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프 카지미르 드라스코비치

Josip Kazimir Drašković
요시프 카지미르 드라스코비치, 합스부르크 군주국 군대의 펠드조크마이스터(3성 장군, 포병 지휘관)

요시프 카지미르 드라스코비치 (1716–1765)는 7년 전쟁 (1756–1763년)[1]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크로아티아의 장군이다.그는 드라스코비치 가문백작이었다.

1736년부터 1739년까지 드라슈코비치는 세르비아[1]왈라키아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참가했다.1745년, 그는 포가치의 32라인 보병 연대의 중령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1748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싸웠다.그는 1749년에 대령으로 진급했고 1년 후에 [1]대장이 되었다.7년 전쟁에서 그는 1756년 10월 1일 로보시츠 전투에서 프러시아군을 저지하는 개척자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고 그들에게 큰 [1]손실을 입혔다.

그는 1757년 [1]5월 6일 프라하 전투에 참가했다.그 해 말인 1757년 12월 5일 드라스코비치 장군은 로이텐 전투에 참가했다.1760년 7월 25일 글라츠 요새를 점령하는 동안 라우돈 장군의 오스트리아군은 푸케 장군이 이끄는 프러시아군을 브레슬라우로 격퇴하고 란츠슈트를 점령하고 [1]요새를 포위했다.그 해 11월 3일 드라스코비치는 토르가우 전투에서 싸웠고, 1761년 [1]모라비아를 지키는 임무로 상부 실레지아에서 자신의 군단을 이끌었다.1761년 드라스코비치는 슈바이드니츠를 사로잡는 데 두각을 나타냈다.그는 1763년 2월 26일 포병 장성으로 진급하였고,[1] 전쟁 기간 내내 공로를 인정받아 마리아 테레사 훈장 십자장을 받았다.

그는 또한 그의 빛나는 군 경력을 해치고 사회적, 정치적,[2] 군사적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든 하류 귀족 여성 (수자나 말라틴스키)과의 사랑과 결혼으로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1754년 트라코시찬 성 구내에 예배당을 지었는데, 이 예배당은 여전히 성십자에 봉헌되어 있다.트라코스칸 성은 드라스코비치 가문의 조상으로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 때 성 미사는 1년에 네 번 기념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일요일 미사와는 별도로 예배당에서는 전통적인 성 결혼식이 열린다.

드라스코비치는 1765년 [1]11월 9일 이바넥 근처의 클레노브니크 성에서 사망했다.

레퍼런스

  1. ^ a b c d e f g h i "Josip Kazimir Drašković (1716.-1765.)". hrvatski-vojnik.hr.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 October 2011.
  2. ^ "Umro hrvatski vojskovođa Josip Kazimir Drašković 1765. godine". Vojnapovijest.hr. 17 Nov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