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1세
Henry I of Castile헨리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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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틸리아 필사본의 왕 헨리 1세 (...) (1312년-1325년) | |
카스티야 왕 톨레도 | |
군림하다 | 1214년 10월 5일 – 1217년 6월 6일 |
전임자 | 알폰소 8세 |
후계자 | 베렝가리아 |
태어난 | 1204년 4월 14일 발라돌리드 |
죽은 | 1217년 6월 6일 팔렌시아 | (13세)
매장 | |
배우자 | (m.1215; 무효 1216) |
집 | 카스티안 왕가 |
아버지 | 알폰소 8세 |
어머니 | 엘리노르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카스티야의 헨리 1세(1204년[1] 4월 14일 – 1217년 6월 6일)는 카스티야의 왕이었다. 카스티엘의 알폰소 8세와 잉글랜드의 엘리노르, 카스티일의 여왕(영국의 헨리 2세와 아키타인의 엘리노르)의 아들이었다.[2] 그는 베렌굴라와 카스티야의 마팔다의 형제였다.[3]
1211년 형 페르디난드가 갑자기 죽자 헨리는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1214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헨리는 겨우 10살이었으므로 섭정은 레온의 알폰소 9세의 아내 [4]카스티야의 베렝가리아 누나가 맡았다.
1215년 헨리는 포르투갈의 산초 1세의 딸인 포르투갈의 마팔다와 결혼했다. 그가 매우 젊었기 때문에 결혼은 완성되지 않았고, 1216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해 연합을 이유로 해산되었다. 같은 해에 헨리는 레온의 상속녀인 둘째 사촌 산카와 약혼했다.[5]
헨리는 1217년 팔렌시아에서 13세의 나이로 죽었고 지붕에서 떨어져 나온 기와에 의해 죽었다. 그의 여동생 베렝가리아가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3세를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6] 그의 시신은 부르고스의 라스 뮐가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7]
메모들
- ^ 아날레스 톨레다노스
- ^ Previté-Orton, Charles William, The 단축 케임브리지 중세사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2), 828.
- ^ Martínez Díez, Gonzalo (2007). Alfonso VIII, rey de Castilla y Toledo (1158–1214). Gijón: Ediciones Trea, S.L. pp. 46–53. ISBN 978-84-9704-327-4.
- ^ 크로니카 알브리치 모나치 삼음 폰티움
- ^ 헨리의 가족
- ^ 크레이그 테일러, 백년전쟁 토론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87.
- ^ 엔리케 1세, 카스티야의 왕, 테레사 M. 반, 중세 이베리아: 백과사전, 에드. E. Gerli, (Routridge, 2003), 303.
참조
![]() | 위키미디어 커먼즈에는 카스티야의 헨리 1세와 관련된 미디어가 있다. |
- 찰스 윌리엄 프레비테 오튼,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1952년 케임브리지 중세사.
- 테일러, 크레이그, 100년 전쟁 토론,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