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시아
Daxia다시아, 타히아 또는 타히아(중국어: 大大; pinyin: Daxia; 문자 그대로 '위대한 시아')는 한족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는 박트리아의 주요 지역인 투카라나 도카라에게 고대로 붙인 이름이며, 남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일부 지역인 것으로 보인다.
'닥시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부터 중국의 계좌에 처음으로 나타나서, 극서쪽에 있는 왕국을 지정했는데, 이는 아마도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팽창과 최초의 접촉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기원전 126년에 탐험가 장첸이 박트리아를 지정하기 위해 사용한다.
'닥시아'는 부분적으로 다이에(중국어: 大益; pinyin: 다에이).[1]
예를 들면 관지 8장(기원전 7세기)에 의해 닥시아가 언급된다: "서쪽에 [두케환]... 태항과 비에 골짜기를 지나 다하 족장을 사로잡았다. 서쪽으로 더 나아가 류샤의 시유를 예속시켰고, 처음으로 진의 룽족이 순종했다.(타이항과 비에르는 중국 산시-헤베이 국경을 따라 위치한다.)
장첸의 보도는 기원전 1세기 사마천의 시지에 보존되어 있다.
그들은 작은 도시 왕이나 치안판사 밑에 성벽이 있는 도시에서 사는 약 100만 명의 중요한 도시 문명을 묘사하고 있다. Daxia는 남부 중국까지 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으로 거래되는 풍부한 시장을 가진 부유한 나라였다. 장첸이 닥시아를 방문했을 때쯤에는 더 이상 큰 왕이 없었고, 박트리아인은 옥수스를 넘어 자기 영토의 북쪽에 정착한 유목민 유에즈지의 수저였다. 전체적으로 장첸은 전쟁을 두려워하는 다소 세련되지만 사기가 저하된 사람들을 묘사했다.
이러한 보고에 따라 중국 황제 우디는 페르가나, 박트리아, 파르티아 등의 도시 문명의 고도화 수준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상업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황제는 다유안, 닥시아, 안시, 그리고 다른 모든 주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주들은 사람들이 이 땅을 경작하고 중국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특이한 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이 모든 주들은 군사적으로 약하고 한재와 재물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2]시지 123)
이러한 접촉은 곧바로 중국으로부터 여러 대사관을 파견하여 실크로드 개발에 착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