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 노이즈

Saber noise

세이버 소음 또는 세이버 덜거덕거림(영국 영어,[1] 스페인어: ruido de sables)은 군사적 공격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군사적 행동의 가능성이 함축돼 있다는 점에서 위협이나 최후통첩과 다르다. 사브르 담금질은 정치적 연설이나 외교적 항의, 또는 전쟁 매파를 권력 지위로 승진시키는 것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군사훈련은 적에게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일종의 사브르 덜거덕거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citation needed]

이 용어는 1924년 9월 3일 칠레 역사에서 한 무리의 젊은 군장병들이 정치계급에 항의하고, 그들의 무장병력딱지(차프)를 바닥에 덜덜 떨면서 사회적 조치를 연기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2]

컨텍스트

1924년 칠레는 경제정치적 위기의 진통을 겪었다. 질산염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인위적인 질산염의 발견으로 타격을 입고 있었다.동시에 칠레는 아르투로 알레산드리 대통령과 보수적으로 통제된 의회 사이의 갈등으로 정치적으로 마비되었다.그들은 그가 보낸 초안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1924년 2월 1일, 정당들은 문책표(각료 장관의 사퇴를 강요하는 절차)를 제한하기 위해 의회 절차를 변경하는 합의서에 서명하여 단순 다수결로 토론회를 종결하고 일반적으로 모든 지연전술, 특히 국가예산을 다루는 전술을 없앨 수 있도록 하였다. 추가 조치로서, 그들은 의회 보조금(상원은 3만 페소, 의원은 15.000 페소)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알레산드리 대통령이 마련한 사회적 조치들이 계속 연기되는 동안 집권 연합에 의해 만들어진 유일한 법이기 때문에 대중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육군에서는 이들이 오랫동안 임금 인상을 기다려온 터라 특히 씁쓸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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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3일, 의회 봉급 토론회가 열릴 세션에는 마마두케 그로브 대령과 카를로스 이바녜스캄포 소령을 필두로 56명의 젊은 군 장교(대부분 중산층이나 노동계급에서 오는 부관 및 부관)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조용히 공민관에 앉아 화제를 끄집어내기를 기다렸다. 그 때 회의소장은 주눅이 든 채 토론이 비밀에 부쳐진 만큼 국민의 청산을 요구했다. 장교들이 묵묵히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그들은 전반적으로 정치계급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리고 알레산드리의 사회적 어젠다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복장의 일부로서 입었던 사브들의 딱지(차프)를 덜컹거리기 시작했다.[2]

결과들

이번 행사는 칠레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군단의 욕구가 증대되고 있음을 알리는 과정의 절정이었다. 1891년 칠레 내전 이후 모든 정치 집단의 진출에 매우 의존하고 있었지만 군대는 제외되어 있었다. 집행부가 입법대상이지만 입법보다 집행부의 견제와 균형이 약화돼 '의회-의회 기간'으로도 알려진 이른바 '의회 공화국'(1891~1925)의 종언을 알리는 행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로 다음 날 마르마두케 그로브 대령과 카를로스 이바녜스캄포 소령이 이끄는 같은 젊은 군 장교 집단은 정부의 가능한 처벌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9월 5일 '군위'는 아르투로 알레산드리 대통령에게 전쟁장관과 해군 가스파르 모라 등 장관 3명의 해임과 노동법 제정, 소득세법 통과, 군인 급여 개선 등을 요구했다.

거의 공개적인 군사 반란에 직면해 있는 알레산드리는 루이스 알타미라노 육군 조사관(육군 소장)을 새 내각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9월 8일 알타미라노 장군이 의회 앞에 나타나 알레산드리 노동법 등 8개 법률의 통과를 요구했다. 의회는 감히 항의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몇 년 동안 시들시들하던 법들은 몇 시간 만에 통과되었다. 여기에는 8시간 근무제, 아동 노동 탄압, 명확한 단체 교섭 규칙, 산업 안전에 관한 법률, 노동조합의 합법화, 협동조합에 관한 법률, 조정 및 노동 중재 재판소 설립 등이 포함되었다.

그때 알레산드리는 자신이 군대의 졸개일 뿐이라고 느꼈고, 9월 9일 사임하고 미국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의회는 그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그에게 6개월의 헌법상 휴직을 허가했다. 그는 즉시 그 나라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다. 알타미라노 장군은 부통령으로 권력을 장악했고, 지난 11일에는 알테산드리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군정 준타(軍政)가 창설됐다.

참고 항목

외부 링크

참조

  1. ^ "sabre-rattling". Lexico.
  2. ^ a b Roldán, Alberto Polloni (1972). Las Fuerzas Armadas de Chile en la vida nacional (in Spanish). Editorial Andrés B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