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사업회

Austrian Holocaust Memorial Service
게덴키엔스트
목적 홀로코스트의 기억
설립자 겸 회장 안드레아스 메이슬링거
Andreas Maislinger and Branko Lustig at the LAMOTH 2nd Annual Dinner (2).jpg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왼쪽)와 브란코 루스티그(오른쪽)
사무실 오스트리아 티롤 인스부르크
파운데이션 1992년 인스브루크
웹사이트 www.auslandsdienst.at/en/

게덴디엔스트는 자기 나라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에 대해 직시하고 책임을 지면서, 이상적으로는 자기 나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개념이다. 1992년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 게덴디엔스트(Andreas Maislinger the Gedenkdienst)가 오스트리아에서 창설한 것은 오스트리아의 의무적인 국가 군 복무를 위한 대안이자 오스트리아인들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전 세계 유대인 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자원봉사 플랫폼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해외 오스트리아 봉사단이 제공하는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사업이라고도 한다. 오스트리아 게덴디엔스트는 나치즘의 범죄들을 추모하고,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유대인들의 문화적 미래를 지지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가사회주의의 범죄에 대한 오스트리아 정부의 책임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념

게덴디엔스트는 자기 나라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에 대해 직시하고 책임을 지면서, 이상적으로는 자기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개념이다. Gedenkdienst는 역사 속에서 자기 나라 사회가 저지른 잔혹행위에 대한 인정사과 그리고 책임에 대한 가정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Gedenkdienst는 과거의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가해자들이 저지른 악에 대해 책임을 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이다. Gedenkdienst는 한 나라의 과거에 대한 정직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에 관한 것이다. Gedenkdienst는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관계를 개선으로 전환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게덴디엔스트는 가해자 쪽 사람들에게 교육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피해자 쪽까지 찾아가 악행의 추모와 희생자의 기념을 섬기는 내용이다. Gedenkdienst는 과거에 대한 정직함의 기초 위에서 평화에 관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게덴키엔스트는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유대인 문화생활을 지원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Gedenkdienst가 다른 만행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역사

오스트리아 최초의 젊은이는 1992년 9월 1일 아우슈비츠에서 시작되었다.

기원[1]

브라우나우 현대사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과학 감독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 박사는 1970년대 후반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구, 이해, 추모뿐 아니라 그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데 헌신하는 의무 병역의 대체 복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홍보했다. 1980년 10월 10일 그는 정치학자 교수의 초대를 받았다. 안톤 펠링카는 돌로레스 바우어의 텔레비전 방송인 "크뢰즈베르외르"에서 자신의 "아우슈비츠에서의 문민 봉사"를 발표할 것이다. 이에 대해 루돌프 키르흐슐레거 오스트리아 연방 대통령은 "오스트리아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속죄할 것이 없다"는 성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거부했다. 이후 키르흐슐레거는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의 "유쾌한 홀로코스트 추모제"의 "긍정적인 성취"를 인정하는 발언을 철회했다.

1980/81년 독일 평화 행동 화해 서비스의 폴란드 부서에서 Maislinger는 Joachim Schlör와 함께 자원봉사를 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에서 그는 독일 청소년 단체들을 지도했다. 그가 돌아온 후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확신했다. 이 노력에서 그는 사이먼 비젠탈, 테디 콜렉, 아리 라트, 허버트 로젠크란즈, 게르하르트 뢰슬러, 칼 파이퍼의 지원을 받았다.

1991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브라니츠키 수상은 2차 세계대전 중 국가사회주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오스트리아 국민의 책임을 인정하고 인정한 최초의 수상이었다.[2] 이 새로운 접근법은 당시 확립된 오스트리아의 신화에 대해 단지 나치즘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국가사회주의 시절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인들의 역할에 대한 입장과 처우에 관한 오스트리아 정치체제 내부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사했다. Gedenkdienst는 이러한 인식의 유출이다.

실현

1991년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는 프란츠 뢰슈낙 내무장관으로부터 게덴디엔스트가 오스트리아 정부에 의해 민간 서비스의 대안으로 허용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필요한 자금은 연방 내무부에 의해 제공될 것이다.

인사말

"나는 큰 관심을 가지고 게덴키엔스트의 작품을 따르고 있으며 조직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사이먼 비젠탈

"나는 종종 독일 조직인 '아키옹 쉬네체이첸'처럼 이스라엘에 젊은이들을 파견하는 오스트리아 협회가 없다고 주장했다. 게덴키엔스트의 틀 안에서 오스트리아 민간 봉사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 덕분에 지금 그곳에 있다는 것을 읽고 감동했다."

