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데로코
Aleksandar Deroko알렉산다르 데로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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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 |
죽은 | 1988년 11월 30일 | (94세)
국적 | 세르비아어 |
직업 | 건축가 |
알렉산다르 데로코(Servian Kyrillic: Servian Kyrilic: аааааааррррррр;;;;;;;;;;;;;;;;;;;; 1894년 9월 4일 ~ 1988년 11월 30일)는 세르비아의 건축가, 예술가, 작가였다. 그는 베오그라드 대학의 교수였고 세르비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다.
전기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마르코 드 로코라는 베네치아 사람으로 두브로브니크(달마티아 왕국)로 이주하여 현지 여성과 결혼하였다. 알렉산다르의 할아버지 조반은 미술 선생님이 되기 위해 베오그라드에 왔다. 그의 외가 쪽에는 노비 사드의 세르비아 국립극장 창시자인 조반 조르셰비치(1826~1900)가 있었다. 데로코는 세르비아의 유명한 작가 스테반 스레맥(1855–1906)과도 관련이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베오그라드의 중심부에 있는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에 있는 그의 대운클스의 집에서 살았다. 그는 초, 중등 학교에서는 그다지 좋은 학생이 아니었는데, 사실은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전기에서 말했듯이 공부보다는 사바 강에서 뱃놀이를 더 좋아했다.[1] 제1차 세계 대전 전에 그는 베오그라드 대학의 기술 교수진에 등록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전쟁 초기에는 포병 자원봉사를 하였으나 스코플레제로 전출되어 1300 코퍼럴의 대대에 합류하여 하사관이 되었다. 전쟁 전 항공의 선구자였던 만큼 새로 창설된 로열 세르비아 공군에 편입됐다. 1915년 프랑스로 보내져 훈련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해 가을과 겨울에 세르비아의 퇴각에서 탈출했다. 그의 편대는 회복된 세르비아군에 살로니카 전선에서 합류하여 전쟁이 끝나고 세르비아 해방이 끝날 때까지 싸웠다.
직업생활
그는 로마, 프라하, 브르노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1926년에 베오그라드에서 졸업했다.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그는 파리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 피카소, 사바 슈마노비치, 라스트코 페트로비치, 르 코르뷔지에와 그 당시 파리에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1930년대 초에 그는 베오그라드의 건축학 교수진 전 교수가 되었다. 그는 중세 건축과 비잔틴 건축을 가르쳤다. 그는 그 시기에 보그단 네스토로비치(Bogdan Nestorovich)와 함께 생사바 신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1935년에 그것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는 많은 책을 쓴 작가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다뉴브강 중세 성(1964년)과 칼레메그단 주변의 데일즈(1987년)이다. 건축 외에도 그는 자신의 부지런하고 지루한 건축 활동이 마침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시기에 만들어진 개인 엽서에 삽화를 그렸는데, 한 마디로 새로운 교육을 받은 중산층의 모든 자유주의, 즉 에너지 넘치는 베오그라드 분위기, 경쾌함, 에로티시즘을 보여준다.[2]
선택한 작품
참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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