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조약
웨스트민스터 조약(Treaty of Westminster)은 영국(잉글랜드) - 네덜란드 사이와 영국 - 프로이센 사이에 각각 두 번씩 체결된 조약이다. 특히 제1차 협약과 제3차 협약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제3차 협약은 웨스트민스터의 화약이라고도 한다.
1462년 웨스트민스터 조약
[편집]1462년 2월 13일에 체결된 에드워드 4세와 스코틀랜드 왕국의 불평 귀족 사이의 조약이다. 스코틀랜드 왕국 제임스 3세의 궁정에서 추방된 랭커스터가의 헨리 6세를 맞이했기 때문에, 에드워드 4세는 헨리 6세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깎으려고 스코틀랜드 귀족에게 땅을 양도하는 대신 아군으로 끌어들인다. 이 때 조약에 서명한 스코틀랜드 귀족은 1475년에 반역을 지지했다.
1654년 1차 협약
[편집]1654년 4월 5일에 체결된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종결시킨 강화 조약이다. 네덜란드는 항해법을 승인하고, 공해상에서 영국의 우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배상금 지불하며, 홀란트에서 오라녜-나소 가문의 배제를 결정했다.
1668년 2차 협약
[편집]영국의 찰스 2세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사이에서 1668년에 체결된 협약이다.
1674년 3차 협약
[편집]1674년 2월 19일에 체결된 제3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종결시킨 강화 조약이다.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동맹을 이탈한 영국에게 배상금 20만에서 25만 파운드 상당(원문에서는 스페인 은화 80만 페소)을 받고, 점령한 뉴욕(뉴암스테르담), 뉴저지 등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땅을 영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보기에는 네덜란드 측이 불리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배상금은 네덜란드의 경제력에서 보면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보상금에서 스튜어트 왕가는 망명 시대에 네덜란드 정부에 빚진 부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잉글랜드 측에 남은 돈은 얼마되지 않았다. 또한 뉴욕 등의 도시도 원래 평화 협상 시작의 압력 때문에 네덜란드가 점령 한 지역이었으며, 반환하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의 결과 네덜란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양국은 모두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고 어중간한 결과로 끝났다.
1756년 4차 협약
[편집]영국과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 사이의 1756년 1월에 맺어진 중립 협정이다.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견제하는 목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