테디 콜렉

"파시스트 집중 수용소의 전직 폴란드 정치범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로서, 나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빌어 고관 앞에서 연설하고 싶다. 과거의 기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든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여기서 나는 특히 교수의 지도 아래 오스트리아 저항군의 문서 보관소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볼프강 너게바워, 오스트리아 캠프 커뮤니티 마우트하우젠, 게덴크디엔스트, 구센, 랑겐슈타인 und St. 조국과 추모, 역사 돌봄을 위한 워킹 서클인 오버뢰스테르레이히의 게오르겐."

블라디슬라프 바르토셰프스키

"당신이 성취한 게덴키엔스트에서 얻은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정보에 감사한다."

루돌프 키르흐슐레거

"게덴키엔스트는 매우 인상적인 이니셔티브다."

토머스 클레스틸

"나는 이 단체와 매우 친밀감을 느끼고 하인들이 성취하는 것이 오스트리아의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에 하인들을 매우 존경한다. 왜냐하면 하인들이 과거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첫 번째 피해자였다."

발터 콘

"게덴키엔스트 이니셔티브를 지지하고 추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젊은이들이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 할 진정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카르디날 크리스토프 쇤본

"많은 사람들은 그 젊은 오스트리아인들이 스스로 무엇을 성취하는지, 등뼈를 곧게 펴고, 그래서 이 세대의 나 자신 또한 다시 똑바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디트마르 쇤허르

"게덴키엔스트 프로젝트를 평화와 국민 소통의 서비스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이니셔티브로 생각한다."

볼프강 슈셀

"게덴키엔스트는 추억의 작품인데, 이 작품 역시 '어제 세계'와 근대와 민주적인 오스트리아를 잇는 가교다. 책임감과 도덕적 용기 같은 오늘의 가치관이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음을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이클 스핀들레거

"각 세대는 과거의 공포를 자각해야 평화와 인권 존중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Gedenkdienst 프로젝트는 "절대 잊지 말라"라는 단어의 의미를 감지하는 중요한 도전에 기여한다.

프란츠 브라니츠키

지원 연관성

협회는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절대 잊지 않는다.

이 협회는 독일과 폴란드의 19개 기념지에 자리를 제공했다. '잊지 말라' 협회는 망각 반대 청년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협회는 2017년 가동을 중단하고 폐업했다.

1998년 이후 오스트리아 해외 서비스 (Eusterreicischer Auslanddienst)

안드레아스 호르트나글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는 1998년 "오스트리아 서비스 해외"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체로 세계 6개 대륙에 아우슬란드디엔어를 파견해 홀로코스트 기념사업, 사회봉사, 평화봉사 등을 수행한다. 오스트리아 해외봉사단은 게덴키엔스트, 오스트리아 사회봉사, 오스트리아 평화봉사 등 3가지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1992년 이후 게덴키엔스트

월터 그뤼겐베르거(SPEO), 안드레아스 호르트나글(EUVP),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정치적으로 독립한)는 1992년 게덴키엔스트 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그 원인과 결과를 포함한 홀로코스트의 인식을 향상시키기를 원했다. 협회는 자원 봉사자들의 복무 전, 복무 중, 복무 후 구색을 책임지고 있다. 자원 봉사자들은 협력 기관 중 한 곳에 지원할 수 있다. 범죄자로서 오스트리아인들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 외에도, 피해자들과 구경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여성들은 유럽 자원 봉사 기관의 일부로 1년 동안 Gedenkdienst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2008년 처음으로 '게스위스터-메자이-폰드'가 후원했는데, 이는 여성들에게 민간종사자와 같은 조건에서 게덴디엔스트를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파트너 조직

디트로이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아르헨티나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카사 스테판 즈베이그는 오스트리아-유대인 작가 스테판 즈베이그 부부를 위한 박물관을 페트로폴리스의 마지막 거주지에 설립할 목적으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스테판 즈웨이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계류되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고조되면서 그는 먼저 런던으로 이민을 갔고 이후 1941년 그와 그의 아내가 자살한 브라질로 이주했다. Gedenkdiener는 그가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박물관을 통해 안내하는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그는 전세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유명한 문화 기관이다. 게다가, 자원봉사자는 문화 행사 조직과 지역 학교, 대학 및 유사한 기관과의 협력에 참여하고 있다.

