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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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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고'''(苦)는 이러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불교 용어로서는 고(苦){{.cw}}[[불교 용어 목록/지#집|집]](集){{.cw}}[[멸]](滅){{.cw}}[[도 (불교)|도]](道)의 [[4성제]](四聖諦) 가운데 첫 번째의 고(苦)를 의미한다. 이 경우의 고는 고제(苦諦) 또는 고성제(苦聖諦)의 줄임말이다.
불교에서 '''고'''(苦)는 이러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불교 용어로서는 고(苦){{.cw}}[[불교 용어 목록/지#집|집]](集){{.cw}}[[멸]](滅){{.cw}}[[도 (불교)|도]](道)의 [[4성제]](四聖諦) 가운데 첫 번째의 고(苦)를 의미한다. 이 경우의 고는 고제(苦諦) 또는 고성제(苦聖諦)의 줄임말이다.


'''고제'''(苦諦, {{llang|sa|[[:en:duḥkha-satya|<span style="color: black">duḥkha-satya</span>]]}}, {{llang|pi|[[:en:dukkha-sacca|<span style="color: black">dukkha-sacca</span>]]}}) 또는 '''고성제'''(苦聖諦, {{llang|sa|[[:en:duhkhārya-satya|<span style="color: black">duhkhārya-satya</span>]]}})는 [[범부]](凡夫) 즉 [[구경각|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라고 하는 진리이다.<ref name="글로벌-원시불교의 사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불교#원시불교의 사상|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고타마는 이상과 같은 도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弟子)·신자(信者)·이교도(異敎徒:外道)들에게 설교하였는데, 설교의 강격(綱格)으로서 종합요약된 것이 <4제설(四諸說)이다. 그것은 다음네 가지 종류의 진리를 가리킨다. (1) 고제(苦諦):범부(凡夫)의 생존은 고(苦)라고 하는 진리 (2) 집제(集諦):범부의 여러가지 고뇌는 결국 번뇌 특히 망집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진리 (3) 멸제(滅諦):망집을 완전히 소멸함에 따라 고(苦)를 소멸해 버린 열반이 해탈의 이상경(理想境)이라고 하는 진리 (4) 도제(道諦):이 고(苦)를 소멸로 인도하는 수도법은 '8정도(八正道)'에 불과하다고 하는 진리. 8정도(八正道:또는 八聖道)라 함은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을 이른다."</ref> 즉, [[3계]](三界)를 벗어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상태에서 맞이하는 삶, 어쩔수 없이 [[3계]]로 [[윤회]]해야만 하는 삶의 본질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로서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라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3%A0%EC%A0%9C&rowno=1 苦諦(고제)]". 2013년 1월 16일에 확인|ps=<br>"苦諦(고제): 【범】 dukha-satya 고제의 하나. 3계(界)에서 생사하는 과보는 고(苦)이고,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라 함. ⇒고(苦)ㆍ고성제(苦聖蹄)"}}
'''고제'''(苦諦, {{llang|sa|[[:en:duḥkha-satya|<span style="color: black">duḥkha-satya</span>]]}}, {{llang|pi|[[:en:dukkha-sacca|<span style="color: black">dukkha-sacca</span>]]}}) 또는 '''고성제'''(苦聖諦, {{llang|sa|[[:en:duhkhārya-satya|<span style="color: black">duhkhārya-satya</span>]]}})는 [[범부]](凡夫) 즉 [[구경각|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라고 하는 진리이다.<ref name="글로벌-원시불교의 사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불교#원시불교의 사상|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고타마는 이상과 같은 도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弟子)·신자(信者)·이교도(異敎徒:外道)들에게 설교하였는데, 설교의 강격(綱格)으로서 종합요약된 것이 <4제설(四諸說)이다. 그것은 다음네 가지 종류의 진리를 가리킨다. (1) 고제(苦諦):범부(凡夫)의 생존은 고(苦)라고 하는 진리 (2) 집제(集諦):범부의 여러 가지 고뇌는 결국 번뇌 특히 망집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진리 (3) 멸제(滅諦):망집을 완전히 소멸함에 따라 고(苦)를 소멸해 버린 열반이 해탈의 이상경(理想境)이라고 하는 진리 (4) 도제(道諦):이 고(苦)를 소멸로 인도하는 수도법은 '8정도(八正道)'에 불과하다고 하는 진리. 8정도(八正道:또는 八聖道)라 함은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을 이른다."</ref> 즉, [[3계]](三界)를 벗어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상태에서 맞이하는 삶, 어쩔수 없이 [[3계]]로 [[윤회]]해야만 하는 삶의 본질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로서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라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3%A0%EC%A0%9C&rowno=1 苦諦(고제)]". 2013년 1월 16일에 확인|ps=<br>"苦諦(고제): 【범】 dukha-satya 고제의 하나. 3계(界)에서 생사하는 과보는 고(苦)이고,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라 함. ⇒고(苦)ㆍ고성제(苦聖蹄)"}}


달리 말하면,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란 [[유루]](有漏) 즉 [[번뇌]]에 속박된 상태인 한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과보]]로서의 [[3계]]에서의 삶을 [[성인 (불교)|성자]]의 눈으로 여실(如實)히 볼 때 즉 진실한 실상 그대로 관찰할 때 [[3계]]에서의 삶은 [[3고]](三苦), [[5취온고]](五取蘊苦) 혹은 [[8고]](八苦) 등의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4037&DTITLE=苦諦 苦諦]". 2013년 1월 16일에 확인|ps=<br>"苦諦: 梵語 duhkha-satya,巴利語 dukkha-sacca。四諦之一。又稱苦聖諦(梵 duhkhārya-satya)。指聖者如實審察三界有漏之苦果(有情及器世間),如三苦、五取蘊苦、八苦等。在婆沙諸論中謂,此有漏諸果中,或生樂,或生非苦非樂(未必所生皆苦);此即說一切有部之諸師以樂受爲實有,而以苦多樂少爲苦諦之義;然經部則謂,諸蘊中全無樂受可言。成實論卷六行苦品第七十九(大三二‧二八二中):「此三受皆苦諦攝,若實是樂,苦諦云何攝?又苦爲眞實,樂相虛妄。何以知之?以觀苦心能斷諸結,非樂心也,故知皆苦。」此即主張三界皆苦之說。<br>
달리 말하면,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란 [[유루]](有漏) 즉 [[번뇌]]에 속박된 상태인 한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과보]]로서의 [[3계]]에서의 삶을 [[성인 (불교)|성자]]의 눈으로 여실(如實)히 볼 때 즉 진실한 실상 그대로 관찰할 때 [[3계]]에서의 삶은 [[3고]](三苦), [[5취온고]](五取蘊苦) 혹은 [[8고]](八苦) 등의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4037&DTITLE=苦諦 苦諦]". 2013년 1월 16일에 확인|ps=<br>"苦諦: 梵語 duhkha-satya,巴利語 dukkha-sacca。四諦之一。又稱苦聖諦(梵 duhkhārya-satya)。指聖者如實審察三界有漏之苦果(有情及器世間),如三苦、五取蘊苦、八苦等。在婆沙諸論中謂,此有漏諸果中,或生樂,或生非苦非樂(未必所生皆苦);此即說一切有部之諸師以樂受爲實有,而以苦多樂少爲苦諦之義;然經部則謂,諸蘊中全無樂受可言。成實論卷六行苦品第七十九(大三二‧二八二中):「此三受皆苦諦攝,若實是樂,苦諦云何攝?又苦爲眞實,樂相虛妄。何以知之?以觀苦心能斷諸結,非樂心也,故知皆苦。」此即主張三界皆苦之說。<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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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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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 (불교)|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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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제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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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목) 13:57 기준 최신판

(苦)는 괴로움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고 즉 괴로움은 불교에서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한다. 첫 번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괴로움과 즐거움의 관점에서 크게 나누어,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것, 즐거운 느낌을 일으키는 것,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일으키는 것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눌 때, 고는 첫 번째의, 그 성질이 괴로운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해, 이 세상에 즐거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무덤덤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이 둘과 더불어 괴로운 것도 있다는 사실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두 번째는 세상의 즐거움을 다른 관점[異門]에서 보아 고통인 것으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괴로움을 말한다. 즉, 비록 그 성질상 즐거운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또한 바뀌는 것이므로 진정한 궁극적 즐거움 또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리고 궁극적 즐거움인 열반을 찾으려고 할 때 이 세상의 즐거움에 맛들인 상태 그리고 이것이 더 심해져 집착이 된 상태는 열반으로 나아감에 있어 극심한 장애가 된다. 따라서 열반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가장 우선 요구되는 것이 세상의 즐거움에 집착 당하지 않는 상태, 맛들임 당하지 않는 상태, 즉, 탐욕으로부터 (일부나마) 해탈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상태는 세상의 즐거움을 다른 관점[異門]에서 봄[觀]에 의해서 획득된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의 해석이 4성제의 고제의 관점에서 말하는 고 즉 괴로움이다.[1]

