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타타르족
Tatars in Lithuania리투아니아의 타타르 인구는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역사적 땅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소수민족 중 하나로도 꼽힌다.
기원
리투아니아 타타르족(Lituanian Tatars)은 투르크족과 몽골족의 후손이다. 그들의 조상은 크림 칸국뿐만 아니라 황금 호드와 대호드(볼가 하류 지역)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었다. 타타르족은 다른 민족에 속했고 킵차크어를 구사했다. 리투아니아의 타타르족은 다른 나라와 종교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16세기에 모국어를 잃었다.[1] 그러나 타타르족들은 그들의 민족문화,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보존해왔다. 리투아니아 타타르의 대다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리투아니아의 무슬림 정신 센터, 즉 머프티테는 1998년에 다시 설립되었다. 리투아니아 타타르 모스크는 케투리아스데힘트 토토리슈, 라이시아이, 카우나스 마을인 네무시스에서 운영되고 있다.[2] 전쟁 전에 리투아니아에는 6개의 모스크가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파괴되었다. 빌카비슈키스군 빈크슈누피아이의 모스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고, 빌니우스의 루키슈카스 모스크는 소련 시대에 파괴되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에는 60여 개의 리투아니아 타타르 모스크나 예배당이 여러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리투아니아 영토 진입
14세기에 리투아니아의 대공국은 광대한 영토를 뒤덮었다. 동쪽에서는 타타르 땅과 접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서로 소통하며 칸의 전령들이 당시 수도였던 트라카이(Tracai)를 방문했다. 1319~1320년 게디미나스 대공 때 이미 십자군과의 전투에서 제1차 타타르족이 동맹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왔다.
비토타스 대왕은 1397-1398년에 리투아니아의 그랜드 두키에 첫 타타르를 가져갔고, 리투아니아의 원조로 황금 호드의 칸국테를 되찾으려 했던 칸 토카미시와 함께 디퍼와 돈 스텝으로 갔다. 타타르족은 그 후 트라카이와 그 주변에 정착했다. 초기의 정착지는 보크 강을 따라 퍼져나갔다.[3]
1410년 7월 15일 타타르족 사단이 대공 비토타스와 함께 유명한 그룬발트 전투에 참가하였다.
1506년 크레츠크 전투 이후, 다수의 타타르 포로들은 오스트로그스키 왕자들, 라지위와프족 등 리투아니아 귀족 가문의 사유지, 마을 또는 마을에 정착했다. 17세기에 비르차이의 두치족에 일부 타타르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대호드의 마지막 칸(볼가 하류 지역) 샤이크 아흐마드는 인질로 잡혀 20년 동안 상당한 호위무사로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에 억류되었다. 1527년 석방되었으나, 그의 가족 구성원들은 리투아니아의 그랜드 두키에 남아 타타르 두케스와 미르자스의 여러 지역 가족의 설립자가 되었다. 루키슈키우스 - 빌니우스 교외 - 타타르족은 16세기 중반 이전까지 정착했다.
리투아니아에서 타타르 귀족들은 주로 마노르 빌리지(오콜리카)나 홈스테드에 살았다. 리투아니아 대공의 소유였던 타타르스는 그에게서 유산으로 땅을 받았다. 타타르족들은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했고, 약간의 추가적인 의무가 있었다. 택배기사, 집배원, 경비원, 도로공사 등의 역할도 했다. 타타르족도 보야르족과 마찬가지로 토지 소유권을 누렸으나 정치적 권리는 없었다.
타타르족들은 그들이 소유한 땅을 대가로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주세를 면제받았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투표세와 다른 세금을 내야 했다. 토지와 토지는 좋은 서비스를 위해 개인에게 주어졌다.
리투아니아의 대공국에서는 타타르족의 주요 활동이 군무와 외교무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국기는 타타르 공동체의 행정영토와 세무 단위였다. 주공(울란)이 지휘했다. 처음에 타타르 국기는 후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최전방 호위 연대를 형성한 군부대였다.