불가리아

캐나다

몬트리올 홀로코스트 기념 센터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그룹에 의해 설립되어 1979년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센터는 박물관과 기념 프로그램, 교육 시책을 통해 대중에게 반유대주의, 편협성, 증오 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인간 삶의 신성함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몬트리올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열리는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 봉사단'의 활동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업무는 사무실의 업무를 돕는 것에서부터 번역(독일어-영어)에 이르기까지 연구지원이나 수집기술에 대한 설명과 디지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작업 일정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박물관 프런트 데스크를 취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자원봉사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학생, 교사, 방문객들과 교류하여 투어를 조정하고 적절한 일상을 보장한다. 나아가 '역사의 목격자', '기억할 바 & 배트 미츠바', '크리스탈나흐트 기념' 등 여러 프로젝트와 행사에 참여한다.
  • 몬트리올 - 클라인만 가족 재단 몬트리올(2002)
'Kleinmann Family Foundation'의 Gedenkdiener는 유물, 문서, 사진 등을 디지털화, 보관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베이스와 웹사이트를 유지·개선한다. 이 자원봉사자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홀로코스트와 도덕적 책임에 대해 발표한다. 이 하인은 또한 "도덕 역사" 프로젝트를 위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인터뷰한다.
  • 토론토 - 사라와 차임 뉴버거 홀로코스트 교육 센터 / 힐렐 캐나다(2010)
이번 인턴십은 캐나다 대학 캠퍼스 힐렐 캐나다의 유대인 연맹-유나이티드 이스라엘 어필과 토론토 대유대유인 어필 연맹 사라와 차임 뉴버거 홀로코스트 교육 센터가 공동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다. 인턴의 1차적인 책임은 두 기관이 맡은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이다. 이 인턴은 센터와 대학 캠퍼스에서의 홀로코스트의 관점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학생들을 지원할 것이다. 다른 과제는 캐나다, 유대인 학생들을 위한 비엔나 교육 여행 조직 지원, 유대인 대학살 교육 관련 활동 측면에서 현지 학교와의 연계 유지 등이다.

중국

크로아티아

체코

  • 프라하 - 유대인 프라하 공동체 (1998년)

프랑스.

아미칼레 드 마우트하우젠은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의 역사와 많은 하위 수용소의 역사를 기리는 프랑스의 단체다. 이들 수용소의 생존자들에 의해 1945년 10월에 설립된 아미칼레 드 마우트하우젠은 오스트리아에서 매년 열리는 해방식에 참석하여 프랑스 고등학생들과 그 회원들을 위한 소풍을 조직하고 있다. 아미칼레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일에는 프랑스-독일어 번역과 소풍 조직 지원, 아미칼레 문서 디지털화 등이 있다.
Gedenkdiener의 과제는 새로 설치된 "로마포용 유럽 도시 및 지역 연합"의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돕는 것을 포함한다. 게덴디엔어는 동맹의 중장기적 목표 때문에 향후 협력에 관심이 있는 도시와 지역의 리스트를 만드는 데 동맹관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게다가 그 하인은 로마 단체와의 회의뿐만 아니라 현장 연구에도 참여할 것이다. 게다가 게덴디엔어는 지역적, 지역적 기반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의회와 로마 문제를 위한 사무총장의 특별대표의 조정에서도 의회를 돕는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해외봉사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센터와 협력하여 오스트리아에서 런던으로 게덴키에너를 파견한다. 이 외국인은 강연자를 예약하거나 여행을 계획하거나 신기술 개발을 돕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 생존자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주된 임무다.

헝가리

이스라엘

이탈리아

게덴키에네르의 주요 임무는 독일어 기사를 번역하고 교정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자료를 분류하고 중앙에서 행사를 조직하는 일을 맡고 있다. Gedenkdiener에게는 방문객들을 돌보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인턴사원의 주요 업무는 박물관을 통한 가이드 투어(보통 14~19세 사이의 학생 그룹에 해당)와 강제수용소 및 쇼아 제도의 개요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문서 센터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과 도서관에 추가된 새로운 도서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인턴의 책임이다. 정기적으로 문서 센터에서 인턴의 도움이 필요한 연설과 토론이 있다. 인턴은 박물관의 모든 여행을 조직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주립 박물관에는 2년마다,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구센의 예전 강제 수용소에는 매년마다(항상 이탈리아 학생들과 함께).
  • 로마 - 폰다지오네 델라 쇼아(2012년)

라트비아

자원봉사자의 주요 임무는 20세기 라트비아가 나치 독일과 구소련이 연속 점령한 51년 시대를 보여주는 박물관을 통해 안내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원봉사자들은 박물관 "라트비아의 쥬스"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라트비아의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를 연구하고 대중화하며 기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박물관의 설립자 마거스 베스터마니스는 라트비아에서 유대인 문화를 되살린 공로로 2015년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상을 받았다. 다른 자원봉사자의 업무는 문서 번역, 유물의 디지털화, 임시 전시물 기획 등 다재다능하다.

