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아서 노울랜드
George Arthur Knowland조지 아서 노울랜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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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 1922년 8월 16일 런던 캣퍼드 |
죽은 | 1945년 1월 31일 (22세) 버마 아라칸 170길 |
파묻힌 | 버마 타우키얀 전쟁묘지 |
얼리전스 | ![]() |
서비스/지점 | ![]() |
근속년수 | 1940–1945 |
순위 | 중위 |
구성 단위 | 로열 노퍽 연대 1호 특공대 |
전투/와이어 | 제2차 세계 대전 |
수상 | ![]() |
조지 아서 노울랜드 VC(George Arthur Knowland VC, 1922년 8월 16일 ~ 1945년 1월 31일)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빅토리아 십자군의 영국 수상자로, 영국과 영연방군에 수여할 수 있는 적 앞에서 용맹으로 최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노울랜드는 1922년 8월 16일 켄트의 캣포드에서 태어나 크로이돈의 엘름우드 초등학교를 다녔다. 1940년 영국 육군인 로열 노퍽 연대에 사병으로 입대해 이듬해 말 이전에 임관했다.
22세의 나이로, 그리고 로얄 노포크스에서 중위가 되었으나 지금은 버마에서 1호 특공대 소속으로, VC를 얻기 위해 있었던 170번 언덕 전투에 참가했다.
1945년 1월 31일, 버마 캉가우 부근에서, 노울랜드 중위는 전방 소대대의 공격을 받고 있던 중, 약 300명의 적들이 24명의 부하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공격 중에 그는 탄약을 나누어주고 소총사격을 하고 적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사람들 사이를 이동했다. 그의 포워드 브렌 경 기관총 중 한 개의 승무원이 부상을 입었을 때, 그는 직접 그것을 조종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적은 불과 10야드(9.1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참호 수위 아래로 떨어져 있어서 참호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는 사상자들이 대피할 때까지 계속 발포했다. 출동했던 교체 총부대가 이동 중 부상을 입었고, 그는 제3팀이 도착할 때까지 총기를 들고 있었다.
이후 공격에서 그는 엉덩이에서 적에게 직접 발사했던 2인치(51 mm)의 박격포를 넘겨받았다. 그는 더 많은 탄약을 얻기 위해 참호로 돌아와 야외에서 박격포를 발사했다. 이것이 다 쓰이자 그는 소총을 발사했다. 그러자 적군은 매우 가까이 있다가 소총을 재장전할 겨를도 없이 '토미포'(하위 기관총)를 집어들어 사용했다. 그는 적을 더 많이 죽였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50% 이상의 소대 패배에도 불구하고 나머지는 버텼다. 그들이 안심할 때에, 그 사람들은 열두 시간 동안이나 땅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그 언덕에서 적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1]
그의 묘소는 버마 타우키얀 전쟁 묘지에 있다.[2]
참조
- ^ "No. 37027". The London Gazette (Supplement). 10 April 1945. p. 1939.
- ^ CWGC 항목
- 제2차 세계대전의 영국 VC (John Laffin, 1997년)
- 용기 있는 기념비 (David Harvey, 1999)
- 빅토리아 십자 훈장 (This England,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