첫 번째 관점에서 살펴보면, 세친의 《대승오온론》에 따르면 괴로움의 느낌으로서의 (苦: 괴로움) 즉 고수(苦受)는 어떤 또는 대상생겨날 때 그것과 떨어지려는 욕구가 있는 것[生時有乖離欲]으로 정의된다. 이에 대해 즐거움의 느낌으로서의 (樂: 즐거움) 즉 낙수(樂受)는 어떤 또는 대상사라질 때에 그것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욕구가 있는 것[滅時有和合欲]으로 정의된다. 또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느낌으로서의 불고불락(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 즉 사수(捨受)는 이들 2가지 욕구가 없는 것[無二欲]으로 정의된다.[2][3] 즉, 고 즉 괴로움이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나와 관계가 나쁜 직장 상사 등) 또는 사물(이별, 질병, 죽음 등)을 만나게 되는 혹은 만나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즐거움(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이 첫 번째 관점에서 볼 때,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도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질상 즐거운 것인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나게 하는 것은 즐거움이 과도하여 고통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즉 성질상 즐거운 것이 현실의 사용에서도 즐거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중용 즉 절제가 요구된다. 이것은 인과의 법칙 또는 연기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씨가 발아하여 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씨앗이라는 원인[因, 生因]이 있고 거기에 온도, 물, 산소라는 원인[緣, 起因]이 더해져야 하듯이, 성질상 즐거운 것[因, 生因]이 현실의 사용에서 즐거운 것[果, 有]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에 적절한 중용[緣, 起因]이 더해져야 한다. 성질상 괴로운 것에 대해서는 마음의 동요를 최대한 가라앉히고 직면하여 불가피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을 경감시키는 방안을 행하고 불가피한 것이라면 극단적으로 되지 않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태도, 즉, 수양으로서의 중용이 요구된다. 불교의 관점에서도 즐거운 것과 괴로운 것에 대한 이러한 중용의 태도는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윤회를 인정하는 불교로서는 만약 이 이번 한 번뿐이라면 이러한 중용이 나름 최선의 해결책이겠지만 삶은 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에는 다시 반복되므로 이러한 중용의 태도가 훌륭한 것이긴 하나 근원적인 해결책으로서의 중도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다.

세상의 사실의 입장에서의 고(苦)가 아니라 두 번째 관점 즉 근원적인 해결책을 구한다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에서 고타마 붓다가 설하는 바에 따르면, 고는 본질상 무상(無常)한 것 즉 본질상 영원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4][5] 그렇기 때문에, 미워하는 사람을 만날 때와 같은 그 자체의 성질이 괴로운 것인, 3수 가운데 고수(苦受)와 연결된, 괴로움의 느낌[苦苦]이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때와 같은, 3수 가운데 낙수(樂受)와 연결된, 이차적인 괴로움의 느낌[壞苦]이건, 혹은 무상한 것이므로 해탈이 아니어서 머물만한 것이 아니라는, 3수 가운데 사수(捨受)와 연결된, 성인뛰어난 괴로움의 느낌[行苦]이건 간에, 고(苦) 즉 괴로움이란 고수(苦受) 즉 괴로움의 느낌 그 자체 또는 괴로움의 느낌을 일으키는 사물을 말한다. 즉,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이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건, 해탈이 아니어서 머물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건 이것들은 모두, 열반으로 나아가는 입장에서 볼 때, 그 또는 대상에서 떨어지려는 욕구를 일으키는 그러한 또는 대상이다.[6] 이러한 이유로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고(苦)는 기꺼이 안주하여 즐길만한 것이 아닌 것을 말한다.[7] 그리고 이와 같이 다른 관점[異門]에서 보기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염세(厭世) 즉 좌절을 겪은 욕구(선욕 또는 악욕)에 무지가 함께하는 불선마음인 염(厭: 싫어함)이 아니라 수염(修厭: 싫어하는 마음을 닦음) 즉 무탐(無貪)과 지혜[慧]가 함께하는 선한 마음인 염(厭: 싫어함)을 닦으라고 말한다.[8][9][10]

또한 그렇기 때문에 무상한 것 즉 괴로운 것 즉 변하고 바뀌는 법[變易法]에 대해 '이것은 다[是我, This is my self]. 이것은 나의 것이다[異我, This is mine]. 나는 이러한 존재이다[相在, This is what I am]'라고 보지 않는 것[苦諦現觀] 또는 보지 않을 수 있는 것[苦智]을 뜻한다.[4][5] 고(苦)는 특히 (色) · (受) · (想) · (行) · (識)의 5온과 결부하여 설해지는데, 5온은 변하고 바뀌는 법[變易法] 즉 유위법 전체를 의미하므로 궁극적으로 모든 유위법에 대해 이렇게 보지 않는 것 또는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또한 '모든 유위법'이란 곧 3계와 동일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욕계 · 색계 · 무색계3계에 대해 이렇게 보지 않는 것[苦諦現觀] 또는 보지 않을 수 있는 것[苦智], 즉 고제현관(苦諦現觀)[11] 등과 이를 통해 증득된 고지(苦智)를 뜻한다. 달리 말해 고지(苦智)는 고제현관(苦諦現觀) 등의 수행을 통해 3계에 대해 무상의 진리괴로움의 진리고제(苦諦)를 체득한 상태의 무루의 지혜를 말한다.[12][13] 한편, 불교 교의에 따르면, 유위법이지만 무루인 것, 즉, 출세간무루법4성제 · 37도품 · 6바라밀 · 12연기설 등은 비록 유위법이지만 그 성질상 맛들임 · 집착 등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므로 고에 속하지 않는다. 즉, 이들과 이들에 따른 즐거움은 고제의 관찰 대상이 아니다. 다른 관점[異門]에서 보아야[觀] 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리 즉 열반을 구하는 불교의 용어로서의 고(苦)는 항상 고(苦) · (集) · (滅) · (道)의 4성제(四聖諦)의 문맥 속에서의 첫 번째 진리로서의 고(苦)를 의미한다. 유루(有漏) 즉 번뇌에 속박된 상태인 한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과보로서의 3계에서의 삶을 성자의 눈으로 진실한 실상 그대로 관찰할 때 3계에서의 삶의 본질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로서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확인되므로 고제(苦諦) 즉 괴로움의 진리라 한다.[7] 즉, 고는 괴로움의 느낌인 고수(苦受)에서 단지 그치는 것이 아니며 괴로움의 진리인 고제(苦諦) 또는 고성제(苦聖諦)를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는 방편으로서의 고제현관(苦諦現觀) 등의 수행과 이러한 진리를 깨우친 상태의 무루지고지(苦智)를 뜻한다.[7][14]

그리고 초기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진리를 실천적으로 깨우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편으로 4념처를 비롯한 37도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구사론》《대승아비달마집론》《천태사교의》 등의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논서들에 따르면, 불교의 우주론유정세간기세간유정의 현실세계 또는 유정의 실제 모습으로서의 현재 상태를 밝히는 것으로 곧 4성제 가운데 고제(苦諦)에 해당한다.[15][16][17][18][19] 달리 말하면,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우주론이란 '괴로움의 현실이라는 진리[苦諦]' 즉 무상(無常)의 진리를 밝히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의 일부를 이룬다.

고제: 무상과 고

[편집]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에서 5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무상하므로 고'라고 말하고 있다.[주해 1]

云何比丘!色爲常耶?爲非常耶?」
What do you think — Is form constant or inconstant?
答言: 「無常。世尊!」
Inconstant, lord.
「若無常者,是苦耶?」
And is that which is inconstant easeful or stressful?
答言:「是苦。世尊!」
Stressful, lord.
「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
And is it fitting to regard what is inconstant, stressful, subject to change as: 'This is mine. This is my self. This is what I am'?
答言:「不也,世尊!」
No, lord.
「受、想、行、識亦復如是。
(해당되는 팔리어 부분이 없고, 따라서 해당되는 영문 번역이 없음)

"어떤가? 비구들아, (色)은 항상[常]한가, 무상[非常]한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苦] 것인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變易法]이다. 그런데도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多聞聖弟子: 즉 4향4과성인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是我, This is my self]. 이것은 나의 것이다[異我, This is mine]. 나는 이러한 존재이다[相在, This is what I am]'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受) · (想) · (行) · (識)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 한문본 &한글본 &영문본

불교에서 (苦)는 이러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불교 용어로서는 고(苦) · (集) · (滅) · (道)의 4성제(四聖諦) 가운데 첫 번째의 고(苦)를 의미한다. 이 경우의 고는 고제(苦諦) 또는 고성제(苦聖諦)의 줄임말이다.

