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투크
Nutuk누투크(현대 터키어: Söylev; The Speech)는 1927년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공화인민당 제2차 의회에서 행한 연설이다. 이 연설은 1919년 5월 19일 터키 독립전쟁이 시작된 것과 1923년 터키 공화국의 건국 사이의 사건들을 다루었다. 케말에게 읽히는 데 36시간(6일 간)이 걸렸고, 케말리스트 역사학의 토대가 됐다.[1][2][3][4] 누투크는 일련의 새로운 신화와 개념을 공화국,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세속주의 등 공공 담론의 자국어로 도입함으로써 터키 민족주의의 전환점을 맞았다. 케말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터키인들의 '가장 소중한 보물'과 그들의 새로운 국가의 '건국' 그리고 그들의 미래 '존재'의 전제조건으로 지정했다.[5]
스피치
무스타파 케말은 1919년 터키 독립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삼순에 상륙했을 때 오스만 제국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연설을 시작한다.
"신사 여러분,
나는 1919년 5월 19일에 삼순에 도착했다. 당시 입장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하나였던 권력 집단은 대전에서 패배했다. 오스만군은 사방으로 항복했고 가혹한 조건을 가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몇 년간의 대전 동안, 사람들은 지쳐서 가난에 내몰렸다. 나라를 전쟁터로 보낸 사람들은 이제 탈출했고, 유일한 불안은 그들 자신의 복지였다. 술탄과 칼리프의 타이틀을 가진 바데틴은 퇴보했다. 오직 그가 던진 [sic]을 구할 방법만을 꿈꾸었다. 다마트 페리트 파자(Damat Ferit Paşa)의 거장 휘하의 정부는 명예도 없고 겁도 많고 무능도 없으며 술탄의 지휘 아래 그와 같은 배를 타고 그들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소."
"엔티 열강들은 휴전 조건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핑계로 그들의 전사와 군대는 이즈탄불에 남아 있었다. 아다나의 빌라예트는 프랑스인이 차지했고 우르파, 마라, 안테프는 영국인이 차지하였다. 안탈리아와 코냐에는 이탈리아인이, 메르지폰과 삼순에는 영국군이 있었다. 외국 장교들과 관리들 그리고 그들의 특별 요원들은 어디에서나 매우 활동적이었다. 드디어 5월 15일, 즉 다음 사건의 회계가 시작되기 나흘 전에 엔텐테 열국의 동의를 얻어 그리스군이 이즈미르에 상륙한 것이다."[6]
그는 오스만 제국이 1919년까지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성과 군대는 수세기 동안의 전통과 독단으로 인해 배반죄를 저지른 술탄에게 충성을 다한다.
"적국들은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오스만 주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스만 주를 분할할 작정이었다. 술탄과 칼리프의 칭호를 들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만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정부는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안내도 없이 떠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앞날을 기대하며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그 참혹한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그런 도구로 눈을 돌리며 구원의 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 군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다. 장교들은 대전이 끝난 후 기진맥진하여 눈앞의 처참한 상황이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구원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군대와 백성들은 술탄칼리프의 배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영혼에 의해 이러한 제도에 애착을 가졌는데, 이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통에 바탕을 둔 애정이다. 백성들은 술탄칼리프의 지도 없이는 구원을 생각할 수도 없었소."[7]
그는 터키가 독립을 쟁취해야만 다른 강대국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말할 차례를 택했고 큰소리로 이렇게 선언했다. 신사, 권력, 주권은 학자적 논쟁이나 장황한 논쟁에 의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권은 무력으로 가져간다. 오스만인들은 터키인들의 주권을 무력으로 빼앗았다. 이 맹수들은 600년을 다스릴 수 있었다. 오늘날 터키 국가는 그 주권을 스스로 되찾았다. 이것은 기발한 사실이다. 이 문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과정에서 일부 헤드가 굴러갈 것이다."[8]
오스만 국가의 지속적 존속, 특히 미국이나 영국 보호국에 대한 오스만 국민 사이에 지배적인 어떤 사상을 비판하면서, 그는 그러한 사상에 대한 거부감을 설명하고 터키 국가 설립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내세웠다.
"자, 이제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구원을 위해 어떤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겠느냐고 묻겠소? 이미 설명했듯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가 제시되었다.
1. 영국으로부터 보호를 요구한다.
2. 미국을 의무적인 강대국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두 제안의 창안자들은 오스만 제국을 완전한 무결성으로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오스만 제국이 여러 국가들 사이에 분할되는 것을 허용하기보다는 하나의 힘의 보호 아래 전체를 두는 것을 선호했다.
