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수그라 베굼

Fatima Sughra Begum

베굼굴람 후사인 히다야툴라, 파티마 수그라 베굼, 베굼 히다다툴라, 레이디 히다툴라라고도 알려진 파티마 수그라(1932~2017년 9월 25일)는 파키스탄 정치계의 활동가 겸 인사였다.[1][2] 그녀는 굴람 후사인 히다야툴라 경의 아내였다. 그녀는 시민 사무국 라호르에서 유니언 잭을 떼어내 14세에 올인도 무슬림 연맹 깃발로 교체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행동은 그녀를 많은 사람들의 눈에 영웅으로 만들었다.[1][3]

초년기

베굼은 1932년 영국 인도 라호르의 왈리드 시티에서 태어났다.[1][2] 그녀는 야쿠브 칸 포팔자이 두라니의 딸이었다. 그녀는 유명한 신디 정치 지도자 굴람 후세인 히다다툴라 경과 결혼했다.[4]

정치

1938년, 아직 어린 아이였던 그녀는 올인도 무슬림 연맹에 가입했고, 이것이 그녀의 정치 경력의 시작을 알렸다. 그녀는 곧 여성 중앙 소위원회에 가입했다.[1]

하이데라바드, 나와브샤, 다두 등 신드 지역마다 다양한 지방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것은 그녀의 노력 덕분이었다.[1]

1943년 12월 무슬림 연맹 연차 총회에서 베굼은 여성 접수 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1]

어린 학생이었던 그녀는 1940년대에 라호르에서 정치 절차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그녀는 정부가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별도의 국가를 위한 연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1]

1947년 2월, 불과 14세의 나이로 베굼은 시민 사무국 라호르에서 영국 연합 잭을 끌어내렸고, 무슬림 리그 깃발을 게양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진다바드'[2][5]를 외치는 모든 무슬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행위는 영국 인도의 독립의 큰 상징이 되었다.[6]

베굼은 여성난민구호위원회에서도 활동하면서 칸막이를 마치고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도왔다.[1][3]

유명한 신문 칼럼니스트 오리아 마크볼 얀에 따르면, 수그라는 당시 이슬람 여성들에게 롤모델이었다.[5]

수상 및 인정

  • 파키스탄 운동 기간 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는 '파키스탄으로의 봉사'로 파키스탄 운동 노동자 신탁으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그녀는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그녀는 또한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2][1][5]

죽음

베굼은 2017년 9월 25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라호르의 미아니 사이브 묘지에 안치되었다.[3][5][2]

참조

  1. ^ Jump up to: a b c d e f g h i 독립기념일 특별 행사: 자유 투쟁의 여성 여단 (Patima Sughra Begum의 프로필을 읽기 위해 아래로 스크롤) ARY TV 뉴스, 2016년 8월 14일 발행, 2021년 9월 15일 회수
  2. ^ Jump up to: a b c d e Xari Jalil (26 September 2017). "Fatima Sughra is no more (biography and achievements)". Dawn (newspaper). Retrieved 15 September 2021.
  3. ^ Jump up to: a b c (파키스탄 언론협회) 파키스탄 운동 베테랑 파티마 수그라가 86 더 뉴스 인터내셔널(신문)에서 사망, 2017년 9월 25일, 2021년 9월 15일 회수
  4. ^ "Lady Ghulam Hussain Hidayatullah - Former President of the Women's Reception Committee". Story of Pakistan website. 1 June 2003. Retrieved 15 September 2021.
  5. ^ Jump up to: a b c d "유명한 파키스탄 운동가 수그라 파티마는 사망하다 익스프레스 트리뷴(신문) 2017년 9월 26일 출간, 2021년 9월 15일 회수"
  6. ^ 라호르 데일리 파키스탄 시민 사무국에서 유니언 잭을 끌어내린 부인, 2017년 9월 25일 출간, 2021년 9월 15일 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