고제(苦諦, 산스크리트어: duḥkha-satya, 팔리어: dukkha-sacca) 또는 고성제(苦聖諦, 산스크리트어: duhkhārya-satya)는 범부(凡夫)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라고 하는 진리이다.[20] 즉, 3계(三界)를 벗어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상태에서 맞이하는 삶, 어쩔수 없이 3계윤회해야만 하는 삶의 본질은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로서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라 한다.[7]

달리 말하면, 고제 즉 괴로움의 진리란 유루(有漏) 즉 번뇌에 속박된 상태인 한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과보로서의 3계에서의 삶을 성자의 눈으로 여실(如實)히 볼 때 즉 진실한 실상 그대로 관찰할 때 3계에서의 삶은 3고(三苦), 5취온고(五取蘊苦) 혹은 8고(八苦) 등의 고(苦: 무상한 것, 괴로운 것, 변하고 바뀌는 것)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6] 그리고, 고지(苦智) 즉 '괴로움의 진리를 아는 지혜'는 번뇌에 속박된 상태의 삶, 즉 깨달음성취하지 못한 상태의 삶, 즉 5취온(五取蘊)이 비상(非常: 무상한 것임) · (苦: 괴로운 것임) · (空: 실체가 없는 것임) · 비아(非我: 나가 아님)라는 것을 여실히 아는 무루지(無漏智)이다.[12][13] 이것을 달리 말하면, 무루지번뇌를 끊는 지혜이므로, 고지(苦智)는 5취온(五取蘊)에 대해 비상(非常: 무상한 것임) · (苦: 괴로운 것임) · (空: 실체가 없는 것임) · 비아(非我: 나가 아님)라고 보지 못하게 하는 번뇌(잡염, 근본번뇌수번뇌)를 끊는 지혜 또는 이러한 번뇌들이 끊어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지혜이다.

제관의 《천태사교의》에 따르면, 3계 6도25유(二十五有)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즉 총 25가지의 존재 형태 또는 상태의보(依報) · 정보(正報)의 2보(二報)가 모두 4성제고제(苦諦), 즉 '괴로움진리'에 해당한다.[17][21][22][23]

일체개고

[편집]

고타마 붓다는 20대에 왕자의 위치와 처자까지 버리고 출가하였는데 그가 출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즉 '인생은 고(苦)이다'라고 하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현실세계의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직시(直視)한 고타마 붓다가 얻은 것은, 모든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뜻대로 하고 싶다는 자기모순적인 욕망이 인간의 내면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었다.[24]

고타마 붓다는 이와 같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苦)을 고라고 하며 자기모순적인 욕망이야말로 고의 원인이라고 밝혀내었다.[24] 일체개고의 현실인식은 현실 또는 존재 그 자체에 고(苦)라고 하는 고정된 성질 또는 실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며 또한 고(苦)의 원인이 현실 또는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제행무상) 인간은 항상 불변을 바라고, 또 모든 것은 무엇 하나 고정적 실체인 것은 없는데도(제법무아) 그것을 실체라고 고집하려 하는 데에 고(苦)의 원인이 있다고 고타마 붓다는 말하였다.[25]

일체개고는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열반적정과 더불어 근본 불교의 기본 교의인 3법인 또는 4법인을 구성한다.

