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코 마드루초

Ludovico Madruzzo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의 루도비코 마드루초 초상화.시카고 미술학원.

루도비코 마드루초 (1532–1600)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 추기경이자 정치가로서 트렌토 주교의 황태자 겸 비숍 (교회의 의무와 더불어 세속적인 통치를 담당함)이었다.

전기

트렌토에서 태어났으며, 랑베르크의 니콜로 마드루초와 헬레네 남작의 아들이며, 트렌토의 비숍크리스토포로 마드루조의 조카였다. 그는 르우벤파리의 대학에서 공부했다.

1550년 밀라노 주지사로 지명된 그의 삼촌 크리스토포로는 그에게 트렌토 주교의 관리를 맡겼다. 트렌트 공의회는 1545년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되어왔다. 그것은 1563년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수많은 중요한 외교·정치적 경험(찰스 5세의 장례식에서 애도 담론 포함)을 거쳐 1561년 교황 비오 4세에 의해 산칼리스토적정성 있는 교회를 부여받아 추기경이 되었다.[1] 6년 후 그는 트렌토 교구의 십일장으로 임명되었다.

베르나르도 클레시오와 크리스토포로 마드루초 사이의 합의에 따라 주교는 합스부르크 지배의 타롤 군으로부터 상당한 독립을 얻었고, 이로 인해 루도비코와 오스트리아의 대두케(그리고 미래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후작은 1567년 트렌틴 영토를 침공했고, 루도비코는 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기다리며 로마로 이주했다. 트렌토의 권위는 1587년 스피어 의회에서 완전히 재창립되었다.

루도비코 마드루초는 세인트의 친구였다. 찰스 보로미오세인트. 필립 네리.

그는 1600년에 로마에서 죽었다. 조카 카를로 가우덴치오가 뒤를 이었다.

참조

외부 링크

가톨릭 교회 직함
선행자 트렌토 주교
1567–1600
성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