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경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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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李源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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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2년 1월 15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월성군 경주읍 양동마을 |
사망 | 2007년 8월 3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85세)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여강 |
학력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학사 |
직업 | 정치인 외교관 공무원 저술가 |
경력 | 前 외무부 장관 前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前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
의원 선수 | 無 |
정당 | 무소속 |
이원경(李源京, 1922년 1월 15일 ~ 2007년 8월 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외교관, 공무원이었다.
본관은 여강이다. 아울러 그는 역대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 내력 사상 첫 서울대학교 출신 외무부 장관이었다.
생애
[편집]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양동마을에서 태어나 상경, 1947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48년에 외무부에 들어갔다. 1963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외무부에서는 방교국장, 의전국장, 주일 대표부 참사관, 외무부차관, 외무부 근무 대사[1]까지 역임한 후 문공부장관, 체육부장관 등 화려한 외도를 하다가 1983년 외무부장관으로 복귀했던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체육부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이 일어나자, 정부 특사로 현지에 파견돼 사태를 능란히 수습, 평가를 받고 곧이어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어 1980년대 외교기반 조성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매사에 인화와 단결을 강조하면서 외교역량을 효율적으로 집결시키는 데 탁월한 수완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에 주일본 대사에 임명되었다.[2][3]
또한, 국제신문인협회(IPI) 회원, 합동통신사 부사장 및 사장, 한국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 부회장, 합동통신회장, 한국외교협회 회장, 국가보위입법회의 외교국방위원장, (주)합동대표이사 회장, 민주정의당후원회 회장, 서울올림픽조직위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 신한국당후원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력
[편집]비학위 수료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브라질 大使에 박동진氏[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 ↑ “駐日大使 李源京씨”. 경향신문. 1988년 3월 15일.
- ↑ “李源京 駐日대사”. 동아일보. 1988년 3월 25일.
참고 자료
[편집]전임 박동진 |
제12대 외무부 차관 1961년 10월 11일 ~ 1962년 8월 28일 |
후임 최문경 |
전임 윤주영 |
제10대 문화공보부 장관 1974년 9월 18일 ~ 1975년 12월 18일 |
후임 김성진 |
전임 노태우 |
제2대 체육부 장관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5일 |
후임 이영호 |
전임 이범석 |
제20대 외무부 장관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8월 26일 |
후임 최광수 |
전임 이규호 |
제9대 주 일본 대사 1988년 4월 ~ 1991년 3월 |
후임 오재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