4고8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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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에서 3법인4법인이 설해진 후, 후대에 고(苦)는 구체적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4고와 게다가 사랑하는 자와 이별(離別)하지 않으면 안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한 깊은 미운 자와 만나야만 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求)해도 얻을 수 없는 구부득고(求不得苦), 모든 것에 집착하는 데서 생기는 5취온고(五取蘊苦)의 4고를 더하여 4고8고(四苦八苦)로서 정리되었다.[2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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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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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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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용문에는 한문본에 나오는 是我, 異我, 相在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해당되는 팔리어 경전의 Thanissaro Bhikkhu의 영문 번역본 을 병기하였다. 한글본은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의 한글 번역본(번역자 미상)[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을 토대로 영문본을 참조하여 편집자가 재번역하였다. '是我, 異我, 相在'와 관련된 부분의 번역들은 다음과 같다.
    • [한문본] 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
    • [영문본] And is it fitting to regard what is inconstant, stressful, subject to change as: 'This is mine. This is my self. This is what I am'?
    • [한글본]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 [편집자]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變易法]이다. 그런데도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多聞聖弟子: 즉 4향4과의 성인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是我, This is my self]. 이것은 나의 것이다[異我, This is mine]. 나는 이러한 존재이다[相在, This is what I am]'라고 보겠는가?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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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T29n1558_p0115b06║又契經言。汝應以
    T29n1558_p0115b07║苦觀樂受者。應知此經意顯樂受有二種
    T29n1558_p0115b08║性。一有樂性。謂此樂受依自相門是可愛
    T29n1558_p0115b09║故。二有苦性。謂依異門亦是無常變壞法
    T29n1558_p0115b10║故。然觀樂時能為繫縛。諸有貪者噉먹을 담此味
    T29n1558_p0115b11║故。若觀苦時能令解脫。如是觀者得離貪
    T29n1558_p0115b12║故。佛以觀苦能令解脫故。勸有情觀樂
    T29n1558_p0115b13║為苦。
    또한 계경에서 “그대는 마땅히 괴로움으로써 낙수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였지만,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 경의 뜻은 낙수에 두 가지 종류의 성질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즉 첫째는 즐거움의 성질로서, 말하자면 이러한 낙수는 그 자체의 의미[自相門]에 근거한 것이니, 바로 참으로 애호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괴로움의 성질로서, 다른 갈래[異門]에 근거한 것이니, 역시 또한 바로 무상 변괴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성질 중] 즐거움으로 관찰할 때에는 능히 계박하게 되니, 모든 탐욕있는 자는 이러한 맛에 맛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괴로움으로 관찰할 때에는 능히 해탈하게 하니, 이와 같이 관하는 자는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으로 관하면 능히 해탈하게 되기 때문에 유정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괴로움으로 관찰하라고 권유하신 것이다.
  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b26 - T31n1612_p0848b28. 수(受)
    "云何受蘊。謂三領納。一苦二樂三不苦不樂。樂謂滅時有和合欲。苦謂生時有乖離欲。不苦不樂謂無二欲。"
  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2 / 12. 수(受)
    "어떤 것이 수온인가. 세 가지의 영납(領納: 받아들이어 감각하는 것)을 말하니, 첫째 괴로움이고, 둘째 즐거움이고, 셋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즐거움이란 사라질 적에 화합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로움이란 생겨날 적에 분리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란 이 두 가지 욕망이 없는 것이다."
  4.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 p. T02n0099_p0015a17 - T02n0099_p0015a29. 고(苦)와 무상(無常)
    "云何比丘。色爲常耶。爲非常耶。 答言。無常。世尊。 若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世尊。 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 答言。不也。世尊。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若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是見者。是爲正見。受.想.行.識亦復如是。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佛說此經時。眾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
  5.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 p. 77 / 2145. 고(苦)와 무상(無常)
    ""어떤가? 비구들아,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수·상·행·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바른 소견[正見]이니라. 수· 상·행·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렇게 보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탐욕을 떠나며, 탐욕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6. 星雲, "苦諦". 2013년 1월 16일에 확인
    "苦諦: 梵語 duhkha-satya,巴利語 dukkha-sacca。四諦之一。又稱苦聖諦(梵 duhkhārya-satya)。指聖者如實審察三界有漏之苦果(有情及器世間),如三苦、五取蘊苦、八苦等。在婆沙諸論中謂,此有漏諸果中,或生樂,或生非苦非樂(未必所生皆苦);此即說一切有部之諸師以樂受爲實有,而以苦多樂少爲苦諦之義;然經部則謂,諸蘊中全無樂受可言。成實論卷六行苦品第七十九(大三二‧二八二中):「此三受皆苦諦攝,若實是樂,苦諦云何攝?又苦爲眞實,樂相虛妄。何以知之?以觀苦心能斷諸結,非樂心也,故知皆苦。」此即主張三界皆苦之說。
     另據顯揚聖教論卷十五載,由於苦受、樂受、捨受等三受之相各有差別,故建立三苦之相,即苦苦之相、壞苦之相、行苦之相。亦即就有漏法「非可意」的苦受之運轉而言,其體性爲苦,故苦受必然即是苦;就「可意」的樂受之運轉而言,於其壞滅之時,必感受苦,故樂受亦爲苦;就「不可意非不可意」的捨受之運轉而言,亦不免有生滅遷流之時,聖者觀之,生起苦怖之心,故捨受亦爲苦。由此三苦之相觀之,是知一切有漏之法皆爲苦。
     又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六(大三一‧七一九下):「所謂生苦乃至怨憎會苦,能顯苦苦,順苦受法,苦自相義故。愛別離苦、求不得苦,能顯壞苦,已得未得,順樂受法,壞自相義故。略攝一切五取蘊苦,能顯行苦,不解脫二無常所隨不安隱義故。(中略)生苦乃至求不得苦,是世俗諦苦,世間智境界故,略攝一切五取蘊苦,是勝義諦苦。」又瑜伽師地論卷五十五,於順苦樂、不苦不樂諸行中,由自相差別而建立世俗諦,由共相一味之苦而建立勝義諦。〔增一阿含經卷十七、順正理論卷五十七、顯揚聖教論卷二、俱舍論光記卷二十二〕"
  7. 운허, "苦諦(고제)". 2013년 1월 16일에 확인
    "苦諦(고제): 【범】 dukha-satya 고제의 하나. 3계(界)에서 생사하는 과보는 고(苦)이고, 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절대의 진리이므로 고제라 함. ⇒고(苦)ㆍ고성제(苦聖蹄)"
  8.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T.99 《잡아합경》 제2권 48. 〈신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自念:‘我應隨順法,於色當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
