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마키 히로코
Tsumaki Hiroko
쓰마키 히로코(츠마키 히로코, 1530년 ~ 1576년 11월 27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귀족 여성이다.오마키노카타, 오마키, 후세야히메라고도 불리며, 실명은 불명확하다.히로코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쓰마키 노리히로라는 이름에서 유래했을 것이다.오다 가문의 저명한 장군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아내이자 기독교 개종자로 유명한 호소카와 그라시아의 어머니였다.그는 미츠히데의 초기 경력과 아케치 가문의 안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아케치 가문은 훗날 일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 중 하나인 혼노지 [1]사건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했다.
히로코는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의 주인공으로, 「츠키 사비요/아케치 가쓰마노/하나시센」(아케치 부인의 슬픈 달/말하자)이라고 쓰여 있다.그 슬픔은 히로코가 남편을 중병으로 간호한 결과 사망했다는 흔한 이야기를 언급할 수도 있고, 히로코 자신도 그 병에 걸렸다.그러나 이 시에 대한 일본인들의 논평에는 그녀의 죽음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1] 슬픔은 남편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적인 꿈의 희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생
츠마키 히로코는 츠마키 성의 카스텔란 츠마키 노리히로의 딸로 태어났다.그녀의 생년월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설에 따르면, 그녀는 1530년경 장녀로 태어났다.그녀는 1545년에 아케치 미츠히데와 약혼했다.하지만, 그녀는 나중에 천연두에 걸렸고 그녀의 온몸에 멍자국이 남아있었다.아버지 노리히로는 히로코를 가장한 여동생을 미츠시데로 보냈다고 하지만 미츠히데는 히로코와의 결혼을 선호하며 이를 알고 거절했다.
결혼 기간 중 기독교 개종자인 호소카와 그라시아를 낳아 일본 역사에서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다.히로코는 아케치 일족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결단력 있는 여성이었다.그녀의 가족에 대한 헌신은 이야기, 그림, 대중문화에서 영원했다.
1556년 미쓰히데는 나가라가와 전투에서 사이토 도산을 지원하였다.사이토 요시타츠가 아케치 성을 무너뜨린 후, 미츠히데는 임신한 히로코를 업고 에치젠 국으로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다.미츠히데와 히로코는 에치젠으로 도망칠 때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섬겨 달라고 부탁했다.어려운 시기였지만 미츠히데는 연가 행사를 기획했다.히로코는 미츠히데가 잔치를 준비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알고 [2]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검은 머리를 팔았다.
히로코와 미츠히데의 관계는 진심이었고, 그는 첩을 두겠다는 어떠한 제안도 거절했다.이 관계는 미쓰히데의 고국성 항복, 주인 없는 생활, 아사쿠라 씨, 아시카가 씨, 오다 [3]씨 등 미쓰히데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굳건한 관계가 되었다.
죽음.
1576년, 히로코는 병에 걸렸다.미츠히데는 신토 승려에게 요양 기도를 부탁했다.열흘 후에 회복되었기 때문에 신사에 감사하기 위해 은 조각이 기증되었습니다.카네미는 교토 미츠히데의 숙소에 있는 히로코를 방문하여 그녀의 회복을 기원하고 미츠히데를 만났다.
미츠히데가 중병을 앓고 있을 때 필사적으로 간호했지만 간호 피로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그러나 1582년 야마자키 [4]전투 중 사카모토 성이 함락되면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묘소는 시가현 오쓰시의 사이쿄지( her京寺)에 있으며 아케치 가문과 쓰마키 가문의 절이다.
레퍼런스
- ^ a b Robbins, Jeff. Take Back the Sun. Lulu.com. pp. 302–303. ISBN 978-1-312-36746-3.
- ^ 柴裕之 (December 2018). 図説明智光秀 (in Japanese). 戎光祥出版. ISBN 978-4-86403-305-3.
- ^ 細川珠生 (March 2019). 私の先祖明智光秀 (in Japanese). 宝島社. ISBN 978-4-8002-9167-7.
- ^ 諏訪勝則 (December 2019). 明智光秀の生涯 (in Japanese). 吉川弘文館. ISBN 978-4-642-058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