 오스만 요새 이즈마일을 1790년 12월 점령했다는 소식에 진격을 이어갔다.[10] 최종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마친에서 패배하였고,[11][3] 러시아 제국은 프로이센이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우려하여[12] 1791년 7월 31일 양국은 정전협정에 동의했다.[11] 요새 점령 이후, 수보로프 장군은 이스탄불을 행진하면서 이곳에 크리스트교 제국이 건설되기를 희망했다.
여파
[편집]아이시 조약(Treaty of Jassy)이 1792년 1월 9일 체결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1783년 러시아 제국의 크림 칸국 병합을 인정했다. 오데사와 오차코프도 러시아 제국에 할양되었으며 [10] 드네스트르강이 러시아 제국의 유럽 국경이 되었다. 한편 쿠반강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러시아 제국 국경으로 유지되었다.[11] 크림 반도를 영향권에 다시 두려고 했던 오스만 제국의 목표는 실패로 끝났으며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오스만 제국의 상황은 더 열악해졌을 수도 있었다.[11]
각주
[편집]- ↑ Stone 1994, 134쪽.
- ↑ Dowling 2015, 744쪽.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Dowling 2014, 841쪽.
- ↑ Cunningham 1993, 2쪽.
- ↑ 가 나 다 Tucker 2011, 959쪽.
- ↑ Tucker 2011, 863쪽.
- ↑ 가 나 Tucker 2011, 959–960쪽.
- ↑ 가 나 Tucker 2011, 963쪽.
- ↑ Tucker 2011, 964쪽.
- ↑ 가 나 다 Tucker 2011, 965쪽.
- ↑ 가 나 다 라 Sicker 2001, 82쪽.
- ↑ Tucker 2011, 9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