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홀
Finlandia Hall핀란드 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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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핀란드 홀 | |
일반 정보 | |
위치 | 핀란디아 공원 |
좌표 | 60°10′33″n 24°55′59″e / 60.17583°N 24.93306°E좌표: 60°10′33″N 24°55′59″E / 60.17583°N 24.93306°E/ |
공사시작 | 1967년 12월 |
완료된 | 1971년 12월 2일 |
기술적 세부사항 | |
바닥 면적 | 20,524m2(220,920평방피트) |
설계 및 시공 | |
건축가 | 알바 알토 |
주계약자 | 건설 사무소 아르보넨 오이(프로젝트에서 탈퇴) 아르보 웨스터룬드 오이(프로젝트 완료) |
핀란드 홀은 헬싱키 시가 소유하고 있는 툴뢰넬라티 만 헬싱키 중심부의 의회 및 행사장이다.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이 건물은 1971년 완공됐다. 건물의 모든 세부사항은 알토가 설계했다. 설계는 1962년에 완성되었고, 1967년에서 1971년 사이에 건축이 이루어졌다. 국회의사당은 1970년에 설계되었고 1973-1975년에 지어졌다. 2011년에는 새로운 전시 및 회의 시설로 건물을 확장하였다. 핀란드 홀은 1975년 8월 열린 OSCE 정상회의(유럽안보협력회의)의 개최지로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정상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1]
1971년 12월 2일 핀란드 홀의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취임 콘서트에는 에이노쥬하니 라우타바하라의 메렌 티테르('바다의 딸')와 울리스 살리넨의 교향곡(오피스 24)의 첫 연주와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독주자로 아이작 스턴과 함께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연주됐다.
건축
핀란드 홀과 그 의회 건물은 1959년부터 1976년까지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툴뢰만 일대 헬싱키에 대한 새로운 기념비적 중심지가 실제로 건설될 계획 중 유일한 부분이었다.[2] 핀란드 홀 건물의 주요 특징은 지붕이 경사진 타워형 구간이다. 높은 빈 공간이 더 나은 음향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설계 배후에 있는 알바 알토의 생각이었다. 격자 천장은 관객들에게 공간을 숨겨주지만 높은 교회 탑과 같은 깊은 포스트에코를 만들 수 있다. 알토는 검은 화강암과 대조적으로 실내외 표면과 실외 표면 모두에 이탈리아산 카라라 대리석을 사용했다. 알토에게 대리석은 그가 핀란드로 데려오고 싶어했던 지중해 문화와의 인연이었다.
핀란디아 홀은 착시현상이[citation needed] 특징인데, 길 건너편에 있는 국립박물관 건물이 핀란디아 홀 타워 가장자리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다. 핀란드 홀 타워의 흰색 대리석 표면에 검은색 트라페지움이 작용한다. 트라페지움(Tölönlahti Bay) 동쪽 해안에서 핀란드 홀이 바라보일 때 국립박물관의 떠오르는 탑에 맞도록 측정되었다. 알토는 착시현상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3] 그 또 다른 예는 에스푸에 있는 헬싱키 공과대학(현 아알토 대학) 도서관 건물 뒤의 보행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의 내부 디자인은 게삼트쿤스트워크의 원리, 즉 예술의 총체적 작업에 대한 공물이다. 각 램프와 가구, 판넬, 바닥재, 장식판 등의 디자인은 건축가로서의 오랜 경력은 물론 문 손잡이 등 램프, 가구, 비품의 디자이너로서의 오랜 경력에 따른 알토의 성숙도를 반영한 것이다. 모든 물질은 기술적으로 인위적인 음색이 없이 자연의 언어를 말한다. 건축이 인간을 위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알토의 기본적인 견해였기 때문이다. 핀란드 홀에서는 특이한 형태나 허식적인 인테리어가 아닌 관객과 공연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토에 따르면 핀란드 홀의 관객들은 옛날 오페라 하우스와 금박으로 장식된 콘서트 홀에서 예전의 사람들처럼 분장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입는 옷은 건물의 환경만큼이나 진솔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본관
본관에는 주강당(1700명), 헬싱키홀(수340명), 테라스홀(수250명), 엘리사홀(수130명), 오로라홀(수894명), 베란다(1700명), 핀란드식당 등이 들어서 있으며, 카페베란다(수1700명), 갤러리아 베란다 등이 들어서 있다.
주 강당
핀란드 홀의 내부에는 알토의 전형적 특징인 많은 테마가 전시되어 있다. 본관 강당은 원래 공연장으로 설계되었으며, 독일 에센 오페라 하우스, 즉 알토 극장의 공연장을 단순화한 것이다.
주 강당은 처음부터 회의, 의회, 축제, 콘서트, 행사들로 인기 있는 장소였다. 그 강당은 1700명, 좌석에 1200명, 발코니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바닥은 참나무 파켓이고 벽의 푸른 부분은 핀란드산 자작나무다. 무대의 폭은 14m이다. 그것은 여러 모듈식 플랫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무대 아래 2층에 위치한 창고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커튼은 핀란드의 섬유 디자이너인 도라 융이 디자인했다.
