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주 바텔
Barthell, Kentucky바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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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36°41′11″N 84°31′31″w / 36.68639°N 84.52528°W좌표: 36°41′11″N 84°31′31″W / 36.68639°N 84.52528°W / | |
나라 | 미국 |
주 | 켄터키 주 |
카운티 | 맥크레리 |
확립된 | 1902 |
표고 | 1,270ft(337m) |
시간대 | UTC-5(동부(EST)) |
• 여름(DST) | UTC-4(EDT) |
GNIS 피쳐 ID | 510422[2] |
웹사이트 | barthellcoalcamp.com |
바텔은 미국 켄터키 주 맥크레리 카운티의 옛 석탄 마을이다. 1902년에 설립되었으며, 스턴스 석탄 및 목재 회사가 건설한 18개의 광산 수용소 중 첫 번째였다. 지금은 4월부터 추수감사절까지 문을 여는 야외 역사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
1880년대-90년대 동안, 빅 사우스 포크를 둘러싼 땅의 많은 부분이 L.E.에 의해 매입되었다. 석탄 매장량을 탐사하기 시작한 브라이언트. 1901년, Byrant는 그의 동료인 John Toomey를 목재 남작 Justus S로 보냈다. 미시간 주의 스턴스 씨는 그에게 빅 사우스 포크 지역의 광물 권리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다. 1902년에 바텔이 설립되었고 광산 1호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석탄 선적은 1903년 스턴스에서 켄터키 철도와 테네시 철도가 완공된 후 바르텔에서 인도되었다. 1905년과 1906년 사이에 바르텔에서는 광산 2호가 개통되면서 영업이 확대되었다.[3]
1923년부터 1927년까지 브라이언트 임대는 스턴스 석탄 및 목재 회사에 의해 완전히 매입되었다. 1930년 1월 월간 석탄 생산량이 사상 최대인 10만961t을 기록하는 등 대공황이 한창일 때에도 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바텔에서의 석탄 생산을 더욱 증가시켜 제2의 철도노선을 추가해야 했다.[3]
바르텔의 쇠퇴는 1943년 광산 1호의 티플이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되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내 1호기도 티플 화재 직후 폐쇄됐다. 2호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은 이후 블루헤론 채굴단지 내 18호 광산의 티플에 보내졌다. 탄막 해체는 1952년에 시작되어 1961년에 완공되었다.[3]
1984년 바텔 석탄 캠프는 코게르 가문에 의해 매입되었는데, 코게르 가문은 공동체의 활성화에 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였다. 회사 가게, 의사 사무실, 학교 건물 등 지역사회의 독창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개조되어 견학할 수 있다. 옛 탄막주택 15채도 리모델링해 하룻밤 묵을 수 있다.[4]
참조
- ^ "Barthell". Geographic Names Information System.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2010년 11월 28일 검색됨
- ^ 미국 지질조사국 지리적 이름 정보 시스템: 켄터키 주 바텔
- ^ a b c 2010-11-28년에 회수된 바텔의 연대기적 역사
- ^ 2010-11-28에서 관심장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