도시 지역에서는 귀족 타타르가 아닌 타타르가 정원 가꾸기, 가죽 생산, 말 사육, 운송에 관여했다.[4]
타타르족은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제3차 분할 이후 그들의 권리를 유지했는데, 이때 GDL의 영토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타타르족은 귀족임을 증명하고 군 복무와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귀족임을 증명할 수 없었던 이들은 홈스테드 생활을 하며 투표세를 납부했다.
타타르족은 러시아 제국군에서 복무했고 1803년까지 리투아니아 타타르 연대가 따로 있었다. 많은 타타르인들이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캠페인에 참여했고, 1831년과 1863년의 반란을 일으켰고, 리투아니아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였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 왕국, 러시아 제국의 군대에서 50명에 이르는 리투아니아 타타르 가문의 장군들이 복무했다.[5]
리투아니아 타타르는 제2의 고국이 된 나라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면서 리투아니아의 대공전과 1794년, 1831년, 1864년 봉기, 1918~1920년 리투아니아 독립투쟁에 모두 참가했다.[6][7] 리투아니아 타타르 고위 장교 알렉산드라스(슐레이마나스) 찰리키스는 복원된 리투아니아 군대의 창설자 중 한 명이었다.[8]
20세기
시간이 흐르면서 리투아니아 타타르족에게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타타르 의사, 학자, 예술가, 문리학 종사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0세기 초, 타타르 국가 기구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1909년 리투아니아의 무슬림 공동체가 빌니우스에서 설립되었다. 1917-1923년,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타타르 연합이 페트로그라드에서 운영되었다. 1923년부터 1936년까지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 타타르 협회가 있었다. 1925~1940년 폴란드가 점령한 동부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한 폴란드 타타르 문화 교육 연합 사단(Division of the Cultural and Educational Union of Polland Tatars)은 과학, 종교 문학, 소설을 출판했으며, 1934~1939년 빌니우스에서 '„ycie tatarskie'라는 신문이 인쇄되었다. 1929-1940년에는 타타르 국립 박물관이 있었고, 1931년부터는 기록 보관소, 1934년부터는 청소년 서클이 있었다.
1925년 12월 28일 이슬람 종교 중심지인 빌니우스 무프티테(Mufti Jakubas Shinkevivicius가 지도)가 설립되었다. 1936년 타타르 공동체는 자동 신앙 공동체로 인정받았다. 또한 13대 빌니우스 우를란 연대의 일부로 타타르 군단이 창설되었다. 전후 기간 동안 약 천 명의 리투아니아 타타르가 리투아니아에 살았다. 이 지역 사회의 또 다른 만 명의 구성원들은 폴란드와 벨라루스의 리투아니아 외곽에 살았다. 리투아니아에는 카우나스와 라이시아이에 중심이 있는 두 개의 이슬람교 교회가 있었다. 1930년 그룬발트 전투 520주년을 맞아 리투아니아의 임시 수도 카우나스에 벽돌 모스크가 새로 문을 열었다. 그것은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9]
1939년 말 라이시아이(Alytus county), 빈크슈누피아이(Vilkaviskis county), 사십타타르족 마을(Vilnius county), 네메지스(Vilnius county)에 이슬람교 교리가 있었다. 1940년 6월 15일 홍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한 후 타타르 조직은 폐쇄되었다.
현대 리투아니아에서
리투아니아 타타르 문화 협회는 1988년에 설립되었다. 리투아니아 타타르족의 사회생활을 조정하고, 예배의 집들을 복원하며, 타타르 문화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현재 리투아니아에는 20여 개의 공공단체(단체)가 있다.
