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휴이트 마이어스
George Hewitt Myers조지 휴이트 마이어스(George Hewitt Myers, 1875년 9월 10일 ~ 1957년 12월 23일)는 미국의 산림가 겸 자선가였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1898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브리스톨 마이어스 제약회사의 상속자였다. 그는 1898년부터 1899년까지 하버드에서 영어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1902년 예일 포레스트 스쿨 제1교실에서 임업 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다. 그는 1909년경 코네티컷 주의 유니언에 땅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1917년 예일 임업학교는 마이어스 재산을 현장 지도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9년경 마이어스는 그의 임야를 예일대학교에 기부하기로 계획했다. 예일대학교 임업학교 여름 캠프 건물들은 1933년 이 사유지의 옛 모스 농장에 건설되었다. 숲의 소유권은 1934년에 예일대학교로 이전되었다. 예일 마이어스 포레스트(Yale Myers Forest)는 예일 임업학교가 다중이용 작업 숲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이어스는 1896년 예일대학의 그의 방을 위해 산 양탄자를 가지고 직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1912년 지어진 존 러셀 포프가 설계한 조지 휴이트 마이어스 하우스(231 S 스트리트)와 마사 S에 소장된 1925년 워싱턴 D.C.에 있는 섬유 박물관을 찾는데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터커 하우스(Tucker House, 2320 S Street, 2320 S Street)는 1908년에 건축되었다(우드, 돈앤데밍, 건축가). 2014년 이후, 박물관은 이전했고 현재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일부분이다.
마이어스는 1957년에 사망했고,[1] 곧 그의 세 자녀인 1958년 딸 페르시스 체이스, 1959년 딸 메리 휴이트, 1960년 딸 루이즈 체이스가 사망하였다. 그의 아내 루이즈 스토다드 체이스는 마이어스가 사망할 때부터 1958년까지 섬유 박물관의 이사회 임무를 맡았다.
마이어스는 1890년대에 처음 몇 개의 양탄자를 구입했을 때 – 19세기 말 터키와 백인 마을 양탄자 모임 – 그는 수천 개의 직물을 구입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의 재정이 허락되면서 그의 관심은 이전 시기의 사례와 함께 다른 종류의 비서양 직물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그는 사파비드 이란, 오스만 터키, 무굴 인도의 법원 워크샵에서 고전적인 실크 섬유와 카펫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서아시아, 이집트, 예멘의 티라즈라고 불리는 새겨진 직물을 포함한 초기 이슬람 섬유들, 이집트의 고풍스러운 직물들; 이집트의 푸스타트에서 발견된 인도의 저항성 섬유들; 그리고 고고학적 텍스트.페루에서 온 레스, 식민지와 나중에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조각들.[2]
1920년대 초 마이어스의 초점은 이러한 물체의 의미에 옮겨갔고, 그는 직물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는 1925년에 섬유 박물관을 설립했고, 1930년대 후반까지 마이어스의 섬유 수집의 폭과 깊이가 그것을 국제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었다.[2]
1957년 마이어스가 사망했을 때, 섬유 박물관의 소장품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3,100개의 섬유와 아메리카에서 온 1,500개의 섬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날 이 박물관의 소장품에는 전 세계 18,000개 이상의 직물이 포함되어 있다.[2]
참조
- ^ "George H. Myers", The New York Times, New York, New York, December 25, 1957
- ^ a b c "Ahead of His Time: The Collecting Vision of George Hewitt Myers". September 28, 2007 – February 17, 2008.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6 October 2011. Retrieved 27 Novembe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