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킬케니
Mike Kilkenny마이크 킬케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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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전자 | |
출생:( 캐나다 온타리오 주 브래드퍼드 | 1945년 4월 11일|
사망 : 2018년 6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 | (73세)|
배팅: 오른쪽 던짐: 왼쪽 | |
MLB 데뷔전 | |
1969년 4월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위해 | |
마지막 MLB 출연 | |
1973년 5월 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 | |
MLB 통계 | |
승패 기록 | 23–18 |
평균자책점 | 4.43 |
삼진 | 301 |
팀 | |
마이클 데이비드 킬케니(Michael David Kilkenny, 1945년 4월 11일 ~ 2018년 6월 28일)[1]는 캐나다 프로 야구 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다.온타리오 주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난 6피트 3인치(1.91m)의 왼손잡이 175파운드(79kg)는 1964시즌 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FA)로 계약됐다.타이거즈(1969–197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72), 샌디에이고 파드레스(197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72–1973)에서 뛰었다.킬케니는 1971년 9월 13일 프랭크 로빈슨의 499호 홈런을 내준 것과 같은 시즌에 네 팀에서 [2]뛴 몇 안 되는 MLB 역사상 선수 중 한 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139번의 출전 중 대다수는 구원투수로써 54경기를 시작했다.그의 선수 생활 동안 킬케니는 불과 410이닝 동안 BB/9로 224개의 볼넷을 내줬다.IP는 4.92로 당시 아메리칸리그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삼진 301개로 K/9IP는 6.61로 아메리칸리그 평균보다 높았다.통산 23승 18패 4세이브 32경기에 평균자책점 4.43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1969년 8월 12일 킬케니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3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이에 앞서 킬케니의 아내 캐롤은 이날 부부의 첫째 아이 로리 에린 킬케니를 낳았다.[3]
1969년 킬케니는 타이거즈 올해의 신인왕으로 선정되었다.[4]
킬케니는 1972년 5월 9일 타이거즈에서 레지 샌더스를 위해 애슬레틱스로 현금과 거래되었다.[5]
프로 선수 생활이 끝난 후, 킬케니는 캐나다 인터카운티 베이스볼 리그의 런던 메이저에서 뛰었고, 1975년에 그는 메이저즈가 인터카운티 타이틀을 따내는 것을 도왔다.정규시즌 MVP로 뽑혀 9-0의 기록과 129개의 삼진으로 존 벨 메모리얼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참조
- ^ "Michael Kilkenny - Obituaries - London, ON - Your Life Moments". yourlifemoments.ca. London Free Press. Retrieved 30 June 2018.
- ^ "Frank Robinson joins the 500 home run club". Baseball Hall of Fame. Retrieved December 2, 2020.
- ^ Watson Spoelstra (October 11, 1969). "Kilkenny Is Tough Pitcher in a Paradise for Swingers". The Sporting News. p. 17.
- ^ 2015 Detroit Tigers Media Guide. pg. 371.
-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74년 프레스-TV-라디오 가이드(47페이지까지 스크롤)2020년 6월 6일 회수
- 인터카운티 메이저 야구 리그의 1998년 기록 북은 허브 모렐 편집장과 도미니코 프로덕션에 의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