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스 다바키스
Konstantinos Davakis대령 콘스탄티노스 다바키스 Κωνσταντίνος Δαβάκη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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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 c. 1897년 그리스 왕국 라코니아 케흐리아니카 |
죽은 | 1943년 1월 21일 (45~46) 알바니아 남부의 아드리아 해에서. |
파묻힌 | |
얼리전스 | 그리스 왕국 |
서비스/지점 | 헬레닉 아미 |
근속년수 | 1916–1943 |
순위 | 대령 |
구성 단위 | 핀더스 분리(1940년) |
전투/와이어 | 제1차 세계 대전 |
수상 | 구세주 훈장 조지 1세 훈장 골드 크로스 오브 발레 무공훈장 크로익스 드 게레 아테네 아카데미의 은메달 |
콘스탄티노스 다바키스(그리스어: κωνσααττςςςς;;;;;;;;;;;;;;;;;; 1897년 ~ 1943년 1월 21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리스 군관이었다. 그는 1940년 그레코-이탈리아 전쟁 1단계에서 이탈리아 패배를 초래한 핀두스 전투 때 그리스 방어선을 조직했다.
초년기
1897년 라코니아 현 스파르타 외곽의 케흐리아니카 마을에서 태어났다. 제2소위로 헬레닉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액션 장면을 목격해 스크라디-레겐 전투와 도이란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다바키스는 그레코-터키 전쟁(1919–1922년)에 참가하여 사관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군사와 기갑전에 관한 많은 작품을 썼다.
그레코-이탈리아 전쟁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공격했을 때 다바키스는 대령이었다. 핀두스 분견대 사령관(απόσααασ μα πίδδυδ)으로서 1940년 10월 말 이탈리아 줄리아 알프스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으나 같은 해 11월 역습 때 중상을 입어 거의 파괴할 뻔 했다.
51보병연대의 2개 보병대대와 1개 기병부대, 1개 포병전지로 구성된 다바키스의 분대는 이탈리아 침공의 '파격'을 받은 최초의 그리스 부대였다. 다바키스의 병력은 산지 지형의 전방 30km를 덮으며 과격했다. 그의 부대는 이틀 동안 줄리아 사단의 진격에 저항했고, 그 무렵에는 이탈리아인들을 진압하고 물리칠 충분한 증원군이 동원될 수 있었다.
부상사
1940년 11월 2일 사마리나 마을 근처에서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던 중 다바키스는 심각한 폐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틀 뒤 의식을 회복했지만 그는 여전히 전장에 입원해 있었다. 1942년 12월, 그리스 저항군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아 다른 그리스 장교들과 함께 이탈리아 점령당국에 체포되었다. 이 장교들은 이탈리아에 있는 포로 수용소로 수송될 예정이었으나 1943년 1월 알바니아 남부에서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다바키스의 시신은 그리스 현지인들에 의해 인정되어 벨로리에 묻혔다. 그의 뼈는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로 옮겨졌다.
레거시
스파르타에 있는 "콜로넬 콘스탄티노스 다바키스" 군대는 그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참조
원천
- 코스타스 N. 차츠파테라스, 마리아 S. 파팔리우, 패트릭 레이 페르모. 그리스 1940-41 목격자 1995년 에프스타티아디스 그룹 ISBN978-960-226-533-8
- 그리스-이탈리아 및 그리스-독일 전쟁의 요약된 역사, 1940-1941: (육상 작전) 1997년 육군 역사국, 헬레닉 육군 총참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