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윅 공방전 (1318)
Siege of Berwick (1318)베르윅 포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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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독립 제1차 전쟁의 일부 | |||||||
1873년 포위를 그린 그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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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성 | |||||||
잉글랜드 왕국 | 스코틀랜드 왕국 | ||||||
지휘관과 지도자 | |||||||
모리스 드 버클리 | 제임스 더글러스 경 월터 스튜어트 경 | ||||||
힘 | |||||||
알 수 없는 | 알 수 없는 | ||||||
사상자 및 손실 | |||||||
알 수 없는 | 알 수 없는 |
베르윅의 포위는 1318년 4월에 일어난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사건이었다.더글라스 영주 제임스 더글라스 경은 1296년부터 이 마을을 지배해 온 영국인으로부터 베르윅-업폰-트위드의 마을과 성을 빼앗았다.
베르윅의 가을
1314년 배녹번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데 이어, 스코틀랜드군은 베르윅을 제외한 모든 거점을 되찾았다.1317년 9월 로버트 브루스 왕은 철수하기 전인 11월까지 지속된 베르윅 포위 공격을 시도했다.[1]이듬해 4월, 피터 스팔딩은 브루스 로버트의 추종자들이 영국인으로부터 베르윅 마을을 점령하는 것을 도왔다.그는 영국인이며 마을의 버지스였지만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마리샬인 로버트 키스경의 사촌과 결혼했다.제임스 더글러스 경, 그리고 어쩌면 던바의 백작이 이끄는 습격대는 싸움 끝에 마을을 점령했다.그들이 약탈하기 시작하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부하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자 성은 경고를 받았다.로버트 왕은 곧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고, 11주간의 포위전 끝에 성 수비대는 보급품 부족으로 항복했다.[2]영국 버지스는 추방되었고, 로버트 왕은 베르윅을 스코틀랜드 무역항으로 재설립하여 사위 월터 스튜어트를 키퍼로 설치하였다.[2]
여파
베르윅의 재계약은 스코틀랜드 팀에게는 의미 있는 승리였다.역사학자 마이클 브라운은 "상징적으로 도시와 성을 함락시킨 것은 로버트 왕의 왕국과 왕권의 완성을 의미했다"[2]고 언급한다.하지만, 베르윅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몇 번 더 손을 바꾸곤 했는데, 1482년 이 마을이 포로로 잡혔을 때 영구히 영국의 일부가 되었다.
참조
메모들
1차
- Brown, Michael (2008). Bannockburn. Edinburgh University Press. ISBN 0-7486-33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