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데라힘 부아비드

Abderrahim Bouabid
압데라힘 부아비드
عبد الرحيم بوعبي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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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데라힘 부아비드
태어난1922년 3월 23일 (1922년)
모로코 살레
죽은1992년 1월 8일 (1992-01-08) (69)
모로코 라바트
국적모로코인
교육리케 물레이 유세프 – 라바트
직업정치인, 변호사
정당이스티클랄 파티 1944 – 1959
1959년 ~ 1992년 전국인민군연합

압데라힘 부아비드(아랍어: :عددمم – – – –23; b)1922년 3월 살레 – 1992년 1월 8일 라바트)는 모로코 정치인으로 1975년부터 1992년 사이 좌파 사회주의자 연합(SUPF)의 수장이었다.

초년기

부아비드는 1922년 3월 23일 살레의 메디나에서 태어났다.라바트의 Moulay Yousef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 그의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공부했다.그 기간 동안, 그는 나라의 미래를 형성하는 많은 뛰어난 인물들을 자주 접했다.메흐디 바르카의 친구였던 젊은 부아비드는 당시 민족주의 운동을 소개받아 프랑스군의 자국 주둔에 반대하였다.1939년 졸업 후 페즈로 건너가 교사가 되어 민족주의 단체들을 만났다.[1]

정치 참여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관여했던 부아비드는 1944년 1월 11일 독립당이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민족통일, 민주 헌법을 요구하는 선언문인 모로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최연소 운동가 및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었다.

1944년 1월 28일, 부아비드는 살레에서 자기 당의 일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체포를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그는 1년 후 석방되기 전에 다수의 이스티클랄 지도자들과 함께 수감되었다.1946년에 그는 그의 친구인 프랑스에 있는 Mehdi Ben Barka와 함께 모로코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하였다.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1949년에 변호사가 되었다.[2]

모로코가 독립을 승인받았을 때, 부아비드는 음바레크 베케이의 정부 아래 협상 담당 국무장관에 임명되었다.1956년 파리에서 모로코 대사가 되었고, 이후 국민경제부 장관에 임명되었다.1958년 5월 12일 아흐메드 발라프레지 내각에서 국민경제농업부장을 맡았다.1958년 12월부터 1960년 5월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3]

참조

  1. ^ 하산 2세-야빌라디(2018년) 국왕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최초의 정치인 아브데라힘 부아비드.
  2. ^ 압데라힘 부아비드 전기 – 알자지라(2014년) – 아랍어.
  3. ^ MEF - Royaume du Maroc. "Nos anciens ministres". www.finances.gov.ma.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