    신심이 있는 선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른 뒤에는 색에서 떠나게 되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그러면 나는 ‘이들은 모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을 다 떠났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信心善男子正信非家出家,於色多修厭住,於受、想、行、識多修厭住已,於色得離,於受、想、行、識得離。我說是等,悉離一切生、老、病死、憂悲、惱苦。”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9. "厭" ,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梵語 nirvid。心所之名。為「欣」之對稱。即嫌惡生存現象諸苦之無量過患而欲出離之善的精神作用。大毘婆沙論卷二十八、順正理論卷十一等立之為善心所,且謂「厭」係於慧及無貪外另有之別法;俱舍論等則不別立。俱舍論光記卷四申其理由,謂厭與欣二行相乃相違之心所,於一心中不並起、不恆起,又不普於善心周遍相應,故不別立。〔大毘婆沙論卷一四三、卷一九六〕(參閱「欣厭」4194)p7235
  10. "欣厭" ,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欣厭
    心所之名。欣,指令心欣慕功德之精神作用;厭,指厭背苦集無量過患之精神作用。入阿毘達磨論卷上(大二八‧九八二中):「欣謂欣尚於還滅品,見功德已,令心欣慕,隨順修善,心有此故,欣樂涅槃,與此相應,名欣作意;厭謂厭患於流轉品,見過失已,令心厭離,隨順離染,心有此故,厭惡生死,與此相應,名厭作意。」大毘婆沙論與順正理論列其為善心所所攝。又於俱舍論,謂善心所屬於大善地法,乃自性唯善與遍一切之善心,具遍善之義,故不另立欣厭二心所。以欣厭二行相為相違之心,於一心中不並起,不恆起,又不普於善心周遍相應,故不別立之。依成唯識論卷六載,欣與欲俱無瞋之一分,厭與慧俱無貪之一分,故無別體,在善心所中不別立。〔大毘婆沙論卷二十八、卷一四三、卷一九六、順正理論卷十一、俱舍論光記卷四〕p4194
  11.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5권. p. T31n1602_p0551a17 - T31n1602_p0551b19. 고제현관(苦諦現觀)
    "如是成立無常相已。云何成立苦相。頌曰。
      生爲欲離因  滅生和合欲
      倒無倒厭離  彼因爲苦相
    論曰。若法生時爲遠離欲因。若法滅時爲和合欲因。若不了知是顛倒因。若善通達是無倒因。於一切時生厭離欲。如是應知是苦通相。復次頌曰。
      依三受差別  建立三苦相
      故說一切受  體性皆是苦
    論曰。由依三受相差別故建立三苦相。謂苦苦相壞苦相行苦相。由此相故佛說諸受皆名爲苦。謂於苦受及順苦受處法。當知建立最初苦相。於樂受及順樂受處法。當知建立第二苦相。於不苦不樂受及順此受處法。當知建立第三苦相。由不了知此第三相能爲常等顛倒生因。若能了知爲無常等無倒生因。及能發起涅槃樂欲。又由了知不了知第三苦故。於前二苦亦了不了應知。復次前二苦相世間共成。第三苦相不共成立。今當成立諸行性。是行苦。頌曰。
      當知行性苦  皆麤重隨故
      樂捨不應理  同無解脫過
    論曰。諸行性樂及性是捨不應道理。何以故。於一切位麤重所隨故。是故諸行體性是苦。若不爾如其次第於彼性樂及不苦不樂樂欲應無。應無苦及不苦不樂覺應無苦樂覺。問汝亦同然若唯一行苦性者應無樂及不苦不樂覺。答由不了故謂有。問我亦同然由不了故謂有。答不然。無解脫過故。若於性樂及不苦不樂諸行了知。是苦苦諦現觀。由此次第乃至證得究竟解脫。若不了故。謂爲苦者即是顛倒。不應能證究竟寂滅。"
  12. 星雲, "苦智". 2013년 1월 6일에 확인
    "苦智: 梵語 duhkha-jñāna。十智之一。了苦諦道理之智,即緣苦諦而作「苦、空、無常、無我」之四行相,其惑斷除時所得之無漏智。依品類足論卷一(大二六‧六九四上):「謂於五取蘊,思惟非常、苦、空、非我,所起無漏智。」又大毘婆沙論卷一○六(大二七‧五四八中):「緣苦聖諦,四行相轉,故名苦智。」亦即入於見道之時,以世俗智緣苦諦之境,至第二剎那,與法智共生之智,稱爲苦智。其中,於第一剎那之後無間,緣觀欲界苦諦之境,所生起之無漏法智忍,稱爲苦法智忍;於其無間,所生起之無漏法智,稱爲苦法智。〔俱舍論卷二十六、顯揚聖教論卷二〕"
  13. 곽철환 2003, "십지(十智)". 2013년 1월 5일에 확인
    "십지(十智): 모든 지혜를 열 가지로 나눈 것.
    (1) 세속지(世俗智). 세속의 일을 아는 지혜.
    (2) 법지(法智). 욕계의 사제(四諦)를 체득한 지혜.
    (3) 유지(類智). 색계·무색계의 사제(四諦)를 체득한 지혜.
    (4) 고지(苦智). 욕계·색계·무색계의 고제(苦諦)를 체득한 지혜.
    (5) 집지(集智). 욕계·색계·무색계의 집제(集諦)를 체득한 지혜.
    (6) 멸지(滅智). 욕계·색계·무색계의 멸제(滅諦)를 체득한 지혜.
    (7) 도지(道智). 욕계·색계·무색계의 도제(道諦)를 체득한 지혜.
    (8) 타심지(他心智).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
    (9) 진지(盡智). 자신은 이미 고(苦)를 알았고, 집(集)을 끊었고, 멸(滅)을 체득했고, 도(道)를 닦았다고 아는 지혜.
    (10) 무생지(無生智). 자신은 이미 고(苦)를 알았기 때문에 다시 알 필요가 없고, 집(集)을 끊었기 때문에 다시 끊을 필요가 없고, 멸(滅)을 체득했기 때문에 다시 체득할 필요가 없고, 도(道)를 닦았기 때문에 다시 닦을 필요가 없다고 아는 지혜."
  14. 운허, ""苦(고)". 2013년 1월 16일에 확인
    "苦(고): 4제(諦)의 하나. ⇒고제(苦諦)"
  15.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3권. p. T31n1605_p0674a04 - T31n1605_p0675a06. 고제(苦諦)
    "云何決擇。略說決擇有四種。謂諦決擇法決擇得決擇論議決擇。云何諦決擇。謂四聖諦。苦諦集諦滅諦道諦。云何苦諦。謂有情生及生所依處。何等有情生即有情世間。謂諸有情生在那落迦傍生餓鬼人天趣中。人謂東毘提訶。西瞿陀尼。南贍部洲。北俱盧洲。天謂四大王眾天三十三天。夜摩天睹史多天樂變化天他化自在天。梵眾天梵輔天大梵天。少光天無量光天極光淨天。少淨天無量淨天遍淨天。無雲天福生天廣果天。無想有情天無煩天無熱天善現天善見天色究竟天。無邊空處天無邊識處天無所有處天非想非非想處天。何等生所依處即器世間。謂水輪依風輪。地輪依水輪。依此地輪有蘇迷盧山七金山四大洲八小洲內海外海。蘇迷盧山四外層級四大王眾天。三十三天所居處別。外輪圍山虛空宮殿。若夜摩天睹史多天化樂天他化自在天。及色界天所居處別。諸阿素洛所居處別。及諸那落迦所居處別。謂熱那落迦。寒那落迦。孤獨那落迦。及一分傍生餓鬼所居處別。乃至一日一月周遍流光所照方處名一世界。如是千世界中有千日千月千蘇迷盧山王千四大洲千四大王眾天千三十三天千夜摩天千睹史多天千樂變化天千他化自在天千梵世天。如是總名小千世界。千小千界總名第二中千世界。千中千界總名第三大千世界。如此三千大千世界。總有大輪圍山周匝圍繞。又此三千大千世界同壞同成。譬如天雨滴如車軸。無間無斷從空下注。如是東方無間無斷無量世界。或有將壞。或有將成。或有正壞或壞已住。或有正成或成已住。如於東方乃至一切十方亦爾。若有情世間若器世間。業煩惱力所生故。業煩惱增上所起故。總名苦諦。復有清淨世界。非苦諦攝。非業煩惱力所生故。非業煩惱增上所起故。然由大願清淨善根增上所引。此所生處不可思議。唯佛所覺。尚非得靜慮者靜慮境界。況尋思者。復次苦相差別有八。謂生苦老苦病苦死苦怨憎會苦愛別離苦求不得苦。略攝一切五取蘊苦。生何因苦。眾苦所逼故。餘苦所依故。老何因苦。時分變壞苦故。病何因苦。大種變異苦故。死何因苦。受命變壞苦故。怨憎會何因苦。合會生苦故。愛別離何因苦。別離生苦故。求不得何因苦。所悕不果生苦故。略攝一切。五取蘊何因苦。麤重苦故。如是八種略攝爲六。謂逼迫苦轉變苦合會苦別離苦所悕不果苦麤重苦。如是六種廣開爲八。若六若八平等平等。如說三苦。此中八苦。爲三攝八八攝三耶。展轉相攝。所謂生苦老苦病苦死苦怨憎會苦。能顯苦苦。愛別離苦求不得苦。能顯壞苦。略攝一切五取蘊苦。能顯行苦。如說二苦。謂世俗諦苦。勝義諦苦。何者世俗諦苦。何者勝義諦苦。謂生苦乃至求不得苦。是世俗諦苦。略攝一切五取蘊苦。是勝義諦苦。云何苦諦共相。謂無常相苦相空相無我相。何等無常相。略有十二。謂非有相壞滅相變異相別離相現前相法爾相剎那相相續相病等相種種心行轉相資產興衰相器世成壞相。何等非有相。謂蘊界處於一切時我我所性常非有故。何等壞滅相。謂諸行生已即滅。暫有還無故。何等變異相。謂諸行異生由不相似相續轉故。何等別離相。謂於諸行失增上力。或他所攝執爲己有。何等現前相。謂正處無常由因隨逐今受無常故。何等法爾相。謂當來無常由因隨逐定當受故。何等剎那相。謂諸行剎那後必不住故。何等相續相。謂無始時來諸行生滅相續不斷故。何等病等相。謂四大時分受命變異故。何等種種心行轉相。謂於一時起有貪心。或於一時起離貪心。如是有瞋離瞋有癡離癡。若合若散若下若舉。若掉離掉。若不寂靜若寂靜。若定不定。如是等心行流轉故。何等資產興衰相。謂諸興善終歸衰變故。何等器世成壞相。謂火水風三種成壞有三災。頂謂第二第三第四靜慮。第四靜慮外宮殿等。雖無外災成壞。然彼諸天與宮殿等俱生俱滅說有成壞。復有三種中劫。所謂饑饉疫病刀兵。此小三災劫究竟位方乃出現。謂世界成已。一中劫初唯減。一中劫後唯增。十八中劫亦增亦減。二十中劫世界正壞。二十中劫世界壞已住。二十中劫世界正成。二十中劫世界成已住。合此八十中劫爲一大劫。由此劫數顯色無色界諸天壽量。如說以壽盡故福盡故業盡故。彼彼有情從彼彼處沒。"
  16.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3권. pp. 62-67 / 159. 고제(苦諦)
    "[문] 결택(決擇)이란 무엇입니까?
    [답] 간략하게 설명하면 결택에는 네 종류가 있다. 제결택(諦決擇)ㆍ법결택(法決擇)ㆍ득결택(得決擇)ㆍ논의결택(論議決擇)을 가리킨다.
    [문] 제결택이란 무엇입니까?
    [답] 4성제(聖諦)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이다.
    [문] 고제란 무엇입니까?
    [답] 유정이 태어나는 자체와 태어나고자 의지하는 처소를 말한다.
    [문] 어떠한 것이 유정이 태어나는 유정세간(有情世間)입니까?
    [문] 모든 유정이 태어나는 나락가(奈落迦:지옥)ㆍ방생(傍生:축생)ㆍ아귀(餓鬼)ㆍ인간(人間)ㆍ천상(天上)의 취(趣)이다. 인간이란 동비제하(東毘提詞)ㆍ서구다니(西瞿陁尼)ㆍ남섬부주(南贍部洲)ㆍ북구로주(北俱盧洲)를 가리킨다.
    천상이란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사다천(觀史陁天)ㆍ낙변화천(樂變化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중천 (梵衆天)ㆍ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극광견전(極光見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무운천(無雲天)ㆍ복생천(福生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ㆍ무변공처천(無邊空處天)ㆍ무변식처천(無邊識處天)ㆍ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ㆍ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다.
    [문] 어떠한 것이 태어나는 것에 의지가 되는 처소, 즉 기세간(器世間)입니까?
