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농업
Agriculture in Algeria이 글은 검증을 위해 인용구가 추가로 필요하다. – · · 책 · · (2011년 8월) (이 |
알제리의 농업은 2010년 알제리 경제의 25%,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한다. 1830년 알제리가 식민지화되기 전, 비산업 농업은 약 2-3백만 명의 알제리 인구를 부양했다. 국내 농업 생산에는 밀, 보리, 감귤류, 대추, 견과류, 올리브 등이 포함되었다. 1830년 이후, 식민지 개척자들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2200개의 개별 농장을 도입했다. 식민지 농부들은 다양한 과일, 견과류, 밀, 야채들을 계속 생산했다. 알제리는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전역에 퍼진 농작물 전염병 때문에 와인을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알제리의 농업은 1962년 독립이 이루어진 후 발전했다. 그 산업은 여러 정책 변화를 경험했다. 현대화와 식품 수입에 대한 비난. 오늘날 알제리의 농업은 현대적인 관개시설과 경작 가능한 토지의 규모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알제리의 지리적 규모에도 불구하고 전체 국토 면적의 4% 미만이 경작 가능하다. 1987년 이전에는 경작 가능한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였다. 국가는 이 땅을 지역 사회주의자들로 인정되는 구역으로 나누었다. 이들 농장은 1987년 이후 폐지되었고, 국가는 경작 가능한 토지를 개인에게 팔았다. 그러나 알제리 정부는 경작 가능한 전체 토지의 3분의 1을 통제하고 있다.[citation needed]
생산
알제리가 2018년에 생산한:
- 460만 톤의 감자(세계 17위의 생산국)
- 390만 톤의 밀
- 수박 200만t(세계 6위 생산국)
- 190만 톤의 보리(세계 18위의 생산국)
- 140만 톤의 양파(세계 16위의 생산국)
- 130만 톤의 토마토(세계 18위의 생산국)
- 110만 톤의 오렌지(세계 14위의 생산국)
- 100만 톤의 날짜(세계 4위의 생산국,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 이어 2위)
- 86만 톤의 올리브(세계 6위의 생산국)
- 651,000톤의 후추;
- 50만 2천 톤의 포도
- 431,000톤의 당근;
- 38만 8천 톤의 호박;
- 26만 2천 톤의 귤;
- 살구 24만2000t(세계 4위 생산국, 터키, 이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2위)
- 콜리플라워와 브로콜리 20만7000t;
- 202,000톤의 마늘;
- 20만 톤의 배
- 19만 3천 톤의 오이;
- 19만 톤의 복숭아
- 완두콩 18만6000t;
- 18만 1천 톤의 오베린;
- 아티초크 12만4000t(세계 5위 생산국, 이탈리아 이집트 스페인 페루에만 패함)
- 귀리 11만 8천 톤,
- 매실 11만1000t(세계 20위 생산량)
- 무화과 10만9000t(세계 4위 생산국, 터키 이집트 모로코에 이어 2위)
다른 농산물의 소규모 생산 외에도. [1]
식민주의 이전의 농업
식민지 시대에 앞서 알제리 농업은 비산업적 방법을 이용해 과일, 견과류, 채소를 생산했다. 알제리 농업의 대부분은 베자아와 안나바 주변의 평야에서 동쪽에서 생산된다. 농업 노동자들은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하지 않고 200만에서 300만 명의 알제리 인구를 지탱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식민지 시대 이후 알제리의 인구가 급증한 데 이어 알제리는 밀, 유제품, 육류를 대량으로 수입했다.[2]
식민지 시대의 농업
알제리의 농업 시스템은 1880년대의 포도밭 전염병을 제외하고는 식민지 기간 동안 프랑스에 이익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익 부족은 알제리 은행이 알제리의 산업 농장에 대한 신용 제공을 거절한 데서 두드러진다.[2]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알제리는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과일, 채소, 포도주, 동물 등을 계속 생산하였다. 그러나 전염병 기간 동안 알제리는 포도주의 주요 생산국이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알제리는 "거대한 포도밭"[3]으로 변모했다. 포도밭은 식민지 초기에는 한정되어 있었다. 농부들은 종종 그들의 다른 농작물 근처에 개인 및 사회적 소비를 위한 포도밭을 재배했다. 프랑스의 다산적인 대도시 정원은 북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포도주를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포도주 생산에서 알제리의 역할은 19세기 후반에 바뀌었다. 필록세라는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을 점령하고 농업 전염병을 일으켰다. 이 전염병은 프랑스가 와인 수출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로 진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시기에 프랑스를 강타했다. 프랑스의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농업 부문은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의 농부들에게 프랑스 포도밭에 퍼지고 있는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 포도주를 생산하도록 장려한다. 알제리 농업 노동자들은 포도원을 전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와인이 알제리에서 프랑스,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나라로 흘러갔다. 알제리는 높은 품질과 광범위한 종류의 와인을 재배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포도주 생산의 선두주자로서 알제리의 역할은 짧았다. 프랑스의 포도밭은 그 후 수십 년 만에 회복되었고 알제리 와인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농업후식민지주의
