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월드론

Henry Waldron
헨리 월드론
Henry Waldron - Brady-Handy.jpg
미 하원 의원
미시간 제2지구 출신
재직중
1873년 3월 4일 – 1877년 3월 3일
선행자윌리엄 L. 스토우턴
성공자에드윈 윌리스
미 하원 의원
미시간 제1지구 출신
재직중
1871년 3월 4일 – 1873년 3월 3일
선행자페르난도 C. 보먼
성공자모세 W.
미 하원 의원
미시간 제2지구 출신
재직중
1855년 3월 4일 – 1861년 3월 3일
선행자데이비드 A. 노블
성공자페르난도 C. 보먼
미시간 하원 의원
재직중
1843
개인내역
태어난(1819-10-11)1819년 10월 11일
미국 뉴욕올버니
죽은1880년 9월 13일 (1880-09-13) (60세)
미국 미시간 힐스데일 카운티 힐스데일
휴게소오크 그로브 묘지
미시건 주 힐스데일
시민권미국
정당공화당
모교러터스 칼리지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
직업토목 기사
정치인

헨리 월드론(Henry Waldron, 1819년 10월 11일 ~ 1880년 9월 13일)은 미국의 정치인이자 미국 미시건 출신의 미국 대표였다.

초년기

월드론은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나 알바니 아카데미를 다녔으며, 1836년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의 러트거스 칼리지(Rutgers College)를 졸업했다. 1837년 미시간주로 이주하여 철도공사에 토목기사로 채용되었다. 1839년 월드론은 미시건주 힐스데일에 정착했다.

경력

월드론은 1843년 미시간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고, 1846년부터 1848년까지 재임하는 미시간 남부 철도의 이사였다. 디트로이트, 힐스데일, 사우스웨스턴 철도 건설 추진에 적극 나서 초대 사장을 지냈다. 그는 1848년에 Whig Party 티켓의 대통령 선거인이었습니다.

1854년 그는 현직 민주당원 데이비드 A를 물리쳤다. 미시간 제2의회 선거구에서 34대 의회까지 공화당원으로 선출되는 노블. 그는 제35대제36대 의회에 재선되었으며, 1855년 3월 4일부터 1861년 3월 3일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제34대 의회 재무부 지출 위원회의 의장이었다.[1] 그는 1860년에 재공모한 후보가 아니었다.

1870년, 미시간 제1의회 선거구를 대표하여 마흔두의회에 선출되었고, 그 후 1871년 3월 4일부터 1877년 3월 3일까지 재임하면서 미시간 제2의회 선거구를 대표하여 마흔셋사십사원을 대표하도록 재선되었다. 그는 마흔두 번째 의회의 광산광산 위원회의 의장이었다.[2] 그는 재추천 후보직을 거부했다.

1876년 월드론은 힐즈데일 제1국민은행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죽음과 유산

월드론은 1880년 9월 13일(만 60세, 338일) 미시간주 힐스데일 카운티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미시간주 힐스데일의 오크 그로브 묘지에 매장되어 있다.

미시건 월드론 마을은 그가 마을에 기여한 공로로 그의 명예에 이름이 붙여졌다. [1].

참조

  1. ^ Legislative Manual and Official Directory of the State of Michigan. Secretary of State, 1885 - Michigan. 1885. p. 326.
  2. ^ HISTORY OF MONROE COUNTY MICHIGAN. Monroe County, Michigan. 1890. p. 255. Henry Waldron.

외부 링크


미국 하원
선행자 미시간 제2 연방 하원의원
1855–1861
성공자
선행자 미시간 제1 연방 하원의원
1871–1873
성공자
선행자 미시간 제2 연방 하원의원
1873–1877
성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