    [답] 수륜(水輪)은 풍륜(風輪)에 의지하고, 지륜(地輪)은 수륜(水輪)에 의지하는 바를 가리킨다. 이 같은 지륜에 의지하여 소미로산(蘇迷盧山:수미산)ㆍ칠금산(七金山)ㆍ사대주(四大洲)ㆍ팔소주(八小洲)ㆍ내해(內海)ㆍ외해(外海)가 있다. 소미로산의 사방 바깥층에는 단계적으로 사대왕중천과 삼십삼천이 거주하는 처소가 따로 있고, 다시 외륜(外輪) 위의 허공에도 천궁(天宮)들이 있으니, 바로 야마천ㆍ도사다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이다. 또 색계천이 거주하는 처소는 따로 있다. 모든 아소락(阿素洛:阿修羅)이 거주하는 처소도 따로 있고, 또 모든 나락가가 거주하는 처소도 따로 있으니 열나락가(熱那落迦:熱地獄)ㆍ한나락가(寒那落迦:寒地獄)ㆍ고독나락가(孤獨那落迎)를 가리킨다. 아울러 일부분의 방생과 아귀가 거주하는 처소도 따로 있다. 이렇게 하나의 해, 하나의 달이 주변으로 빛을 뿌려 그 비춰지는 방향과 처소를 하나의 세계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천 개의 세계 속에는 천 개의 해와 천 개의 달과 천 개의 소미로산, 천 곳의 사대주, 천 곳의 사대왕중천, 천 곳의 삼십삼천, 천 곳의 야마천, 천 곳의 도사다천, 천 곳의 화락천, 천 곳의 타화자재천, 천 곳의 범세천(控世天)이 있다. 이러한 것을 총괄해서 소천세계(小千世界)라 이름한다. 다시 천 개의 소천세계를 총괄해서 세 번째로 중천세계(中千世界)라고 이름한다. 천 개의 중천세계를 총괄해서 두 번째로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함께 존재하는 그 바깥 태두리[大輪]를 철위산(鐵圍山)이 둘러싸고 있다.
    또 이 같은 삼천대천세계는 동시에 무너지고 동시에 이루어진다.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이 마치 물레방아같이 끊임없이 공중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것처럼, 동방에도 끊임없이 무량한 세계가 있다. 어떤 것은 무너지는 중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생기는 중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막 무너지려는 참이고, 어떤 것은 이미 없어 진 채로 남아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생겨나는 참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미 이루어진 채로 남아 있기도 하다. 동방의 경우처럼 모든 열 군데의 방향도 이와 같다.
    유정세간이나 기세간이나 모두 업번뇌(業煩惱)의 세력에서 생겨나고, 업번뇌의 증상에서 일어나기에 총괄적으로 고제라고 이름한다. 다시 고제에 수렴되지 않는 청정한 세계가 있으니, 이는 업번뇌의 세력에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고, 업번뇌가 늘어나는 것에 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직 커다란 원력에 비롯해서 그 청정한 선근이 증상되어 인도받게 된다. 이와 같이 태어나는 처소는 참으로 불가사의하기에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게 된다. 이것은 정려(靜慮)에 의해서 얻어지는 정려의 경계도 아니니, 하물며 심사(尋思)로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다시 고의 모양에 대한 차별에도 여덟 종류가 있다.
    생고(生苦)ㆍ노고(老苦)ㆍ병고(病苦)ㆍ사고(死苦)ㆍ원증회고(怨憎會苦)ㆍ애별리고(愛別離苦)ㆍ구부득고(求不得苦)이다. 간략하게 이 같은 일체의 고를 수렴하게 되면 바로 5취온의 고가 된다.
    [문] 태어난다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화합된 고[聚苦]에 핍박받기 때문이며, 그 밖의 다른 고에 의지받기 때문이다.
    [문] 늙는다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그 시분이 변화하여 없어지는 고통 때문이다.
    [문] 병든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대종(大種)이 변화하여 달라지는 고통 때문이다.
    [문]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그 목숨이 변화하여 없어지는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문] 원수를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고통이 됩니까?
    [답] 서로 만나게 되면 고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문] 좋아하는 것과의 이별이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이별에서 고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문] 얻지 못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답] 바라더라도 과보가 없다는 고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 간략하게 이 같은 일체의 고를 수렴하는 5취온은 어떤 이유에서 고가 됩니까?
    [문] 추중(麤重)하는 고통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고를 간략하게 수렴하면 여섯 가지의 고가 있으니, 즉 핍박고(逼迫苦)ㆍ전변고(轉變苦)ㆍ합회고(合會苦)ㆍ별리고(別離苦)ㆍ소희불과고(所悕不果苦)ㆍ추중고(麤重苦)이다. 이 같은 여섯 가지의 고를 확대하면 여덟 가지의 고가 성립하지만 여섯 가지나 여덟 가지나 평등하다. 그 평등한 것이 3고(苦)를 설명했던 것처럼, 이러한 가운데 여덟 가지 고가 있다.
    [문] 3고가 8고를 수렴합니까? 아니면 8고가 3고를 수렴하게 됩니까?
    [답] 전전하여 그 모양을 수렴하는 것이니, 소위 생고(生苦)ㆍ노고(老苦)ㆍ병고(病苦)ㆍ사고(死苦)ㆍ원증회고는 고고(苦苦)를 드러내는 것이고, 애별리고ㆍ구부득고는 괴고(壞苦)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체의 5취온고를 간략하게 수렴하면 모두 행고(行苦)를 드러내는 것이니, 앞서의 두 가지고, 즉 세속제고(世倚諦苦)와 승의제고(勝義諦苦)와 동일하다.
    [문] 어떠한 것이 세속제고이고, 어떠한 것이 승의제고입니까?
    [답] 생고에서 구부득고까지가 세속제고이다. 이 같은 일체의 고를 간략하게 수렴하는 5취온의 고가 바로 승의제고이다.
    [문] ‘고제의 공한 모양’이란 무엇입니까?
    [답] 무상상(無常相)ㆍ고상(苦相)ㆍ공상(空相)ㆍ무아상(無我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무상상입니까?
    [답] 대략 열두 종류가 있다. 바로 비유상(警喩相)ㆍ괴멸상(壞滅相)ㆍ변이상(變異相)ㆍ별리상(別離相)ㆍ현전상(現前相)ㆍ법이상(法爾相)ㆍ찰나상(刹那相)ㆍ상속상(相續相)ㆍ 병등상(病等相)ㆍ종종심행전상(種種心行轉相)ㆍ자산흥쇠상(資産興衰相)ㆍ기세성괴상(器世成壞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비유상입니까?
    [답] 일체의 시분에 처해서 아(我)와 아소(我所)의 성품이 언제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괴멸상입니까?
    [답] 제행(諸行)이 생기자마자 없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잠깐 존재하고서 다시 없어지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변이상입니까?
    [답] 제행이 이생(已生)하는 것이니, 그 비슷하지 않은 모양을 상속하는 것에 연유해서 유전되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별리상입니까?
    [문] 제행이 증상하는 세력을 앓은 것이거나, 또는 다른 것에 귀속되었어도 여전히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현전상입니까?
    [답] 바로 무상함에 처해서 그 인(因)이 가까워짐에 연유하여 지금 무상함을 받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법이상입니까?
    [답] 장차 무상이 다가오는 것이니, 그 인이 가까워짐에 연유해서 반드시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찰나상입니까?
    [답] 제행은 그 머무는 찰나 이후에는 반드시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상속상입니까?
    [답] 무시(無始)의 시분 이래로 제행이 생기고 멸하는 것이 부단히 상속되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평등상입니까?
    [답] 4대가 시분에 따라 그 목숨을 받아서 변화하여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종종심행전상입니까?
    [답] 동일한 시분에 탐심이 일어나거나 또는 동일한 시분에 탐심을 여의는 것을 가리킨다. 이같이 노여움과 노여움을 여의는 것이 있게 되고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이 있게 된다, 만약 만나게 되면 흩어지고, 만약 내려가면 올라가고, 만약 쳐들면 쳐드는 것을 여의게 되고, 만약 조용하다면 조용하지 못하게 되고, 만약 안정되면 안정하지 못하는, 이러한 것들이 바로 심행(心行)이 유전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이 자산흥쇠상입니까?
    [답] 홍하는 것은 모두가 망하는 변화 때문이다.
    [문] 어떠한 것이 기세성괴상입니까?
    [답] 화(火)ㆍ수(水)ㆍ풍(風)의 세 종류가 이루어졌다가 무너지는 것에서 삼재(三災)가 있게 된다. 위로는 제2정려ㆍ제3정려ㆍ제4정려까지를 말한다. 제4정려 이상의 천궁 따위는 비록 이루어졌다가 무너지는 외부의 재앙은 없으나, 모든 천상의 궁전 등도 함께 생겨나고 함께 없어지는 것이기에 ‘이루어졌다가 무너진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세 종류의 중겁(中劫)이 있으니, 이른바 기근(飢饉)ㆍ역병(疫病:전염병)ㆍ도병(刀兵: 전쟁)이다. 이 같은 소삼재겁(小三災劫)의 구경위(究竟位)가 방위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1중겁(中劫)의 초기에는 수명이 감소하기만 하고, 1중겁의 후기에는 수명이 늘어나기만 한다. 이와 같이 18중겁은 그 수명이 늘어나고 감소되는 것이 반복된다. 20중겁이 되면 세계가 바로 무너지기 시작하고, 20중겁 동안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20중겁 동안 세계가 무너진 채로 남아 있으며, 20중겁 동안 세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며, 20중겁 동안 세계가 이루어진 채로 남아 있다. 이것을 모두 합한 80중겁이 l대겁(大劫)이 된다. 이 같은 겁수(劫數)에 인연해서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천상의 수명이 나타나게 된다. 또 이미 해설한 것처럼 그 수명이 다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복이 다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업이 다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그러한 곳들에 있는 유정들이 그러한 처소에서 마침내 사라지게 된다."