1995년 리투아니아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등에 '리투아니아 타타르스'라는 신문이 등장했다.[10]
리투아니아 타타르 공동체 연합은 1996년에 설립되었다. 그것의 활동에는 리투아니아 타타르 문화에 대한 정보의 육성, 연구, 전파 등이 포함된다. 연합은 행사를 조직하고 주 및 시 기관뿐 아니라 폴란드와 벨라루스의 리투아니아 타타르족, 크림 타타르족 메즐리스(국회의회)의 관련 조직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9년에는 역사적 기억을 영구화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토타스 대 기념비 건립 재단이 설립되었다.[11]
리투아니아에는 몇몇 주일학교도 있다.
리투아니아 타타르 민속학의 복원은 1997년 최초의 민속 앙상블 '알리제'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2011년 리투아니아 타타르 민속 앙상블 '일수'(홈랜드)가 빌니우스에서 창단되었다. 민속 단체 「에프사네」(레전드)가 2018년에 창립되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 타타르족과 다른 투르크 민족의 전통 문화를 홍보하고 대중에게 선보인다.
트라카이 성 박물관의 상설 전시회도 리투아니아 타타르의 매혹적인 역사를 보여준다.[12]
요리유산
리투아니아 타타르는 그들의 음식 전통을 지켜왔다. 리투아니아와 그 이상에서 가장 유명한 타타르 요리는 '쉬말라피스'를 가득 채운 양귀비가 든 백겹 케이크다. 양고기와 쇠고기를 넣은 유명한 리투아니아 타타르 만두, 고기가 들어간 호박 파이, 의식용 둥근 스콘 - 자마 - 그리고 달콤한 할와도 있다.[13]
유명한 리투아니아 타타르족
모티주스 술케비치우스(마키에즈(슐레이만 베이) 술키에비치), 러시아 제국의 중위, 크림 지방 정부의 총리, 아제르바이잔 군 총참모장.
미하일라스 투한-바라놉스키스(미카일 투간-바라노프스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경제 이론가 겸 교수
올기에르다스와 레오나스 크리친스키아 형제(올기에르드 나즈만-미르자 크리치스키, 레온 나즈만 미르자 크리치스키), 변호사
아다스 야쿠바스카스, 정치학자, 시인, 미콜라스 로메리스 대학교 교수, 리투아니아의[14] 대량학살 및 저항 연구 센터장
로무알다스 마카베카스 – 카우나스 체스 연맹 명예회장 카우나스 공과대학 부교수
타마라 바이라사우스카이츠 리투아니아 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빌니우스대[15] 교수
주오자스 빌친스카스 리투아니아 공동체 영국 의장.
알베르타스 차즈비자비치우스, 전문 서커스 아티스트, 서커스 스튜디오 주키자 단장.
참고 항목
참조
- ^ Akiner, Shrin (1986). Islamic Peoples Of The Soviet Union. Routledge. p. 85. ISBN 978-1-136-14274-1.
- ^ a b "Tatars in Lithuania True Lithuania". www.truelithuania.com. Retrieved 2020-12-20.
- ^ "The amazing survival of the Baltic Muslims". BBC News. 2016-01-01. Retrieved 2020-12-20.
- ^ A. Jakubauskas, Lietuvos totoriai istorijoje ir Kulturoje, Vilnius, 2009.
- ^ T. Bairashauskaitė, Lietuvos totoriai XIX amžiuje, Vilnius, 1996.
- ^ Bairašauskaitė, Tamara (2007-12-28). "The COllision of Definition and Identity : on the Social Status of Lithuanian Karaim in the First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Lithuanian Historical Studies. 12 (1): 93–112. doi:10.30965/25386565-01201005. ISSN 1392-2343.
- ^ "Totoriai Lietuvoje". Bernardinai.lt (in Lithuanian). 2007-08-06. Retrieved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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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ibune, the Lithuania (2016-06-03). "The Tatars: 700 years of influence on Lithuania's history, language and food". the Lithuania Tribune. Retrieved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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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1 maint : url-status (링크) - ^ "Tamara Bairašauskaitė Lietuvos istorijos institutas". Tamara Bairašauskaitė Lietuvos istorijos institutas (in Lithuanian). Retrieved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