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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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실
逼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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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신라 사량부 |
사망일 | 684년 |
사망지 | 신라 |
국적 | 신라 |
성별 | 남성 |
부친 | 취복(聚福) |
형제자매 | 부과(夫果), 취도(聚徒) |
군사 경력 | |
복무 | 신라군 |
최종계급 | 귀당제감 |
주요 참전 | 고구려 부흥운동 |
서훈 | 사찬 추증 |
생애
[편집]고구려의 왕족인 안승의 족자(族子) 대문(大文/悉伏)과 고구려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아내에게 “우리 두 형은 이미 국사(國事)에 그 이름이 썩지 않고 전한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히 살 것인가. 오늘 그대와 살아서 헤어지지만 끝내는 죽어 이별하게 될 것이니 잘 살면서 슬퍼하지 말라.”고 귀당제감(貴幢弟監)으로서 고구려 부흥군을 향해 홀로 나가 분전하다가 전사했다. 이후 신문왕은 필십과 그의 형들에게 사찬(沙飡)의 관등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