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에 질식함

Suffocation in ash

재에 질식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재에 담가 질식사시키는 사형의 방법이었다. 처형 관행으로서, 그것은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그리고 특정한 메소 아메리카 문화 내에서 증명된다.

고대 페르시아

고대 페르시아에는 탑/방이 재로 가득 차서 사형수가 쓰러지는 처형 방법이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바퀴가 끊임없이 돌면서 재가 빙빙 돌았고, 그 사람은 재를 들이마시면서 서서히 질식해 죽었다.[1] 그 설명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맥카베 2명 13:5-8에서 찾을 수 있다.[2]

이 벌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은 소그디아누스라고 한다. 그는 기원전 423년경 이복동생인 크세르크세스 2세를 살해했다. 또 다른 이복형인 오쿠스(다리우스 2세라고 불리우는 라이터)가 그에게 반란을 일으켜 소그디아누스를 이렇게 죽인 것은 소그디아누스가 소그디아누스에게 칼에 의해서도, 독에 의해서도, 배고픔에 의해서도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2세는 아내 파리아티스의 선동으로 아우 아르시테스를 반란을 위해 같은 방식으로 처형하게 하였고, 아르시테스의 장군 아르티피우스도 함께 처형하였다. 얼마 후, 반항하는 피수트네 장군이 같은 운명을 만났다.[1]

기원전 162년경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제사 메넬라오스는 반역 혐의로 안티오코스 5세의 섭정 리시아스에 의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형에 처해진 것으로 보인다.[2]

텍스코코

현대 멕시코텍스코코비아즈텍 아콜후안 통치자인 15세기 이전의 콜럼비아인 네자히알코요틀은 부분적으로 보존된 법전을 설계했다. 동성애 항문 성교의 적극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재 더미에 질식사했다. 그들의 수동적인 파트너는 창자를 뽑았고, 그리고 나서 그들의 몸은 재로 가득 찼고, 마침내 불에 탔다.[3]

참조

  1. ^ a b 롤린, C:"이집트인, 카르타고인, 아시리아인의 고대 역사... 제3권, 1735권, 런던 페이지 396-98"
  2. ^ Jump up to: a b Maccabee에 대한 설명은 George D'OyleyRichard Mant: "성경: 노트, 설명 및 실용성을 사용하는 경우... 함께 ..., 볼룸 2" 옥스포드 1818, xcvii 및 xvi 페이지
  3. ^ Täubel, Gottlob (1796). Allgemeines Historienbuch von den Merkwurdigsten Entdeckungen fremder ehedem ganz unbekannter Länder und Inseln [General history book of the most remarkable discoveries of foreign formerly completely unknown countries and islands.] (in German). Vienna: Gottlob Täubel. pp. 206–07. Retrieved 20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