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 박물관
Museum of Antioquia이 글은 검증을 위해 인용구가 추가로 필요하다. – · · · (2013년 8월 (이 템플릿 하는 방법과 |
안티오키아 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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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립된 | 1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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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콜롬비아 메데인 52-43번 카레라 |
감독 |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 |
웹사이트 | www |
안티오키아 박물관(Museo de Antioquia)은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메데인 출신 페르난도 보테로와 페드로 넬 고메스의 작품들이 대거 소장돼 있다.
그것은 안티오키아 부에 세워진 첫 번째 박물관이었고 콜롬비아에 세워진 두 번째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베리오 공원 지하철역 근처 보테로 광장의 메데인 중심에 위치해 있다.
역사
1881년 마누엘 우리베 앙겔, 안토니오 호세 레스트레포, 마르틴 고메스 등의 단체가 안티오키아 소버린국 도서관에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제아를 기리기 위해 제아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첫 번째 컬렉션에는 창시자들의 책과 역사 예술 유물이 들어 있었다. 우리베 엔젤은 자신이 초대 박물관장이라는 조건으로 소장품을 기증했다. 박물관의 일부로서 도서관도 있었다.
이 부서의 역사는 콜롬비아 독립 때부터 천일전쟁에 이르기까지 문서, 무기, 깃발 등 여러 품목으로 대표되었다. 콜럼비아 이전 작품, 바위, 광물, 동전 등도 소장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역사, 미술, 과학과 관련된 수천 권의 책과 국내 최초의 신문이 편집되어 있었다. 1886년 헌법이 개정되고 주권국가로서의 안티오키아의 지위가 오늘날 부서로서의 지위로 바뀌었다. 그 결과 박물관과 같은 단체들은 중앙정부와 주지사들에 의존해야 했다. 그 박물관은 행정부에 따라 기념되었다.
박물관은 안티오키아 총독 라파엘 우리베의 궁전이 되기 위해 문을 닫았다. 소장품의 일부는 수장고에 넣었고, 나머지 부분은 안티오키오 대학과 안티오키아의 역사학원으로 보내졌다.
1946년 메데인 개선 아너 소사이어티의 테레사 산타마리아 데 곤잘레스와 호아킨 자라밀로 시에라에는 이 도시에 대표 박물관이 없는 것을 우려했다. 그들은 박물관을 재개관할 것을 제안했고 정부의 통제나 폐쇄로부터 박물관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박물관을 민간 비영리 단체로 설립했다.
1953년 이 박물관은 법적 지위를 얻었고, 마침내 1955년 카사 데 라 모네다(코인 하우스)에 문을 열었는데, 그 자체가 옛 아구아르디엔테 공장이었다.(지금의 장소는 베라크루즈 교회 옆, 알라 실험장이다.) 위치는 국립은행에 의해 촉진되었고, 메데인 시는 박물관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건물을 주었다.
1977년 이 박물관은 이름을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제아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관광객들은 제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지인들은 세라(왁스)박물관과 혼동해 혼동하지 않게 명칭을 바꿨다.
1978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그의 작품을 박물관에 처음으로 기증했다. 그리고 그 명칭을 안티오키아 박물관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 변화는 안티오키아 총독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1997년에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박물관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연간 방문객 수는 적었다.
뮤소로360번길
안티오키아 박물관은 2016년부터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가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박물관의 윤곽을 "도시의 현실을 숨기는 대신 인식한다"[1]는 만남과 반성의 공간으로 모색하는 뮤소 360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뮤소 360은 '배제, 차별의 역사적 부채를 확정한다'는 것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1] 에스코바르에 따르면, 박물관의 임무는 "역사 및 그 이야기를 검토하고, 포괄적이고 도시와 그 주인공들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1]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도적 접근방식은 한 사회의 현재를 이끌어온 역사적 경로와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기관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이에 따라 상설 화랑의 큐레이터 전략은 관람객들을 초청해 배제 사회구축 강화에 있어 미술사와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뮤지엄의 새로운 접근방식의 또 다른 예는 2017년 큐레이터 캐롤리나 차콘과 메데인 시내에 본부를 둔 성노동자 그룹이 카바레/퍼포먼스 나디 사베 콰이엔 콩요(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를 개발한 화가 나디아 그라나도스의 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다.[1] 그때부터 공연자들은 예술 공연, 뜨개질 서클, 기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성노동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조명하기 위한 단체인 '라스 게레라스 델 센트로(다운타운 워리어스)'에 자금을 지원하였다.[2][2]
Nadie Sabe quuén soy yo는 라스 게레라스 델 센트로와 안티오키아 박물관 사이의 일련의 큐레이터 및 교육 협력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협력 프로젝트는 박물관 내부와 외부의 교류와 사회적 대화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중요한 뮤즈로지 관행을 파괴하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들은 박물관에서 나오고, 박물관 벽을 넘어 연결을 형성하며, 박물관의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2]
참고 항목
참조
- ^ a b c Arcadia, Revista. "Museo 360, ¿qué pasó aquí?". Museo 360, ¿qué pasó aquí? (in Spanish). Retrieved 2020-05-07.
- ^ a b "Las guerreras del centro, resiliencia de las trabajadoras sexuales en Medellín". Universidad de Bogotá Jorge Tadeo Lozano (in Spanish). Retrieved 202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