3. 세 번째 제안은 각 구가 각자의 방식과 능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하여 나라를 인도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를 들어, 분리론에 반대하여, 특정 지역은 제국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제국의 분할을 기정사실화하여 그들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설명은 이 세 종류의 명제의 주도적 동기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제안 중 어떤 것도 현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제안들이 근거가 없는 주장과 고려사항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기초는 그 자체로 당시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의 존재는 멸종의 위협을 받았다. 모든 오스만 구역은 사실상 분할되었다. 단지 소수의 터키인들에게만 보호를 할 수 있는 조국만이 남아 있었고, 이제는 이것을 나누자는 제안도 나왔다. 오스만 제국, 독립, 파디사칼리프 정부 같은 표현들은 모두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었다. 누구를 구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을까? 그리고 누구의 도움으로? 그리고 어떻게? 따라서 진지하고 정확한 결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결의안만으로도 가능했는데, 즉 터키의 신국가를 만들려면 그 주권과 독립성이 거리낌없이 인정될 것이다."[9]
분석
터키 역사학자 하칸 우순에 따르면 누투크는 케말(Kemal)이 포용해온 국가의 핵심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그 연설은 국민운동과 공화국 모두에게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주권 추구를 통해 독립과 단결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진 국민운동은 합법적인 재단을 통해 공격적인 입지가 아닌 방어적인 입장으로 그렇게 해 왔다.[10]
터키 사회학자인 파트마 뮌헤 괴체크에 따르면,[11][12][13] 이 연설은 "터키 국가 공식 서사로 채택되어 국가에 의해 신성시 되었다"고 한다. 괴섹은 이 법이 케말의 모욕적인 발언을 범죄로 규정하기 때문에 터키 역사학자들이 이 연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문자가 1919년부터 터키의 탄생을 시작하며 1915년 아르메니아인들이 국가폭력을 통해 공화당의 선사시대 영역으로 사망하는 과정에서 제거되는 것이 분명하다"[14]고 말했다.
역사학자 마크 데이비드 베어는 이렇게 썼다.
연설의 주요 주제들, 그리고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에 대한 공식 담론들은 침묵, 대량학살에 대한 부정, 과거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기억상실증(터키인들을 진짜 피해자로 제시하지 않는 한), 가해자들과 동일시하고, 위대한 예언적이고 완벽한 지도자(아타튀르크), 그리고 인종 정화 촉진(Ataturk) 등이다.f 소수민족과의 사생결단 다윈의 투쟁 앞에 있는 [15]땅
영국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은 "1927년 그가 한 연설이 국가의 공식 신조가 된 것은 흐루쇼프나 카스트로의 연설 내용을 왜소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며 36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6일 동안 전달되었으며, 결국 600페이지 분량의 토미를 작곡했다. 즉 독재 정권 연보에 수록된 기록이다."[16]
참조
- ^ Yelbasi, Caner (2019). The Circassians of Turkey: War, Violence and Nationalism from the Ottomans to Atatürk. Bloomsbury Publishing. p. 23. ISBN 978-1-83860-017-4.
- ^ Göknar, Erdağ (2013). "Turkish-Islamic Feminism Confronts National Patriarchy: Halide Edib's Divided Self". Journal of Middle East Women's Studies. 9 (2): 32–57. doi:10.2979/jmiddeastwomstud.9.2.32. S2CID 162122141.
- ^ Zürcher, Erik Jan (1986). "Young Turk memoirs as a historical source: Kazim Karabekir's Istiklal Harbimiz". Middle Eastern Studies. 22 (4): 562–570. doi:10.1080/00263208608700681.
- ^ Dogan, Gazi (2016). The establishment of Kemalist autocracy and its reform policies in Turkey (PhD thesis). abstract.
- ^ Morin, Aysel; Lee, Robert. Constitutive Discourse of Turkish Nationalism: Atatürk's Nutuk and the Rhetorical Construction of the "Turkish People". p. 486.
- ^ Alaranta, Toni (2008). "Mustafa Kemal Atatürk's Six-Day Speech of 1927: Defining the Official Historical View of the Foundation of the Turkish Republic" (PDF). 9. University of Turku, Finland: 117.
{{cite journal}}
: Cite 저널은 필요로 한다.journal=
(도움말) - ^ 알라란타 2008, 페이지 118.
- ^ 알라란타 2008, 페이지 126.
- ^ "Mustafa Kemal, Speech to the Congress of the People's Republican Party" (PDF). University of Delaware.
- ^ Uzun, Hakan. Atatürk'ün Nutuk'unun İçerik Analizi. Hacettepe University. pp. 142–149. (PhD 논문)(터키어)
- ^ Nahmiyaz, Medi (2018). "Turkey: Greeks and Armenians in History Textbooks (1930–2010)". Multiple Alterities: Views of Others in Textbooks of the Middle East.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pp. 333–353. doi:10.1007/978-3-319-62244-6_15. ISBN 978-3-319-62244-6.
- ^ Mazlish, Bruce (2009). "Global Humanity". The Idea of Humanity in a Global Era. Palgrave Macmillan US. pp. 17–29. doi:10.1057/9780230617766_2. ISBN 978-0-230-61776-6.
- ^ Galip, Özlem Belçim (2020). New Social Movements and the Armenian Question in Turkey: Civil Society vs. the State. Springer Nature. p. 37. ISBN 978-3-030-59400-8.
- ^ Göçek, Fatma Müge (2011). "Reading Genocide: Turkish Historiography on 1915". In Suny, Ronald Grigor; Göçek, Fatma Müge; Naimark, Norman M. (eds.). A Question of Genocide: Armenians and Turks at the End of the Ottoman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pp. 42–52. ISBN 978-0-19-979276-4.
- ^ Baer, Marc D. (2020). Sultanic Saviors and Tolerant Turks: Writing Ottoman Jewish History, Denying the Armenian Genocide. Indiana University Press. p. 82. ISBN 978-0-253-04542-3.
- ^ Anderson, Perry (2008-09-11). "Kemalism". London Review of Books. Vol. 30, no. 17. ISSN 0260-9592. Retrieved 2021-12-09.
추가 읽기
- Ulgen, Fatma (2010). "Reading Mustafa Kemal Atatürk on the Armenian genocide of 1915". Patterns of Prejudice. 44 (4): 369–391. doi:10.1080/0031322X.2010.510719. PMID 20857578. S2CID 25565470.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