주 강당은 1975년 유럽에서 열린 제2단계 안보협력기구(Security and Cooperation) 회의와 같은 국제정상회의의 장 역할을 해 왔으며, 이 회의에는 소련의 브레즈네프 총서기와 미국의 포드 대통령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참가자들을 위한 책상을 수용하기 위해 2번째 좌석 열마다 제거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4]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5] 조지 H.W. 부시 대통령,[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7] 14대 달라이 라마 등 몇몇 국가 정상들도 대강당에서 연설을 했다.[8]
대강당의 음향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초기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주로 알토가 그 공간이 음향 상태가 좋다고 알려진 중세 교회와 같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이는 타워 구간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나중에 일어난 배상금에서는 천장을 현재의 높이로 낮추고, 무대 높이를 0.5m 늘렸다. 대강당 문짝은 말발굽으로 만든 재질로 덮여 있다. 강당에 있는 오르간(Gangasala Organ Factory)이 만든 오르간은 핀란드 최초의 공연장 오르간이었다. 오르간의 앞부분도 알바르 알토가 설계했다.
피아자
Piazza는 자연광이 많은 큰 포이어다. 그 이름은 알토가 크게 존경했던 나라 이탈리아, 사람들이 서로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던 시장 장소와 광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색깔이 가라앉고 조용하다. 바닥이나 포이어는 고급 잉글리시 울 카펫으로 덮여 있다.[citation needed]
헬싱키 홀
340석 규모의 헬싱키 홀과 쾌적한 포이어를 갖춘 헬싱키 홀은 다양한 행사를 하기에 좋은 장소다. 헬싱키 홀은 독일 볼프스부르크 데트메로데를 위해 알토가 설계한 교회 홀과 닮은 특징이 있다. 특히 지붕은 그대로 베낀 것이다. 천장에 있는 "패널"은 미국 오리건 소나무다. 헬싱키 홀의 벽을 자세히 보면 홀 안에 단 하나의 예리한 각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핀란디아
핀란드 레스토랑은 이동식 벽으로 분리된 세 개의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일 공간으로 380명을 수용하고 650명을 위한 칵테일 파티를 연다. 레스토랑과 인접한 포이어를 결합하면 거의 1300명을 위한 케이터링과 최대 2500명을 위한 칵테일 파티를 준비할 수 있다.
의회동
의회 회관은 1975년에 완공되었다. 국회의사당의 특징은 건물 특유의 아름다움과 발랄함을 주는 정면 '파동'이다. 날개의 외벽은 직접적이지 않다. 그들은 지형의 형태를 따라 구부러진다. 한편으로 알토는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들을 대부분 구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직접 벽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싶었다. 의회 회관에는 컨버터블 홀 A, B, C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회의실(총 13개)이 있다.
베란다
2011년 완공된 핀란드 홀의 베란다 증축은 덮개식 주차장과 본관 카람지닌란타 쪽의 경사로를 개축한 것이다. 디자인의 주요 아이디어는 겉으로 덮인 야외 공간의 느낌, 단순함이었다. 가볍고 중립적인 예를 들어 천장, 벽면, 바닥면의 본래의 성질과 재질은 가능하면 바꾸지 않았다. 이 공사는 핀란드 국립 고대 유물 위원회와 협력하여 시행되었다. 새로운 고정 요소의 수를 최소화하여 다양한 기능, 전시, 연회 등을 위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홀은 이동 가능한 벽을 이용하여 다양한 크기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베란다의 연면적 2200㎡는 240~310명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1000명을 위한 케이터링과 1700명을 위한 칵테일 파티가 마련된다. 베란다의 주 건축가는 지르키 이소아호(Jyrki Iso-Aho), 인테리어 디자인은 자크코 푸로 오이(Jaakko Puro Oy. 디자인과는 별개로, 용도에 있어서 선도적인 아이디어는 가벼움, 이동성 및 다양한 목적에 대한 적합성이다. 베란다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된 카페 베란다와 갤러리아 베란다도 있다. 베란다와 카페 베란다 모두 툴뢰넬라티 만이 잘 보인다.
회사
핀란드 홀은 독립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2008년 6월 1일, 핀란드 홀의 관리 조직은 유한 책임 회사인 핀란드-탈로 오이로 변경되었다. 이 회사의 주식 자본 전부는 헬싱키 시가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전무이사는 요한나 톨로넨이다.
핀란드 홀의 상무이사
- 벵트 브롬스 1971-1982
- 카를 외만 1982-1988
- 마티 키비넨 1988-2000
- 아우니 팔로 2000-2011
- 요한나 톨로넨 2012-
참조
- ^ Peka Suhonen, Petri Mustonen, Eeva-Kaarina Holopainen, 핀란드-탈로: Tapahtumia, ihmisiae, musiikkia [핀란디아 홀: 이벤트, 사람, 음악] 2001년 헬싱키 오타바.
- ^ 괴란 실트, 알바 알토 - A Life's Work. 오타바, 헬싱키, 1994, 페이지 33-34.
- ^ "Visual joke discovered in Finlandia Hall". Helsingin Sanomat. 17 August 2009. Retrieved 5 April 2014.
- ^ "Remarks to the Paasikivi Society and the League of Finnish-American Societies in Helsinki, Finland". May 27, 1988.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anuary 17, 2021.
- ^ Suominen, Ilkka (1994). "Finland, the European Union and Russia". The World Today. 50 (1): 12–14. ISSN 0043-9134. JSTOR 40396537. OCLC 5547361886.
- ^ "Joint News Conference of President Bush and Soviet President Mikhail Gorbachev in Helsinki, Finland". September 9, 199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May 3, 2019.
- ^ "Meeting with the members of the Paasikivi Association". June 5, 1989.
- ^ "His Holiness promotes warm heart in Finland". Tibetan Cultural Center Administration. October 1, 2006.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ly 22, 2021.
외부 링크
- 핀란드 홀의 홈페이지
- 핀란드 홀의 건축 – 핀란드 홀의 건축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에세이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