  17. 제관 록 & T.1931, p. T46n1931_p0776a05 - T46n1931_p0776b21. 고제와 25유
    "自下明化法四教。第一三藏教者。一修多羅藏(四阿含等經)二阿毘曇藏(俱舍婆沙等論)三毘尼藏(五部律)此之三藏名通大小。今取小乘三藏也。大智度論云。迦旃延子。自以聰明利根。於婆沙中明三藏義。不讀衍經。非大菩薩。又法華云。貪著小乘三藏學者。依此等文故。大師稱小乘爲三藏教。此有三乘根性。初聲聞人依生滅四諦教。言四諦者。一苦諦。二十五有依正二報是。言二十五有者。四洲四惡趣六欲。并梵天四禪四空處無想五那含(四洲四趣成八。六欲天并梵王天成十五。四禪四空處成二十三。無想天及那含天成二十五)別則二十五有。總則六道生死。一地獄道。梵語捺洛迦。又語泥黎。此飜苦具。而言地獄者。此處在地之下。故言地獄。謂八寒八熱等大獄。各有眷屬其類無數。其中受苦者。隨其作業各有輕重。經劫數等。其最重處。一日之中八萬四千生死。經劫無量。作上品五逆十惡者。感此道身。二畜生道。亦云旁生。此道遍在諸處。披毛戴角。鱗甲羽毛。四足多足。有足無足。水陸空行。互相吞噉。受苦無窮。愚癡貪欲作中品五逆十惡者。感此道身。三餓鬼道。梵語闍黎哆。此道亦遍諸趣。有福德者。作山林塚廟神。無福德者。居不淨處。不得飮食。常受鞭打填河塞海。受苦無量。諂誑心意作下品五逆十惡。感此道身。四阿修羅道。此飜無酒。又無端正又無天。或在海岸海底宮殿嚴飾。常好鬥戰怕怖無極。在因之時懷猜忌心。雖行五常欲勝他故。作下品十善。感此道身。五人道。四洲不同。謂東弗婆提(壽二百五十歲)南閻浮提(壽一百歲)西瞿耶尼(壽五百歲)北鬱單越(壽一千歲命無中夭。聖人不出其中。即八難之一)皆苦樂相間。在因之時行五常五戒。五常者。仁義禮智信。五戒者。不殺不盜不邪淫不妄語不飮酒。行中品十善。感此道身。六天道。二十八天不同(欲界六天。色界十八天。無色界四天)初欲界六天者。一四天王天(居須彌山腹)二忉利天(居須彌山頂。自有三十三天。已上二天單修上品十善。得生其中)三夜摩天。四兜率天。五化樂天。六他化自在天(已上四天空居。修上品十善。兼坐未到定。得生其中)次色界十八天分爲四禪。初禪三天(梵眾梵輔大梵)二禪三天(少光無量光光音)三禪三天(少淨無量淨遍淨)四禪九天(無雲福生廣果。已上三天凡夫住處。修上品十善坐禪者得生其中。無想天外道所居。無煩無熱善見善現色究竟。已上五天第三果居處。上之九天離欲麤散。未出色籠故名色界。坐得禪定故得禪名)三無色界四天(空處識處無所有處非非想。已上四天只有四陰而無色蘊。故得名也)上來所釋。從地獄至非非想天。雖然苦樂不同。未免生而復死死已還生。故名生死。此是藏教實有苦諦。"
  18. 운허, "阿毘達磨俱舍論(아비달마구사론)". 2013년 6월 29일에 확인
    "阿毘達磨俱舍論(아비달마구사론): 【범】 Abhidharmakośaśāstra. 30권. K-955, T-1558. 세친(世親: Vasubandhu) 지음.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1년 6월에서 654년 9월 사이에 대자은사(大慈恩寺)에서 번역하였다. 줄여서 『구사론』이라 하고, 별칭으로 『대법장론』ㆍ『신역구사』라고도 한다. 이 논은소승 여러 부파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아비달마 논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구사론』은 기본적으로는 아비달마 족신(足身)의 7론이나 『대비바사론』을 근거로 하면서도 이전의 논서와는 그 체계를 달리하는 법승(法勝)의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과 이를 개량 증보한 『아비담심론경(阿毘曇心論經)』 및 법구(法救)의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의 조직과 내용을 토대로 하여 작성된 논서이다. 이 논서의 조직은 『아비담심론』에 따라 철저하게 4성제를 기초로 한 것으로, 「계품(界品)」과 「근품(根品)」에서 제법의 본질과 작용을 밝힌 다음 「세간품(世間品)」과 「업품(業品)」「수면품(隨眠品)」에서 고(苦)의 실상과 그 원인과 조건이 되는 업과 번뇌를 밝히고, 다시 「현성품(賢聖品)」과 「지품(智品)」「정품(定品)」에서 고멸(苦滅)의 열반과 그 원인과 조건이 되는 지(智)와 선정(禪定)에 대해 논설하고 있는 것이다. 제1 「분별계품」에서는 만유의 근본이 되는 제법의 본질[體]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실천적 입장에서 유루법과 무루법을, 이론적 입장에서 유위법과 무위법을 분류한다. 그리고 다시 제법을 5온(蘊)ㆍ12처(處)ㆍ18계(界)로 분류 해석하고, 나아가 18계에 대해 유견(有見)ㆍ무견(無見), 유대(有對)ㆍ무대(無對), 선ㆍ불선ㆍ무기 등 여러 갈래로 그 특징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제2 「분별근품」에서는 만유를 차별 짓는 제법의 작용[用]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일체의 유정으로 하여금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뛰어난 힘[增上力]으로 ‘근(根)’이라 일컬어지는 22가지 존재를 분류하여 유루ㆍ무루 등의 온갖 갈래로 이것의 성질을 밝히고, 유정이 처한 온갖 상태에서 이것의 획득과 상실을 논설한 다음, 제법을 다시 색(色)ㆍ심(心)ㆍ심소(心所)ㆍ불상응행(不相應行)ㆍ무위(無爲)의 5위(位)로 나누어 불생(不生)의 무위를 제외한 4위의 구생(俱生) 관계와 그것들의 인과적 관계 즉 6인(因)ㆍ4연(緣)ㆍ5과(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제3 「분별세간품」에서는 인연에 의해 조작된 결과로서의 현실세계[苦]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유정세간의 여러 다양한 형태를 밝히고, 그것의 윤회전생을 12인연의 삼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로 설명한 다음 기세간(器世間) 즉 유정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구조와, 나아가 일체 세간의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의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는 바로 4제의 고제(苦諦)를 밝히는 장이다. 제4 「분별업품」에서는 차별의 현실 세계의 직접적 원인[因]이 되는 업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선ㆍ악의 표업과 무표업과 별해탈률의 즉 수계(受戒)에 대해 논설하고, 여러 경론에서 설한 온갖 업을 다양하게 분류하며, 나아가 선ㆍ악의 10업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제5 「분별수면품」에서는 현실 세계의 간접적 원인[緣], 즉 온갖 불선업의 근본원인이 되는 번뇌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98수면(隨眠)의 성질과 작용, 수면의 수증(隨增), 그리고 방론(傍論)으로 삼세실유에 관해 논설하고, 경에 설해진 여타의 번뇌에 대해 분류 해석한 다음 마지막으로 번뇌의 단멸과 이계(離繫)의 증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상의 두 품은 집제(集諦)를 밝히는 장이다. 제6 「분별현성품」에서는 번뇌소멸의 이상[滅]인 현자(賢者)와 성자(聖者)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4성제에 대해 설명하고, 성자의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는 3현위(賢位)ㆍ4선근위(善根位)와 그것의 수행법, 그리고 견도ㆍ수도ㆍ무학도와 그러한 상태에 이른 성자위, 이를테면 예류ㆍ일래ㆍ불환ㆍ아라한과의 단계를 논설한 다음, 마지막으로 경에서 설한 종합적 수행도로서 37보리분법(菩提分法)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제7 「분별지품」에서는 이상 세계의 직접적 원인[因]이 되는 지(智)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먼저 번뇌의 단멸과 이계의 증득을 가능하게 하는 인(忍)과 지(智)에 대해 분별하고, 아울러 10지(智)의 상을 밝힌 다음 ‘지’에 의해 성취되는 불타의 18불공법(不共法)과 성자 등과도 공통되는 6통(通) 등의 법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제8 「분별정품」에서는 이상 세계의 간접적 원인[緣], 즉 ‘지’를 획득하는 조건이 되는 선정에 대해 분별하고 있는데, 4정려ㆍ4무색정 등의 여러 선정과, 수정(修定)의 공덕으로서 4무량(無量)ㆍ8해탈ㆍ10변처(遍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두 품은 도제(道諦)를 밝히는 장이다. 제9 「파집아품」에서는 오로지 무아설에 입각한 법의 이론으로만 해탈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부(犢子部)의 보특가라(補特伽羅)와, 수론(數論, Sakhya)과 승론(勝論, Vaiśeika)의 자아에 대해 비판하고서 경량부가 설한 상속(相續)의 전변(轉變)과 차별(差別)로써 업(5온)의 인과상속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부처님의 입멸 후 성문(聲聞) 제자들의 관심은 불타의 교법을 어떻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었으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아비달마 논장(論藏)이다.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정리 해석은 이미 경장(經藏)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부파 분열 이후 그것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마침내 경장 속에 포함시킬 수 없을 정도로 되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이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부파의 경장과 율장은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논장의 경우는 그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는데, 이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한다. ⇒구사종(俱舍宗)"
