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순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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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원비
明順院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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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공주 | |
재위 | ? ~ 1320년 음력 8월 7일 |
대관식 | 없음 |
전임 | 정녕원비(靖寧院妃) |
후임 | 공주(公主) |
부왕 | 충렬왕(忠烈王) |
공주(公主) | |
이름 | |
휘 | ? |
이칭 | 없음 |
별호 | 명순비(明順妃) |
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연호 | 없음 |
신상정보 | |
출생일 | ? |
출생지 | ? |
사망일 | 1320년 음력 8월 7일 |
사망지 | ? |
왕조 | 고려(高麗) |
가문 | 개성(開城) |
부친 | 충렬왕(忠烈王) |
모친 | 정신부주(貞信府主) |
배우자 | 한영공 왕현(漢陽公 王儇) |
자녀 | 계양후 왕광(桂陽侯 王侊) |
종교 | 불교(佛敎) |
묘소 | 없음 |
명순원비(明順院妃, ? ~ 1320년 음력 8월 7일)는 고려의 왕족이다. 충렬왕과 정신부주(정화궁주)의 차녀이다. 명순비(明順妃)라고도 한다[1].
생애
[편집]고려의 제25대 왕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차녀이며,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1274년(충렬왕 즉위년) 음력 11월 25일의 기록에 언니 정녕원비만이 왕녀로 칭해지는 것으로 보아, 명순원비는 이 이후에 태어난 듯 하다[2].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명순원비의 어머니 정신부주는 종실 시안공 왕인의 딸로, 원래 충렬왕과 가장 먼저 혼인한 부인이다. 그러나 충렬왕 즉위 후 제국대장공주가 왕비로 들어오면서 궁주로 밀려나고 궁에서도 쫓겨났다가, 제국대장공주가 죽고 나서야 환궁할 수 있었다[3].
공주로 책봉된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며, 거처는 명순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렬왕은 충선왕에게 선위한 후 거처를 자주 옮겨다녔는데, 명순궁도 그 중 하나였다[4][5]. 명순원비는 종실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였으며, 1320년(충숙왕 7년) 음력 8월 7일에 사망하였다[1]. 호는 명순원비(明順院妃)이다[6].
가족 관계
[편집]명순원비는 종실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였다. 왕현은 고종의 차남 안경공 왕창의 아들로, 고종은 명순원비의 증조부이면서 시조부가 된다. 왕현은 명순원비와 혼인하여 아들 계양후 왕광을 두었다[7].
- 부왕 : 제25대 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
- 모후 : 정신부주(貞信府主, 정화궁주, ?~1319)
- 시아버지 : 안경공 왕창(安慶公 王淐, 1223~ ? 재위:1269~1269)
출처
[편집]- ↑ 가 나 《고려사》권35〈세가〉권35 - 충숙왕 7년 8월 - 명순비가 죽다
- ↑ 《고려사》권28〈세가〉권28 - 충렬왕 즉위년 11월 - 왕씨를 정화궁주로 왕의 딸을 정녕궁주로 책봉하다
- ↑ 《두산백과》〈정화궁주〉항목
- ↑ 《고려사》권31〈세자〉권31 - 충렬왕 24년 8월 - 왕이 명순궁으로 거처를 옮기다
- ↑ 《한국고전용어사전》〈명순궁〉항목
- ↑ 《고려사》권91〈열전〉권4 - 공주 - 충렬왕 소생 공주 - 명순원비
- ↑ 《고려사》권91〈열전〉권4 - 종실 - 고려 왕자 안경공 왕창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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