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Dongdaemun Stadium
동대문운동장
Korea-Seoul-Dongdaemun Stadium.jpg
이전 이름경성운동장
서울운동장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
좌표37°34°03°N 127°00′38§ E/37.56758°N 127.010595°E/ 37.56758, 127.010595
용량.22,706
건설
착공1925년 5월 24일
열린1925년 10월[1] 15일
확장된1962, 1966, 1968
닫힘2003
철거되었다2008
세입자
일화 천마(1989~1995)
LG 치타스(1990~1995)
우공 엘리펀츠(1991년~1995년)
한국이름
한글
동대문운동장
한자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동대문운동장
맥쿤-라이샤우어동대문운동장

동대문운동장다목적경기장, 야구장, 기타 스포츠 시설들을 포함하는 한국의 종합운동장이었다.동대문이나 대동문 근처에 있었어요.동대문 시장 주변에는 운동 관련 용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2008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가 들어서기 위해 철거되었다.

역사

주경기장과 야구장은 1925년 5월 24일 착공하여 1925년 10월 15일 경성운동장으로 개장하였다.이 경기장은 평양의 기림운동장함께 1930년대 경성-평양 시외 축구대회에서 사용된 두 경기장 중 하나였다.

1945년 8월 15일 25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한반도 [2]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을 정도로 일제강점기 종말의 대규모 축하 장소였다.

1962년에는 수영장, 배구장, 소프트 클레이 테니스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두 경기장을 현대화하기 위해 추가 공사가 진행되었다.투광 조명 장치는 1966년에 야구 경기장에, 1968년에 야간 스포츠 경기를 허용하기 위해 육상 경기장에 추가되었다.

철거되기 전 육상경기장은 각종 신상품과 중고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으로 이용됐다.그것은 57년 동안 활동해 온 거대한 동대문 상가의 일부를 형성했다.

시설.

풋볼

다목적 경기장은 1988년 올림픽을 위해 서울 종합운동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서울의 주요 스포츠 경기장으로 남아있었다.이곳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경기장이었지만 1990년대까지 계속 사용되었고 2000년 미얀마와의 마지막 국제 경기가 열렸다.

3만 석의 주경기장은 1988년 하계 올림픽 8강과 국제 축구 [3]대회인 코리아컵의 많은 경기를 포함한 일부 축구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1983년 5월 8일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축구 리그인 K리그의 첫 경기가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다.1995년까지는 일화 천마(현 성남 FC), LG 치타스(현 FC 서울), 유공 엘리펀츠(현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연고지였으나 K리그의 지방분권 정책으로 1996년 연고지로 이전했다.

다른이들

한국 프로야구의 첫 경기는 [citation needed]1982년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렸다.

「 」를 참조해 주세요.

메모들

  1. ^ 경성운동장 사용규정 (in Korean). The Dong-a Ilbo. 17 October 1925.
  2. ^ 동대문운동장 다음 백과사전 엔트리
  3. ^ 1988년 하계 올림픽 공식 보고서.제1권. 제1부. 페이지 202-3.

레퍼런스

외부 링크

좌표: 37°34°03°N 127°00°38°E / 37.56758°N 127.010595°E / 37.56758, 127.010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