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허드
Ibn Hud이븐 허드 محمد بن يوسف بن هود | |||||
---|---|---|---|---|---|
![]() | |||||
군림하다 | 1228-1238 | ||||
죽은 | 1238 알메리아 | ||||
매장 | |||||
| |||||
씨족 | 바누 허드(명칭)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교 |
흔히 이븐 허드로 알려진 아부 'Abd Allah Muḥamad ibn Uusuf ibn Hudn Al-Judhamham (아랍어: محمددد سفف died, 1238년 사망)은 1228년부터 1237년까지 알안달루스의 많은 부분을 지배한 타이파 에미르였다. 그는 1118년까지 사라고사의 타이파를 통치한 후디드 왕조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1]
1212년 라스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기독교 연합군에 의해 결정적으로 패배한 후 알모하드에 대한 알모하드 지배권은 말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븐 허드는 1228년 5월 반란을 일으켜 재빨리 대중의 지지를 얻어 무르시아와 발렌시아의 총독들을 물리쳤다. 한편 알모하드 칼리프 이드리스 알 마문은 마라케시에서 조카이자 라이벌인 야히아를 무찌르기 위해 남은 병사들과 함께 세비야를 떠나게 되어 이븐 허드가 비교적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은 알안달루스의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게 되었고,[2] 이븐 허드는 자이얀 이븐 마르다니쉬의 반대에 부딪힌 발렌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알안달루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븐 허드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있는 아바스 칼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아미르 알무민(Amir al-Mu'minin)과 알 무타와킬(Al-Mutawakil)의 칭호를 받았다.[2] 그러나 1231년 그의 군대는 여레스 전투에서 카스티야 왕국과 메리다 근방의 레온 왕국에 의해 결정적으로 패배하였다. 이 패배로 그는 지지를 잃었고 '빈민자'[3]라는 별명을 얻었다.
1232년 그라나다의 무함마드 1세는 자엔 지역의 술탄으로 몸을 일으켰고 곧 이븐 허드의 가장 강력한 적수가 되어 카스티야와 휴전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븐 허드는 처음에는 1234년 이븐 나스르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1236년 카스티야의 페르디난드 3세에게 점령당하는 코르도바를 보호할 수 없었고, 페르디난드 3세, 이븐 나스르와 또 다른 휴전 협정을 맺어야 했다. 1237년 그라나다가 Ibn Nasr를 통치자로 받아들였다. 이븐 허드는 1238년 1월 알메리아 성문에서 암살되어 무르시아에 묻혔다.
참조
- ^ E. Gerli, Michael (2003). Medieval Iberia: An Encyclopedia. New York: Routledge. p. 415. ISBN 9780415939188.
- ^ a b Kennedy, Hugh (1996). Muslim Spain and Portugal: A Political History of al-Andalus. New York: Routledge. p. 268. ISBN 9781138135314.
- ^ Ballandalus (2016-02-25). "The Reign of Ibn Hud (r. 1228-1238) according to Abu al-Walid ibn al-Hajj (d. 1318)". Ballandalus. Retrieved 2020-07-19.
참고 문헌 목록
- 메리, 요제프 W. 메리, 바차라크, 예레 L.: 중세 이슬람 문명: 백과사전. 2006년 런던 루트리지 ISBN 0-415-96690-6
- 오 캘러헌, 조셉 F. 중세 스페인에서 정찰과 십자군원정을 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출판부, 2004, ISBN 0-8122-18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