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로스트

Joe Loss
조 로스트
출생명조슈아 알렉산더 로스트
태어난(1909-06-22)1909년 6월 22일
영국 런던 스피탈필드
죽은1990년 6월 6일 (1990-06-06) (80세)
런던, 그레이트런던, 영국
장르스윙 음악, 빅 밴드
직업
  • 반창고
  • 음악가
  • 아랑게르
  • 작곡가
계기바이올린
년 활동1919–1990
레이블컬럼비아 레코드

조슈아 알렉산더 "Joe" Loss LVO OBE (1909년 6월 22일 ~ 1990년 6월 6일)는 영국의 댄스 밴드 리더 겸 음악가로, 자신의 악단을 창단하였다.

인생

손실은 런던의 스피탈필드에서 4명의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이스라엘과 에이다 로스는 러시아의 유대인이자 사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무용품을 만드는 사업을 하는 내각책임자였다. 로스는 유대인 자유학교, 트리니티 음악대학, 런던 음악대학(현재 웨스트런던 대학의 일부)을 다녔다. 그는 7살 때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했고 후에 블랙풀 타워 볼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오스카 라빈과도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로스는 1930년대 초 아스토리아 볼룸에서 활동하다가 곧 킷캣 클럽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밴드를 이끌기 시작했다. 1934년 홀본 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같은 해 아스토리아 볼룸으로 다시 옮겨 12곡 밴드를 이끌었다. 1935년에 베라 린은 그녀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조 로스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출연했다.[1] 그 밴드는 방송, 녹음, 연례 투어뿐만 아니라 레지던트 활동으로 그 후 몇 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2]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로스는 해머스미스팔레스의 상주 밴드 리더였으며, 해머스미스 병원의 연습생 간호사에게 그가 공공장소에 있을 때처럼 친절하고 신사적인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의 밴드의 대표곡인 "In the Mood"는 종종 하룻밤에 세 번 이상 요청되기도 했다.[3]

그는 1963년 5월 런던의 해머스미스 팔레에서 에이먼 앤드류스에게 놀라고,[citation needed] 그리고 1980년 10월 조의 쇼 비즈니스 50년을 축하하기 위해 스타들이 즐비한 파티에서 앤드류스가 런던의 포트만 호텔에서 그를 놀래키면서 두 차례에 걸쳐 <이것이 너의 삶이다>[citation needed]의 주제였다. 영국 로열 패밀리의 애호가인 로스의 오케스트라는 로열 버라이어티 공연뿐만 아니라 왕실이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도 공연을 펼쳤는데, 이 공연으로 로스는 OBE뿐만 아니라 여왕의 개인적인 선물인 LVO까지 받게 되었다.[4]

로스트의 제니퍼는 영국의 코치 겸 빌더인 로버트 얀켈의 아내다.

로스는 1990년 6월 6일 사망했으며 허트포드샤이어의 부셰이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5]

조 로스트 오케스트라

조 로스트 오케스트라는 1940년대 빅밴드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연주 중 하나로 'In the Mood'를 비롯한 히트곡들이 있었다. 1961년에 그들은 스트링-A-롱스의 히트곡 "휠즈"의 버전인 "휠즈—차차"로 히트를 쳤다. 다른 히트곡으로는 1958년 데이비드 로즈의 "The Stripper", "Sucu Sucu", "Must Be Madison", "The Teste from Maigret," 그리고 1964년 "Modds의 행진곡 (The Finnjenka Dance)"이 있다.

1951년 4월, 조 로스트의 보컬리스트 엘리자베스 베티가 넘어지면서 턱이 부러졌다. 조는 경질이 절실히 필요했고 아일랜드 방문 중에 라디오로 로즈 브레넌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며칠 안에 그는 그녀를 찾았고, 일주일 전에 그녀는 맨체스터에서 밴드와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1960년대 중반에 쇼비즈니스를 포기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로스트와 함께 지냈다. 그녀는 조 로스와 함께 녹음한 많은 곡을 마렐라라는 이름으로 썼고, 존 해리스와 함께 공동 작곡했다. 1955년부터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그녀의 공동 음악가는 로스 맥매너스(엘비스 코스텔로의 아버지)[6]와 래리 그레튼이었다.

조 로스트 오케스트라는 로스트가 사망하기 전까지 19년간 이 밴드와 함께 보컬로 활동했던 토드 밀러의 음악 지휘를 이어간다. 1989년에 Joe Loss는 너무 아파서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고 1990년에 그는 그의 가장 오래 복무한 밴드 멤버, 트롬보니스트, 그리고 선수 매니저인 Sam Watmough와 Todd에게 리더쉽을 맡겼다. 이 오케스트라는 1930년부터 지속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2015년에는 창단 85주년을 기념하였다.

전문 댄스 밴드 라디오 방송국이 그의 레코드를 계속 재생하고 있다. Joe Loss는 또한 Howard Caine이 제공하는 Manx 라디오 프로그램 Sweet & Swing에 정기적으로 출연한다.

대중문화에서

Joe Loss는 "O What a Wangled Web"[citation needed]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4의 6화에서 "In the Mood"와 함께 언급된다.

참조

  1. ^ Seidenberg, Steven; Sellar, Maurice; Jones, Lou (1995). You Must Remember This. Great Britain: Boxtree Ltd. p. 132. ISBN 0-7522-1065-3.
  2. ^ McCarthy, Albert J. (1971). The dance band era: the dancing decades from ragtime to swing: 1910-1950, Part 3. Chilton Book Co. p. 147. ISBN 9780801956812. Retrieved 24 November 2011.
  3. ^ Franklin, Rosalind; O'Neill, Cynthia (2004). When the nightingale sang: a nurse's life in the 1950s and 1960s. Meadow Books. pp. 142–3. ISBN 978-0-9515655-3-7.
  4. ^ "Joe Loss Quartet at Barbican".
  5. ^ Erik Skytte (9 August 2005). "Joe Loss". Find A Grave. Retrieved 22 November 2011.[비확산 소스 필요]
  6. ^ 돈 윅스: 발라드 해. 1996년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