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로비아 공방전

Siege of Monrovia
몬로비아 공방전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의 일부
날짜2003년 7월 18일~8월 14일
위치
결과 찰스 G. 테일러는 사임하고 평화유지군은 도착하고 반군은 포위를 해제한다.
호전성
Liberia 충성파 무장분자 반테일러 군사 요소
Liberia루르드 반군
지휘관과 지도자
Liberia 찰스 G. 테일러
Liberia 벤저민 예텐
알 수 없는
사상자 및 손실
1500명 사망 2500명 사망
민간인[1] 1000명 사망

2003년 7월 18일부터 8월 14일 사이에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 발생한 몬로비아 공방전이나 제4차 몬로비아 전투는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라이베리아 군대루르드 반군 사이에 벌어진 주요 군사적 대결이었다. 도시의 포격으로 1000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 갈등의 결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 쫓겨났다. 8월 중순, 두 달간의 포위 공격 끝에, 라이베리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망명길에 올랐고, 그 포위 공격의 결과로 평화 유지군이 도착했다.

배경

2003년 초 남부에서 반군 단체인 라이베리아 민주화 운동(MORIDE, MODEL)이 등장했고, 2003년 여름까지 테일러 정부는 국가의 3분의 1만 통제했다. 몇몇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2003년 중반까지 루르드 반군은 북부 3번째 지역을 통제했고 수도를 위협했다.

타임라인

8월 14일, 반군은 라이베리아의 수도에 대한 그들의 포위를 해제했고 200명의 미국 해병대가 서아프리카 평화군을 지원하기 위해 상륙했다.[citation needed]

라이베리아의 여인

몬로비아의 기독교와 무슬림 여성들이 힘을 합쳐 '평화를 위한 라이베리아 집단행동'이라는 평화운동을 만들었다. 수천 명의 여성들이 그들의 노력을 동원했고, 침묵의 비폭력 시위를 벌였고, 찰스 테일러 대통령과 회담을 강요했고, 가나에서 열리는 평화 회담에 참석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이끌어냈다.[2] 라이베리아의 여성들은 폭력과 정부에 대항하는 정치적 세력이 되었다.[3]

그들의 행동은 교착상태에 빠진 평화 회담 동안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여성들은 14년간의 내전 끝에 라이베리아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라이베리아 최초의 여성 국가수반인 엘렌 존슨 설리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 이야기는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악마가 지옥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라'에 실려 있다.[4]

참고 항목

참조

  1. ^ [1] 2011년 5월 22일 웨이백머신보관
  2. ^ [2] 2009년 3월 14일 웨이백머신보관
  3. ^ "Blogs". Guideposts.com. 2014-02-10. Retrieved 2015-05-31.
  4. ^ [3] 2009년 11월 6일 웨이백 머신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