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시게노부

Nanbu Shigenobu
난부 시게노부
南部重信
Nanbu Shigenobu.jpg
난부 시게노부 영정
태어난(1616-06-28)1616년 6월 28일
죽은1702년 7월 12일(1702-07-12) (86세)
일본 에도
매장장소일본 이와테 모리오카 시 쇼주지
국적일본인입니다
제목모리오카다이묘
전임자난부시게나오
후계자난부유키노부
부모님

난부 시게노부(南府 시게노부, 1616년 6월 28일 ~ 1702년 7월 12일)일본 북부모리오카 번 제3대 다이묘이다.난부 가문의 29대 세습 치프타인이었다.예우 칭호다이젠다이푸(大建大u)이고, 궁정 등급은 주니어 5급, 하위 등급으로, 이후 주니어 4급, 하위 등급으로 승격되었다.[1]

시게노부는 난부 도시나오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난부에 정복되기 전 헤이 구를 통치하던 헤이 씨족 출신이었다.시게노부는 아버지가 주둔하고 있는 헤이 구 하나와 마을에서 태어나 미야코 항만 시설 공사를 감독했다.어릴 때 동네 사찰에서 자라 동네 평민들의 자녀들과 놀았다.그러나 1648년 시치노헤에 있는 난부 가문의 2차 성에서 카스텔란이 되었다.

1664년 12월, 시게노부의 형 난부 시게나오는 생물적 후계자 없이 사망하였고, 도쿠가와 막부가 모리오카 번 다이묘가 되기 위해 모리오카에게 소환되었다.동시에 모리오카는 동생 난부 나오푸사를 위해 하치노헤 번을 만들어 10만 코쿠고쿠다카에서 8만 코쿠로 축소되었다.시게노부는 1664년 12월 15일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에 의해 정식 청중을 받았다.[1]

시게노부 재임 시절, 이 지역은 새로운 쌀 땅을 여는 간척 사업에 종사했다.1683년 5월 7일 주니어 4등, 하급 이온으로 승격되었고, 모리오카의 고쿠다카는 공식적으로 10만 코쿠로 회복되었다.또한 구리광산을 수입원으로 개발하여 홍수조절사업 등 각종 공공사업에 종사하였다.그의 임기는 모리오카에게는 상대적인 평화와 번영의 시기로 여겨졌다.[1]

1692년 6월 27일 장남 난부 유키노부에게 유리하게 은퇴하였고, 1702년 87세의 나이로 에도의 씨족 거주지에서 사망하였다.[1]

참조

외부 링크

메모들

  1. ^ a b c d Yoshida, Yoshiaki; Ichinokura, Noribumi (1984). Yōgo Nanu Morioka-han jiten 用語南部盛岡藩辞典 (in Japanese). Toyo Shoin. ASIN B000J74FVE.
선행자 일본 크레스트 난부 투루.svg 모리오카 3대(난부) 다이묘
1664–1702
성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