  19. 星雲, "阿毘達磨俱舍論". 2013년 6월 29일에 확인
    "阿毘達磨俱舍論:  梵名 Abhidharmakośa-śāstra。略稱俱舍論。意譯對法藏論、聰明論。乃部派佛教教理之集大成,大毘婆沙論之綱要書。西元四五○年世親菩薩(梵 Vasubandhu)所著。漢譯本有二,一爲陳天嘉四年(563),眞諦所譯之阿毘達磨俱舍釋論二十二卷,世稱舊俱舍;對之,唐永徽二年(651)玄奘所譯之三十卷,歷來爲法相宗之基本教本,則稱新俱舍。兩本均收於大正藏第二十九册。
     本論在印度、西藏、中國、日本均廣受研究,優良之注釋書亦多。要理解部派佛教,以及大乘佛教之基礎,則俱舍論之價值甚大。世親雖一面以說一切有部教學爲標準,然亦以批判態度介紹經量部與大眾部等學說,以「理長爲宗」之立場造俱舍論。又大乘經典及大乘論書以有部教學爲基礎,或爲破斥有部而作的佔多數。故此一以批判態度將繁雜之有部教學整理而成之俱舍論,乃廣受大小乘學者之珍視。本論之教理多採自大毘婆沙論,又本論之體系與教理之整理方法,傳說曾受法救所造雜阿毘曇心論之影響。
     本書基本反映當時流行於迦濕彌羅之有部關於世界、人生及修行之主要學說,竝吸收經量部之許多觀點。內容由界、根、世間、業、隨眠、賢聖、智、定等八品構成,另又附錄破我品,則成九品。其中:(一)界品與(二)根品,說明現實世界(物質與精神界)成立之要素「法」,竝說明有爲、無爲、五蘊、十二處、十八界、二十二根、六因四緣等名相。(三)世間品,說明地獄乃至天界之生物世界(有情世界)與物理世界(器世界),竝介紹印度之宇宙觀及地理說,此外,更解說十二緣起,說明輪迴之相狀,此即業感緣起論。(四)業品,說明輪迴之原因,竝細分業之種類。(五)隨眠品,敘述煩惱,將其分類爲六大煩惱、十隨眠、八十八使、百八煩惱,竝介紹過去、未來、現在等三世實有論,而加以破斥。世間、隨眠、業等三品係明示迷之世界(有漏),至於(六)賢聖品,則將悟入之階位分爲凡夫位之三賢、四善根,聖者位之四雙八輩,又說明悟入之觀法即四諦十六現觀。(七)智品,則是說明世俗智、法智、類智等十智爲獲得開悟之智慧,竝說明十八不共法。(八)定品,除說明產生聖智基礎之禪定外,復說明四禪、四無色定、三解脫門、四無量心等其他禪定。(九)破我品,則是站在無我之立場,以破斥犢子部之非即非離蘊我及勝論之我等,即明示無我之道理。
     如上所說,本論將廣博繁雜之毘婆沙教理技巧地整理爲八品,體系嚴整,論旨明徹,冠於諸論,爲有部教學之綱要書。蓋古來諸師論及本論之宗,或謂屬於有部,或爲二十部中之理長爲宗,或爲經部之別宗,或謂稟承依有部,意許取理長等諸異說。
     在我國,俱舍論譯出後即取代前此之毘曇宗。日本於奈良時代傳入俱舍論而成立俱舍宗之一派,且以俱舍論爲基礎之研學傳統延續至現代。在印度以及西藏佛教亦盛行研究此論。梵本已於西藏發現,然僅刊行偈頌(V.V. Gokhale: The Text of the Abhidharmakośakārikā of Vasubandhu, 1946),俱舍本論則在印度巴特那(Patna)出版(P. Pradhan: Abhidharmakośa-bhāsya of Vasubandhu, 1967)。偈頌與俱舍論均有西藏譯本,即:Chos-mvon-pahimdsod-kyi tshig lehur byas-pa(Abhidharmakośa-kārikā,北京版 115, pp. 115~127 與 Chos-mvon-pahi mdsod-kyi bśad-pa(Abhidharmakośa-bhāsya,北京版 115, pp. 127~283)。
     據傳在印度曾有德慧、世友、安慧、陳那、稱友、滿增(梵 Pūrnavardhana)、寂天(梵 Śamathadeva)等之注釋,現存者唯稱友所作。又有 U. Wogihara:Sphutārthā Abhidharmakośavyākhyā, 1~7(Tokyo, 1932~1936),此釋本亦有西藏譯本,頗受重視。即:Chos-mvon-pahi mdsod-kyi hgrel-bśad(Abhidharmakosa-tīkā,北京版 116, pp. 43~117),西藏譯除此外猶保存有滿增、寂天、陳那等之注釋。
     漢譯有安慧俱舍論實義疏之殘本五卷,敦煌本有此書(收於大正藏第二十九册),眞諦注舊俱舍之疏十六卷、義疏五十三卷等已逸失。注釋玄奘之譯著,有普光之俱舍論記三十卷及法寶之俱舍論疏三十卷,向來被視爲研究俱舍論之指南書。圓輝之俱舍論頌疏三十卷亦受珍視,此疏省略爭論部分,簡明地解釋有部之教理,故容易理解。近年日人旭雅撰冠導俱舍論一書亦常被利用;法宣著俱舍論講義十卷,對初學者極有助益。我國有演培之俱舍論頌講記一書。〔大唐西域記卷四、歷代三寶紀卷九、開元釋教錄卷七、卷八、阿毘達磨論の研究(木村泰賢)、小乘佛教思想論(木村泰賢著,演培譯)、俱舍論講義(舟橋一哉)、俱舍論の教義及び其發達(舟橋一哉)、俱舍論の原典解明(山口益、舟橋一哉)、Th. Stcherbatsky: The central conception of Buddhism and the meaning of the word“Dharma”, London, 1923; O. Rosenberg: Die Probleme der buddhistischen Philosophie, Heidelberg, 1924〕 p3644"
  20.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고타마는 이상과 같은 도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弟子)·신자(信者)·이교도(異敎徒:外道)들에게 설교하였는데, 설교의 강격(綱格)으로서 종합요약된 것이 <4제설(四諸說)이다. 그것은 다음네 가지 종류의 진리를 가리킨다. (1) 고제(苦諦):범부(凡夫)의 생존은 고(苦)라고 하는 진리 (2) 집제(集諦):범부의 여러 가지 고뇌는 결국 번뇌 특히 망집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진리 (3) 멸제(滅諦):망집을 완전히 소멸함에 따라 고(苦)를 소멸해 버린 열반이 해탈의 이상경(理想境)이라고 하는 진리 (4) 도제(道諦):이 고(苦)를 소멸로 인도하는 수도법은 '8정도(八正道)'에 불과하다고 하는 진리. 8정도(八正道:또는 八聖道)라 함은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을 이른다."
  21. 운허, "依正二報(의정이보)". 2013년 6월 6일에 확인
    "依正二報(의정이보): 의보(依報)ㆍ정보(正報). 전세(前世)의 업에 따라 얻은 2종의 과보. 정보는 5온(蘊)이 화합하여 이룬 신체, 의보는 신체가 의거(依居)하는 산하 대지ㆍ의복ㆍ음식 등."
  22. 운허, "二報(이보)". 2013년 6월 6일에 확인
    "二報(이보):
    [1] 의보(依報)ㆍ정보(正報).
    [2] 일신상(一身上)에 받는 2종의 과보, 총보(總報)ㆍ별보(別報). 예를 들면 인생으로 태어난 것은 총보, 귀(貴)ㆍ천(賤)ㆍ빈(貧)ㆍ부(富)가 있는 것은 별보."
  23. 佛門網, "依正二報". 2013년 6월 6일에 확인
    "依正二報:
    出處: 佛光電子大辭典
    解釋:
    即依報與正報。略稱二報。正報,即指依過去善惡業因而感得之果報正體,如生於人間,則具備四肢五官,受人間之果報;生於畜牲,則具備羽毛齒革,受畜牲之果報。依報,即指依於正報而受相應止住之所的果報,如受人間之正報者,則必有與其相應之家屋器物等依報;受畜牲之正報者,則必有與畜牲相應之巢穴等依報。
    概言之,依報指國土世間,即有情依託之處所;正報指眾生世間,即能依之有情。華嚴經行願品疏鈔卷二(卍續七‧四二四上):「依者,凡聖所依之國土,若淨若穢;正者,凡聖能依之身,謂人天、男女、在家出家、外道諸神、菩薩及佛。」又以依正二報均屬果報之一種,故又可分別稱爲依報依果(略稱依果)、正報正果(略稱正果)。〔菩薩瓔珞本業經卷上、無量壽經疏(慧遠)、觀經玄義分、往生論註卷下、大明三藏法數卷二十七〕
    頁數: p3054"
  24.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고: 苦 고타마는 29세에 왕자의 위치와 처자까지 버리고 출가하였으나 그가 출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인생은 고(苦)이다"라고 하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현실세계의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직시(直視)한 고타마가 얻은 것은, 모든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뜻대로 하고 싶다는 자기모순적인 욕망이 인간의 내면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고라고 하며 자기모순적인 욕망이야말로 고의 원인이라고 밝혀 낸 것이다. 후에 이 고는 구체적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4고와 게다가 사랑하는 자와 이별(離別)하지 않으면 안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한 깊은 미운 자와 만나야만 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求)해도 얻을 수 없는 구부득고(求不得苦), 모든 것에 집착하는 데서 생기는 오취온고(五取蘊苦)의 4고를 더하여 4고8고(四苦八苦)로서 정리되었다."
  25.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3법인,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3법인: 三法印 법인이란 불교의 기치 또는 슬로건이라는 것으로서 불교의 일대 특색을 나타낸 것이다. 최초에는 '일체개고 (一切皆苦)'·'제행무상 (諸行無常)'·'제법무아 (諸法無我)'의 세 가지를 가리켰으나, 후에는 '일체개고'를 대신하여 '열반적정'이 들거나 혹은 이 두 가지를 넣어서 4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한다. 고타마는 이 현실세계는 모두 고(苦)이다(一切皆苦)라고 하는 현실인식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고(苦)인 원인은 인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기모순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諸行無常), 인간은 항상 불변을 바라고 또 모든 것은 무엇 하나 고정적 실체인 것은 없는데도(諸法無我) 그것을 실체라고 고집하려 하는 데에 고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자기모순에 빠진 자기를 반성하며 욕망을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날 때야말로 아무것에도 어지럽혀지지 않은 이상적인 '열반적정'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입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