1962년 독립이 이루어진 후, 농장은 노동자로 대체되었다. 현재 2200개의 농장은 이전에 농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자가화합이라는 용어는 농장이 자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쓰였다. 임금 노동자들은 농기계와 화학 촉진제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 프랑스인들이 사용하는 농업 관행을 계속해서 따랐다. 프랑스에 의해 확립된 모델에 따라 알제리 농부들은 그들의 제품을 국제 시장에 수출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들 민간농장은 정부 불안과 인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줄었다.[4]
알제리가 독립을 쟁취한 후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 농부들에게 포도주와 다른 농산물의 비축량을 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프랑스 농업계는 내부적으로 와인을 공급하고 알제리와의 계약을 철회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계약 취소로 알제리에서는 와인이 과잉 공급되었다. 소련은 1970년대 알제리에서 많은 양의 와인을 구입했지만, 이로 인해 알제리의 와인 공급 과잉이 완화되지는 않았다.
이 기간은 알제리에서 농장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민간 법인과 개인으로 구성되었다. 알제리의 모델은 프랑스 농민들이 알제리 기업들과 알제리 시민들로 대체되었지만, 식민지 시대에 이 땅을 경작한 농민들을 포함한 알제리 시민들로 대체되었다. 개인이 농장을 매입해 운영할 수 있는 접근권을 갖고 있었지만, 민간기업이 농장의 대부분을 소유했다. 알제리 농장의 불공평한 분배는 농업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농업혁명 이후의 시대적 노력
알제리의 낮은 생산량과 국제 식량 수입에 대한 큰 의존성을 실망시킨 정부는 1980년 초에 농업 활성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정부는 농업혁명 때 도입된 이전 모델이 성공하지 못하고 농업에 해롭다는 점을 인식했다. 알제리 농무부는 사회주의적 농업 통제권을 철회하고 민간부문을 농업에 재도입했다. 새로운 정책은 민간 기업이 농지를 매입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주의 계획에서 시장지 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농림부는 농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계속 완화했다. 주 정부는 알제리에 경작 가능한 토지를 약 3분의 1 정도 관리했지만 민간이 투자하고 산업을 통제할 수 있도록 계속 허용했다. 이는 민간이 농업자원을 독자적으로 매입해 자기 입맛에 맞는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능력이 돋보인다. 또한 정부는 민간 기업이 농업 네트워크와 자체 계약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것은 산업의 확대와 품질 생산의 증가를 초래했다.
농업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단계에는 공공 부문의 투자가 10%에서 15%로 증가하는 것이 포함된다. 정부는 또한 1990년대에 현대 관개 사업을 20,000헥타르의 땅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알제리의 일관되지 않은 농작물 수확량과 품질로 인해 알제리 농부들과 계약을 맺지 못하게 된 우수에 대한 의존은 업계의 성공을 저해했다. 현대적인 관개 시스템은 농업이 외국 무역 네트워크와 안정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다. 이전에 알제리 정부는 일관된 수준의 제품과 품질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 파트너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알제리는 농업에도 다른 나라들처럼 계약을 맺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제리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하기 위해 농업 산업을 현대화할 필요성에 따라 행동했다.[4]
변화는 알제리의 경제와 알제리의 인구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농업 부문의 개혁 이전에, 알제리의 농무부는 지역적으로 재배된 식량을 그것의 인구에 제공할 수 없었다. 알제리는 식품의 85%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세계 최대 식품 수입국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나 정부의 농업투자에 이어 알제리는 식량 수입 의존도를 크게 줄였다. 알제리는 국내 감자, 토마토, 육류 소비량의 100%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 부문의 고용 수치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120% 증가했다.
알제리의 총노동력 대비 농업 고용은 독립이 이루어진 후 꾸준히 감소하였다. 1970년대에는 전체 노동인구의 64%가 농업에 종사했다. 2000년 현재 이 숫자는 24%로 감소했다. 농업의 감소는 알제리가 종식 후 수입식품에 의존한 영향이 크다.
