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초우 전투

Battle of Obuchowo

오부초우 전투는 1920년 9월 26일 폴란드-소련 전쟁 에 일어났다.미에츠스와프 보루타 슈피초비치 대령이 지휘하는 폴란드 제4포데일 소총 연대는 붉은 군대의 5, 6, 56 소총 사단 소속 부대들과 충돌했다.Grodno 근처의 Obuchowo 마을에서 일어난 이 전투는 훨씬 더 큰 니멘전투의 일부로 여겨진다.

당시 안제이 갈리카 장군이 지휘하고 제2군(에드워드 리즈-시미그위 장군)에 속해 있던 폴란드 제21산악보병사단은 코마토우의 니멘강 다리와 함께 인두라(그로드노에서 남쪽으로 25km)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제2산악여단이 이 임무를 맡았으나 적의 완강함 때문에 진격이 늦었다.9월 23일 저녁, 폴란드군은 두보를 점령했고, 다음날 오전 4시, 포병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군 2개 대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인두라 근처의 언덕은 소련 제5소총사단이 방어했고, 그들은 전진하는 폴란드군을 막으려고 여러 차례 반격했다.하루 종일 전투 끝에 폴란드 대대는 오후 10시에 인두라를 점령했다.

9월 25일, 보루타 슈피초비치는 코마투프를 향해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이날 오후 5시 코스텍키 소령 2대대가 니멘 강에 도착했지만 소련군이 불을 질러 다리가 이미 불타고 있었다.폴란드 부대는 부대가 없었기 때문에 기다려야 했다.부대는 마침내 자정에 도착했고, 적은 폴란드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전 3시 이전에 아무 문제 없이 강을 건넜다.

새벽 3시, 코스테키 소령의 대대는 오부쵸우에 도착했다.이 마을은 소련 제48소총연대가 경비병 중대와 함께 방어했다.폴란드군은 적을 기습하여 짧은 싸움 끝에 오부쵸우를 점령했다.후퇴하는 소련군을 추격하던 중 폴란드군은 그로드노에서 도망친 제6소총사단과 제56소총사단의 군 수송선을 만나 300명의 병사와 함께 50대의 마차를 탈취했다.

소련군 포로들로부터 제6소총사단과 제56소총사단이 두 줄로 나뉘어 스키델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된 보루타 스피초비치는 그들의 퇴각로를 끊기로 결정했다.폴란드 2대대는 치돔라 근처의 134고지, 오부초보 근처의 154고지 1대대로 보내졌고, 3대대는 오부초보에 예비군 상태로 남아 있었다.

제1대대와 제3대대는 제56소총여단의 공격을 받았다.2대대는 기병의 지원을 받은 제6소총사단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폴란드 병사들은 총검과 수류탄으로 진지를 방어했다.그들의 손실은 매우 컸고, 코스테키 소령도 두 번이나 부상을 입고 적에게 붙잡혔습니다.상황이 이렇자, 보루타 슈피초비치는 많은 군인들을 규합하여 개인적으로 반격을 이끌었고, 이는 소련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적군은 오부초우 북쪽과 동쪽으로 주력부대를 집결시켜 코마토프에서 건너는 니멘을 생포하고 폴란드 연대를 차단할 계획을 세웠다.

9월 26일 오후 2시, 제3포데일소총연대가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났다.소련은 그 압력으로 후퇴했다.지친 폴란드 병사들은 소련 부대를 파괴하는 데 실패했지만, 적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고, 퇴각은 몇 시간 지연되었다.

폴란드군은 KIA 300대, WIA/MIA 175대를 잃었다.소련군의 손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투에서 폴란드군은 700명의 포로, 3문의 중기관총, 50대의 왜건을 빼앗았다.

오부초우 전투는 바르샤바의 무명용사 무덤에서 "GRODNO - OBUchowo 20 - 25 IX 1920"이라는 글귀와 함께 기념된다.

원천

  • J. Odziemkowski, Leksykon wojny polsko-rosyskiej 1919-1920, WYTM Warzawa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