리투아니아

마케도니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오우위시킴에 있는 AJCF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주요 임무는 박물관, 회당, 마을, 유대인 공동묘지를 통해 안내하는 것이다. 투어는 독일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게다가, 자원봉사자는 박물관의 카페에서 도움을 준다. 게다가, 홀로코스트 추모 시종들은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돕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슬로베니아

스웨덴

터키

미국

인턴의 주요 업무 범위는 현장학습의 조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학습은 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의 주요 부분이다. 인턴은 박물관에 있는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의 등반가로 안내하는 것을 돕는다. 게다가 그는 학교 그룹과 도슨트 사이의 불연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하는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다. 생존자와의 작업, 문서 번역, 이벤트 지원 등이 추가 과제다.
로스엔젤레스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며, 생존자들의 세미나와 강의를 용이하게 하여 교사들과 함께 관광 일정을 짜고 조율하는 작업을 한다. 이 자원봉사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학생, 교사, 박물관 방문객들과 매일 교류한다. 그 하인은 또한 그가 번역하고 검토하고 해석하는 1차 문서와 유물을 가지고 일한다.
한 세기 이상 AJC는 세계적인 유대인 옹호 단체였다. AJC는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유대인 사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유대인들의 안녕을 증진하고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4] Gedenkdiener는 AJC의 젊은 리더십 부서인 Access의 일부분이다. 이 하인은 세계 각국으로의 국가 여행을 조직하는 것 외에도 미국 전역의 여러 액세스 장의 작업을 조정하고 그들의 프로그래밍을 감독한다. 게다가, 하인은 종종 접근과 관련된 수많은 다른 프로젝트(예: 외교적 노력)를 돕는다.[5]
버지니아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는 박물관장이자 설립자인 제이 M의 이야기를 기록한 '아이슨 사가' 등 28개 전시회가 열린다. 엡손과 그의 가족은 전쟁 전 리투아니아에서 해방되어 탈출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소 전시회는 현대 국제법의 표준을 정립한 유명한 법정의 현존하는 유일한 복제품이다. Gedenkdiener의 임무는 다양하다. 버지니아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임무는 상설 전시회를 통해 관광을 하는 것에서부터 번역(독일-영어)까지 다양하다.
FHM은 Walter Loebenberg와 그의 아내 Edith에 의해 1992년에 설립되었다. 오늘날 이 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각각의 업무는 게덴키에너의 관심사에 따라 인턴마다 다르다. 주요 업무는 교육부를 위한 것이다. 이 인턴은 투어에 참여하도록 훈련을 받고 박물관이 인접한 미국의 모든 학교에 무료로 제공하는 소위 "교습용 트렁크"를 만드는 것을 돕는다. 다른 프로젝트로는 오래된 독일의 문서 번역, 박물관에서 학교 단체들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촬영 등이 있다.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상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도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상(AHMA)을 제정해 홀로코스트 추모에 적극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했다. 2006년 10월 17일 중국의 역사학자 판광은 첫 AHMA 상을 받았다.[6] 이밖에 브라질 언론인 알베르토 다인스, 프랑스인 로버트 헤브라스도 6명 중 한 명으로 오라두르 대학살과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홀로코스트 생존자, 버지니아 홀로코스트 박물관 제이 M 공동설립자였다. 엡손. 2010년 10월, 에바 마크스는 멜버른에서 오스트리아 대사 하네스 포리아스에 의해 AHMA 상을 받았다.[7]

존칭

2005년에 Gedenkdienst Andreas Maislinger의 설립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 Hainz Fischer로부터 으로 오스트리아 공화국에 대한 서비스 훈장을 받았고, Herwig van StaaLuis Durnwalder로부터 Tirol 주의 훈장을 받았다.

2009년 11월 8일, 메이슬링거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목록 브란코 루스티그 프로듀서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연례[8] 만찬에서 "대체, 자선 봉사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위한 10년간의 투쟁"으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9]

참고 항목

참조

  1. ^ "How Austria's Youth Are Building Bridges to the Global Jewish Community". Times of Israel.
  2. ^ "Austrian Acknowledgement of Guilt for Holocaust Welcomed by Survivors". Jewish Telegraphic Agency.
  3. ^ Ainetter, Bernhard (October 1997). "Mehr als nur Pflicht...Der Gedenkdienst als Alternative zum Zivildienst". Unipress (Innsbruck).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1 May 2014.
  4. ^ "American Jewish Committe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9 February 2017. Retrieved 26 February 2017.
  5. ^ 오스트리아의 해외 서비스
  6. ^ 판광 교수웨이백머신(cjss.org.cn)에서 2011-01-04년 보관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상을 받았다.
  7. ^ 에바 마크스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홀로코스트 기념상을 받은 최초의 호주인이자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8. ^ LA 홀로코스트 박물관, 2019년 3월 22일 웨이백머신(lamoth.org)에 2차 연례 만찬을 위한 영예를 발표하다
  9. ^ LA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AHMS 설립자 안드레아스 마이슬링거[permanent dead link](오스트리아 대사관)를 기리고 있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