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의 마틸다

Matilda of Habsburg
합스부르크의 마틸다
Matilda of Austria Duchess of Bavaria.jpg
바이에른 공작 부인
테뉴어1273–1294
태어난1253
라인펠덴
죽은(1304-12-23)23년 12월 23일
바이에른 뮌헨
배우자
(m.1273; 1294년 사망)
이슈
합스부르크
아버지루돌프 1세
어머니게르트루드

합스부르크 또는 멜빌데마틸다(Rhainfelden에서[1] 1253년 – 바이에른 뮌헨에서 1304년 12월 23일)는 결혼으로 바이에른 공작부인이었다. 그녀는 1294년에서 1301년 사이에 그녀의 작은 아들 루이 4세의 소수자 시절에 어퍼 바이에른의 섭정을 받았다.

결혼

마틸다는 독일의 루돌프 1세호엔베르크의 게르트루드의 장녀였다. 그녀는 1273년 10월 24일 아헨에서 셋째 부인 루이 2세가 되었다. 마틸다와 루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섭정

1294년 남편이 사망하자 마틸다는 어린 아들 루이스의 섭정 역할을 했다. 마틸다는 섭정이 된 작은 아들 루이, 그리고 큰아들 루돌프(성인)와 함께 다른 한 부분을 맡기로 했다. 마틸다는 어퍼 바바리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루돌프는 잉골슈타트, 랑겐펠트, 리에트베르크와 같은 도시들을 차지했다. 몇 년 안에 그녀의 아들이 성년이 되어 혼자서 왕국을 통치했다.

마틸다는 어린 아들 루이비엔나에서 부분적으로 교육시켰고 마틸다와 그녀의 동생 알베르 1세의 지원으로 1301년 상바야리아에서 동생 루돌프 1세의 공동 거주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307년부터 하바리아에 있는 소유권을 놓고 합스부르크족과 다투었다. 그들의 땅 분할에 대한 새로운 분쟁으로 인해 그의 형 루돌프를 상대로 한 내전은 1313년 뮌헨에서 평화가 이루어지면서 종결되었다.

마틸다와 루돌프는 계속 대립하여 1302년 마틸다가 루돌프에게 체포되어 뮌헨으로 끌려왔고, 그곳에서 다시는 정부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협정을 맺었으나, 바바리아 국경 밖에 나가자마자 마틸다는 그 협정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동생 알베르트, 루이 1세의 지지를 얻었다.바리안 [2]

마틸다의 아들 루이스는 합스부르크의 사촌 프레데릭 페어를 물리쳤다. 원래 그는 함께 자라온 프레데릭의 친구였다. 그러나 로어 바이에른의 젊은 두키스(헨리 14세, 오토 4세, 헨리 XV)에 대한 투서가 프레데릭에게 맡겨지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1313년 11월 9일, 프레데릭은 감멜스도르프 전투에서 루이스에게 얻어맞아 튜텔레이지를 포기해야 했다.[3][better source needed]

마틸다는 1304년 12월 23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사망했다.

참조

  1. ^ Cawley, Charles (13 March 2008), Austria: Mechtild died 1304, Medieval Lands database, Foundation for Medieval Genealogy,[self-published source][better source needed]
  2. ^ "Matilda of Habsburg's entry at Women in power 1250–1300". guide2womenleaders.com.
  3. ^ Marek, Miroslav. "A listing of descendants of Rudolph I of Germany". Genealogy.EU.[자체 분석 소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