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관(通官) 또는 통관(通官)은 지금의 중국 산시(山市) 통관군(通關郡)에 있는 위( yellow)와 황(黃)의 합류지 남쪽에 위치한 옛 산행(山行)이자 요새였다. 북중국평야로부터 시안(西安)과 주변 관중(關中) 지역을 보호하는 중요한 초크 포인트였다. 통고개는 서기 196년 한나라 후기 군벌 조조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 성곽은 통관군의 자리였으나 1950년대 산만샤 댐과 저수지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철거되었다.
역사
중국 문명은 먼저 로이스고원의 위, 뤄, 황하계곡을 따라 성장한 뒤 '바리안 지역'으로 확대됐다. 진나라는 통관 동쪽에 있는 환구고개를 동쪽 경계로 요새화하였으며, 진왕조와 한왕조 시대에는 중국의 심장부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계속 보호하였다. 왕망의 단명 '신 왕조'를 계승한 동한(東漢) 때 환구( h口)의 호위병들은 몸을 뒤집고 서쪽에서 오는 공격으로부터 평원의 뤄양을 보호했다. 그러나 AD 211년 통관 전투 때부터 통관군은 관중 지역과 북중국평야 사이의 주요 전략 요충지로 환구고개를 대체하였다. 당하에서는 통관군이 안루산의 반란군에 함락되면서 직접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 산시)을 점령하게 되었다.[2]