알제리의 농업은 850만 헥타르의 경작지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모든 면에서 농촌 인구의 20%를 고용하면서 알제리 국내총생산의 약 12%를 기여하고 있다. 알제리의 대부분은 건조한 사막(사하라 사막)과 반건조 땅으로 강수량이 적고 신뢰할 수 없는 비가 내리고 있으며, 이곳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은 거의 없다. 북쪽의 아틀라스 산맥은 지중해 연안에서 사하라 사막과 높은 사막을 분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농작물은 구릉지대와 해안을 따라 육지에서 재배된다. 따라서 알제리 전체 면적의 3.5%에 불과한 대부분의 경작지는 지중해성 기후로 가뭄이 흔하고 강수량이 연중 고르지 못하고 믿을 수 없이 분포하고 있다. 알제리 농업은 관개보다는 주로 강우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개사업은 종종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가장 흔한 작물은 곡물(밀, 귀리, 보리)과 맥박이다.[5] 가장 흔히 사육되는 가축은 양과 염소, 그 다음은 소다.[6] 닭은 시골에서 흔하다. 알제리는 식량의 순수입국이다.[7]
뛰어난 섬유질인 크린 식물성(식물성 말헤어)은 왜소 손바닥의 잎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올리브와 기름, 그리고 담배는 매우 성공적으로 재배된다.
알제리는 무화과, 날짜, esparto 잔디와 코르크 마개도 수출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귀리 시장이다.
와인 생산
알제리의 경작지 전체에 걸쳐 토양은 덩굴의 성장을 선호한다. 이 나라는 프랑스 정부가 이 주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보낸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체질과 맛의 변덕에 맞는 다양한 와인을 무한히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덩굴의 재배는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일찍부터 이루어졌으나, 프랑스의 포도밭이 필록세라의 공격을 받고 나서야 알제리산 포도주의 수출도 상당해졌다. 1883년, 예방 조치에도 불구하고, 알제리의 포도밭도 공격을 받았지만, 그 사이 와인의 품질이 증명되었다. 1850년에는 포도에 2천 에이커(8km2) 미만이 투입되었으나, 1878년에는 4만 2천 에이커(170km2) 이상으로 증가하여 743만 6천 갤런(2만 8천 m³)의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계절이 나쁘고 곤충의 폐허에도 불구하고, 경작이 확장되었고, 1895년에 포도밭은 3억 에이커(1,200 km2)를 덮었고, 생산량은 8,800만 갤런(33만 3천 m³)이었다. 1905년 경작면적은 40만 에이커(1600km2)를 넘었고, 그해 포도주 생산량은 1억5700만 갤런(59만4000m)이었다. 그 무렵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익성 있는 생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사실상 알제리 와인의 해외 시장은 1905년에 약 1억 1천만 갤런(41만 6천 m³)을 수입한 프랑스뿐이다.
와인 경작을 담당하는 알제리 단체는 와인제품의 전국 마케팅 사무소(ONCV)로 불린다.
참조
- ^ FAO에 의한 2018년 알제리 생산
- ^ a b Kielstra, Nico (August 1978). "The Place of the Agrarian Revolution in the Algerian Approach to Socialism". Social Scientist. 7 (1/2): 69–89. doi:10.2307/3516768. JSTOR 3516768.
- ^ Cross, Kolleen M. (1992). "The Evolution of Colonial Agriculture: The Creation of the Algerian 'Vignoble,' 1870-1892". Proceedings of the Meeting of the French Colonial Historical Society. 16.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pp. 57–72. ISBN 978-0-8191-8505-1. JSTOR 42952238.
- ^ a b Laoubi, Khaled; Yamao, Masahiro (March 2012). "The Challenge of Agriculture in Algeria: Are Policies Effective" (PDF). Bulletin of Agricultural and Fisheries Economics. Hiroshima University. 12 (1): 65–73. S2CID 56442539.
- ^ Arnold, Guy (1997). The Resources of the Third World. Taylor & Francis. ISBN 978-1-57958-014-8.[페이지 필요]
- ^ "Algeria - Livestock".
- ^ "Algeria adopts measures to boost investment and increase production in agriculture". Oxford Business Group.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1 April 2019.
추가 읽기
- Benmehaia, Mohamed Amine; Brabez, Fatima (October 2016). "The propensity to cooperate among peasant farmers in Algeria: An analysis from bivariate approach". 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and Agricultural Economics. 4 (4): 79–92. doi:10.22004/ag.econ.251820. ProQuest 1851600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