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세라토
José Serrato호세 세라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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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24대 대통령 | |
재직중 1923년 3월 1일 – 1927년 3월 1일 | |
수상 | 훌리오 마리아 소사 루이스 알베르토 데 에레라 |
선행자 | 발타사르 브룸 |
성공자 | 후안 캄피스테구이 |
개인내역 | |
태어난 | 1868년 9월 30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죽은 | 1960년 9월 7일 (91)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국적 | 우루과이의 |
정당 | 콜로라도당 |
직업 | 엔지니어, 이코노미스트 |
호세 세라토(José Serrato, 1868년 9월 30일 ~ 1960년 9월 7일)는 우루과이의 정치 인사였다.
배경
세라토는 오랫동안 우루과이 정치를 지배해 온 우루과이 콜로라도당의 저명한 당원이었다. 그는 호세 바틀레 이 오르도녜스의 정책과 광범위하게 동일시되었지만, 강한 이념적 성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보다 양극화된 관점으로 당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었다.[1] 1904년부터 1907년까지,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우루과이의 대통령
세라토는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우루과이의 대통령을 지냈고, 그 사무실에서 발타사르 브룸의 뒤를 이었다.
1925년에 그는 몬테비데오 팔라시오의 공식적인 개회를 주재했다.
그 자신도 후안 캄피스테구이에 의해 계승되었다.
포스트 프레지던트
세라노는 1933년부터 1934년까지 반코 데 라 레푸블리카 오리엔탈 델 우루과이의 대통령이었다.[2] 이후 후안 호세 데 아메자가 대통령 밑에서 우루과이 외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대통령직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 1960년에 사망했다.
참고 항목
메모들
- ^ '국학' 13번
- ^ Diego Aboal and Gabriel Oddone. "Reglas versus Discrecionalidad: La Política Monetaria en Uruguay entre 1920 y 2000" (PDF). Banco Central del Urugu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