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 하메드
Bashir Hameed바시르 하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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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 제임스 딕슨 요크 |
죽은 | 2008년 8월 30일 뉴욕 주 컴스톡의 그레이트 메도우 교정 시설 | (67세)
기타 이름 | 바시르 하메드 |
로 알려져 있다. | 흑인 팬더당 및 흑인 해방군 의원 |
형사고발급 | 살인과 살인미수 |
벌칙 | 인생 33년 |
바시르 하메드(Bashir Hameed, 1940년 12월 1일 제임스 딕슨 요크 출생, 2008년[1] 8월 30일 사망)는 흑표범당 및 흑해방군 소속이었다.
요크는 1940년 12월 1일 뉴저지 주 엘리자베스에서 태어났다. 요크가 블랙 팬더 파티에 가입한 것은 1968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거주하던 때였다. 1969년 뉴저지로 돌아와 BPP의 저지 시 지부를 부의장으로 재편성하였다.[2]
1974년 요크는 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트렌턴 주립 교도소에서 2년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병든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휴가 중에 탈출했다. 그는 나중에 탈환되어 그 문장의 나머지 부분을 복역했다.[3]
1981년 존 스카란젤라 살인 사건
리차드 레이니 경찰관과 그의 파트너인 존 스카란젤라 경관은 성에서 일어난 강도사건에 대응하고 있었다. 1981년 5월 1일, 뉴욕시 퀸즈 주 앨번스. 그들이 흰색 밴을 타고 두 명의 남자를 차를 세웠다. 승합차 안에 있던 두 남자는 요크와 동료 흑인 해방군 대원 안소니 라보르드(Anthony LaBorde, 이하 압둘 마지드)였다. 멈춰서자 요크와 라보더르는 밴을 빠져나와 반자동 권총으로 경찰관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존 스카란젤라는 교환기에서 머리에 두 번 총상을 입은 것을 포함하여 13번 총에 맞았고, 후에 그의 부상으로 죽었고, 레이니는 다리와 등에 여덟 번 총상을 입었고, 후에 남은 평생 동안 장애를 앓게 되었다.[4]
그 사건은 여러 번의 재판 전에 진행되었다. 1심은 인종 차별에 따라 갈린 교수형 배심원으로 끝났다.[5] 2심은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기한까지 평결을 내리라고 명령한 후 법관에 의해 불심재판으로 선언되었으나, 이후 배심원 중 한 명이 병에 걸렸다.[5] 요크와 라보르드 모두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3심 판결로 33년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요크와 라보르드가 모두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1982년에 새로운 이슬람교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1981년 체포 이후였다.[5]
하메드는 뉴욕 컴스톡의 그레이트메도우 교정시설에서 이 형을 복역하던 중 사망했다.
참조
- ^ http://boricuahumanrights.org/2008/11/01/in-memorium-black-political-prisoner-bashir-hameed-1940-2008/
- ^ "Community Celebration of Bashir Hameed's Life" (PDF).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2021-01-25. Retrieved 18 March 2021.
- ^ McFadden, Robert D. (21 April 1981). "2 BLACK LIBERATION ARMY MEMBERS IDENTIFIED IN SHOOTING OF 2 OFFICERS". New York Times. Retrieved 17 March 2021.
- ^ Cornell Smith, Kati (5 August 2003). "NO NEW TRIAL FOR '81 KILLERS". New York Post. Retrieved 18 March 2021.
- ^ a b c Gruson, Lindsey (7 October 1983). "2D MISTRIAL IN MURDER OF OFFICER". New York Times. Retrieved 18 March 2021.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